전시 포스터
윤동천
응징 2023, 크라프트지에 혼합재료, 109x158.4cm
윤동천
호박씨는 알로 깐다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60.6X72.7cm
윤동천
돼지 발톱에 봉숭아 물들이기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3X162.2cm
작가노트
일반 사람들은 대개 ‘추상’하면 거리감을 느낀다. 우리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무수한 요소들이 이미 추상임에도, 그림으로서의 추상과 일상에서 마주하는 추상을 전혀 다르게 대하고, 다르게 느낀다. 예를 들면 저녁노을을 보고는 아름답다고 느끼는데 노을만을 그린 그림을 보고는 추상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이는 한편 현대미술의 죄과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추상에 다다르는, 혹은 도출되는 여러 경로를 통해 추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이는 학습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미감을 스스로 존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결국 추상도 별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좋겠다. 그림의 궁극 목표는 개개인 누구나가 주체적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윤동천의 형식주의
신정훈(미술평론/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형식주의’는 윤동천의 미술에 어울리지 않는, 더 나아가 도발적인 용어일 것이다. 그가 이를 언급하거나 내세운 바 없고 오히려 자신의 미술은 형식이나 조형이 아니라 의미를 전하고 나누기 위한 것임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주제는 자신의 문제, 미술의 문제, 그리고 우리 사회의 문제로서, 이들은 주체, 작가, 시민으로서 그가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따라서 온전한 권한을 갖는 것들이다. 이렇게 미술을 통해 주제를 다루고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그는 “정보를 배타적으로 독점”하여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향유될 뿐인 1970년대 한국의 형식주의적 모더니즘을 넘어서고자 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미술은 의미, 서사, 소통이 복귀하는(혹은 비로소 시도되는) 1980년대 이후 한국미술의 ‘반형식주의적’ 경향과 함께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반형식주의적’이기 위해서 형식을 고려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효과적으로 의미를 전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다름 아닌 재료, 매체, 기법, 크기, 비유, 전시장 및 관객의 조건 등 작품이 경험되는 형식을 면밀히 따져보고 전략적으로 고안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형식주의란 의미를 거부하기에 순정하다고 간주되는 시각적 구성과 형태를 실험하는 1970년대의 것도, 그렇다고 형식이란 내용의 전달체에 불과하니 관습적인 형식이라도 ‘진실’을 담으면 자동적으로 통할 것이라 믿는 1980년대의 것도 아니었다. 이와 같은 형태론적 형식주의나 물신주의적 형식주의를 거부한 그가 추구한 것은 수사학적 혹은 구조적이라 부를 수 있는 종류의 형식주의였다. 바로 이점이 1990년대 이후 한국미술의 전개에 있어서 윤동천의 기여였다.
의미를 전하고 나누는 데 있어서 핵심은 진실보다는 설득력일 것이다. 작가는 진실을 강변하는 일이 오히려 사람들에 다가가기보다 그들을 밀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대적 요구의 시급성 속에서 진실이면 족하던 시기가 지나가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관객을 깨닫게 하는 일을 넘어 감동을 전하고 행동으로 이끄는 일이 그의 소망이라면, 관건은 진실을 말하는 일보다 그것을 얼마나 납득할 수 있게, 다른 말로 하면 얼마나 ‘매력적’으로 관객과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그 고민은 이미 미학적인 문제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자신의 미술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스스로 한정한 바 있기에(“나”, “미술”, “우리”) 많은 작가들을 괴롭히는 그 본원적인 질문으로부터 해방되었고 그로 인해 온전히 ‘어떻게’, 즉 형식에 힘을 모을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는 달리 보면 매번 형식에 대한 고민을 감내하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전하고자 하는 내용에 따라 회화, 판화, 오브제, 사진, 설치 등 모든 매체를 아우른다는 그의 언급은 모더니즘의 매체특정성으로부터 해방된 ‘포스트모던’ 혹은 ‘포스트매체’의 느긋한 유연함을 드러내는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자유를 대가로 매 전시와 작품마다 고통스러운(“머리에 쥐가 나는”) 선택을 해야함을 시사한다.
형식에 대한 면밀한 고려는 여러 수준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초점은 관객을 현상학적 풍부함으로 이끄는 조형 요소의 구성이라기보다, 의미작용으로 초대하기 위한 전시장 내 작품들 사이, 설치나 포토-텍스트 같은 한 작품 내 구성요소들 사이, 혹은 작품과 제목의 사이의 수사학적 관계에 놓인다. 그의 전시에 들어선 관객은 작가가 세심하게 짜놓은 의미망 속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일상에서 가져와 배열된 그리 대단치 않은 물건(혹은 이미지)과 말들은 모종의 상상적 연결 혹은 조합을 유도하여 그 즉물적 면모 밖에서 의미를 끌어오게 만든다. 이와 같은 의미의 그물을 엮어내는 작가의 가장 특징적인 구조 내지 형식은 환유이다. 그것은 개념적 유사성을 기반으로 하는 은유와 달리 물리적 인접성을 원리로 한다. 시공간적으로 붙어있는 관계라는 점에서 그 연관은 직접적이고 필연적인(혹은 “지표적”) 면이 있다. 예를 들면, 윤동천의 작품에서 권총은 권력층을, 스패너는 노동자를, 책은 지식인을, 목발은 불구의 몸, 개는 흔한 욕설로 이어지는 등이다. 이와 같은 연상은 깊이 있는 울림을 주지만 비의적일 수 있는 은유와 달리 상식적이고 객관적이다. 또한 은유의 경우에서처럼 기표가 기의로 대체되기보다 그 자체로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작동한다(예를 들어, 개의 이미지는 욕설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개는 또 무슨 죄인가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따라서 의미가 고정되지 않는다. 이처럼 의미화된 개별 유닛들을 여러 방식으로 결합시키며, 즉 ‘인접’시키며 나름의 구문을 짓게 만든다는 점에서 또한 환유적이다. 이렇게 윤동천의 작품은 고도로 응축된 깊이를 갖는 어휘로 구성된 시라기보다 비근한 낱말로 의미가 맺어지고 이어지는 산문에 가깝다. 그는 시의 지위로 고양되고 승화된 미술을 다시금 일상에서 이어지는 산문의 세계로 발 딛게 하려는 듯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윤동천은 추상을 선보인다. 여기서 조형은 작가 내면의 ‘내적 필연성’에 따른 것도, 자연이나 사태의 본질을 추출해 낸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의 삶에 놓인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물건이나 장소의 감각적 단면들이다. 설레면서 두려웠던 ‘빨간책’의 경험을 기술하면서 붉은색 사각형을 화면 안에 비스듬히 얹어놓고, 대입 낙방 후 자취를 하며 마신 소주를 떠올리며 연하늘색 원을 화면 가운데에 올려놓는다. 이들은 그의 삶의 본질 내지 요체를 담아낸 시각적 은유가 아니다. 추상적 명제로 환원될 수 없는 삶의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환유들이다. 이와 같은 그의 산문적 추상, 혹은 환유적 추상은 번뜩이는 통찰이나 깊이 있는 함축으로 호소하지 않는다. 미술에 대한 그와 같은 흔한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 대신 미술은 그렇게 어렵게, 간헐적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편재해있음을 말한다. 감동이 저 먼 곳에 있는 소중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주변에 놓여있듯이 말이다.
* 이 글이 참조한 문헌은 다음과 같다. 형식주의에 대해서, Yve Alain-bois, Painting as model (Cambridge, MA: MIT Press, 1990); 은유와 환유에 대해서, 서영채, 『인문학 개념정원』, 문학동네, 2013; 그리고 윤동천의 미술에 대해서,『윤동천 YOON DONGCHUN』, 소요서가, 2022.
1957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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