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량
전시장에 온 아이 oil on canvas, 27x22cm, 2023
손미량
전시장에온아이 oil on canvas, 53x45cm, 2023
홍익대 대학원 출신의 60대 중견작가인 손미량 선생은 인물화를 통해 인간의 심리를 표현 한다.
작가는 아이와 가족이라는 제재를 통해 일상적인 단편을 그려 인물이 지닌 내면세계를 몽환적인 분위기로 표현해 복고적인 향수를 자극한다.
손미량 선생에게 있어 아이는 가족이라는 단위에서 이탈하는 형태로 표현된다. 아이는 거의 혼자인 채로 등장해 현실로부터 먼 추억의 사진접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작가는 과거의 시간이라는 시제를 붙들고 배경에 이미지들을 흐릿하게 표현한다. 현실적인 공간으로의 진입을 차단하는 것이다. 천진하지만 쓸쓸해보이는 아이의 모습에서 안아주고 싶은 감정이 동요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 또는 우리의 정서적인 공감을 유도한다. 명확하지 않은 모호한 표현 및 이미지는 추억의 어느 시점에 서게 된다. 어쩌면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작가의 삶을 채워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밝고 화사한 작품의 경우 과거의 시점이 아닌 현실적인 분위기를 담아 감성적인 흡인력을 발휘한다.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차가운 현실로부터 과거의 시간으로 회귀하고픈 심정을 사진을 이용하여 드러내기도 한다. 작가는 조형적인 기술을 감춤으로써 오히려 감성적인 부분을 드러낸다.
이는 시선을 자극하는 대신 감정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한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는 5월의 싱그러운 날.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 30여점을 장은선 갤러리에서 선보인다. 손미량 작가는 일본에서 거주하며 인체공부를 한 후 홍익대 미술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일본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개인전 12회 및 그룹전 19회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2회, 목우회 특선 1회, 일본 일전 10회 입선 등
한국인물작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장은선갤러리
남다른 기술 및 감각 이면에 은거하는 심미 표현
신항섭(미술평론가)
그림에서 인물은 중요한 소재이자 주제의 하나이다. 세계미술사는 인물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서구의 미술관들을 가득 채우는 그림 대다수가 인물화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유독 인물화에의 관심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이는 소묘를 배제하는 대학교의 미술교육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인체소묘를 배우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건만 한국의 미술대학에서 이를 교과목에 넣는 경우는 몇 군데에 지나지 않는다. 미술대학에서 인체소묘를 가르치지 않으니, 인물화가 극히 적을뿐더러 일반적인 관심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단순히 묘사실력만을 보여주는 인물화가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그림과 마주하면 풍경이나 정물과는 다른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림을 감상하는 방식에 따라 인물이 지닌 내면세계, 또는 그림에 담긴 의미와 내용을 탐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손미량의 그림이 그러하다. 아이와 가족이라는 제재를 통해 일상적인 단편을 캔버스에 불러들인다. 아이와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단위이면서 한 가정의 구심이다. 물론 부모와 형제자매라는 구성도 가정의 한 단위이기는 하지만, 아이와 가족이라는 구성은 실질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단위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아이는 가정을 이루는 단위이면서 미래를 향한 지표가 된다.
그의 그림에서 아이는 가족이라는 단위에서 이탈하는 형태로 표현된다. 홀로 있는 아이라는 설정은 현실적인 분위기에서는 어딘가 불안감을 주는 요인이다. 그런데도 그의 그림에서 아이는 거의 혼자인 채로 등장한다. 여기에 작가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다. 주변에 아무도 없이 혼자인 아이는 현실적인 상황이 아니다. 지나간 어느 시점에 붙박이가 된 채로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현실적인 상황을 대입시킨다고 해도 자연스럽다. 그렇더라도 그의 그림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시간이라는 시제를 붙들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존재하는 그림 하나하나는 비현실적인 장치로 꾸며진다. 복고적인 향수를 자극하는 미묘한 분위기가 마치 투명한 베일처럼 드리워져 있다. 아이가 존재하는 상황에 관한 설명은 없고, 다만 무언가 흐릿한 이미지가 화면을 덮고 있다. 그처럼 모호하게 처리되는 이미지는 아이를 현실적인 공간으로의 진입을 차단하는 장치이다. 어떻게 접근하던지 농후한 비현실성을 거두어 내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어쩌면 이러한 시각적인 이미지는 지나간 시간의 반추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내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음을 뜻하는 건 아닐까.
배경에 흐릿하게 표현된 이미지들은 현실로부터의 먼 과거의 시간임을 의미한다. 선이나 의미한 실루엣 이미지, 추상적인 터치, 쓸쓸하게 자리하는 기하학적인 선들, 에스키스 같은 나무 이미지, 실루엣 인물들 그리고 복고적인 색채 등의 배경이 그렇다. 명확하지 않은 모호한 표현 및 이미지를 통해 추억의 어느 시점에 서게 된다. 차가운 현실에의 도피일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차가운 현실로부터 과거의 시간으로 회귀하고픈 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따라서 그 자신의 심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셈이다.
그는 이러한 심적인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법으로 사진을 이용했다. 그 자신의 개인사적인 소소한 일상의 편린일 수 있는 아이의 모습은 퇴색한 사진과의 연관성을 부정하지 못한다. 어린 여자아이에 현실의 그 자신이 오버랩하는 건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모르는 아이의 천진한 모습에도 때로는 쓸쓸함이 깃들일 수 있다. 이는 어른의 시각이라서가 아니라 자의식이 명료치 못한 아이일 때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외로움이란 어떤 형태이든지 아이의 모습에 슬며시 끼어들 수 있다. 그의 그림에서는 그런 외로움이 읽힌다.
아이를 감싸는 외로움은 때로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추억과 결부시키는 동기가 된다. 그러기에 애틋함이 느껴지고 문득 아이를 감싸 안아주고 싶은 감정이 동요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는 특정한 아이가 아니라 우리가 겪었던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의 초상화일 수 있다. 그는 이와 같은 우리들의 어린 시절 초상화 속의 아이에게 꽃 한 송이를 건넨다. 이는 사랑해주고 싶은 아이에의 진심 어린 헌사이다. 그림 하단에 꽃송이를 슬며시 끼워 넣는 것으로 그 자신의 어린 시절 또는 우리의 정서적인 공감을 유도한다.
작품에 따라서는 과거라는 시제를 분별하기 어려울 만큼 현실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밝고 화사한 이미지, 즉 현실적인 색깔로 보여지는 경우의 작품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아이의 모습은 무언가 애틋한 감정을 일으키는 과거의 시점과 달리 현실적인 분위기를 담는다. 거위와 노는 아이, 머리에 리본을 달고 손에 꽃을 든 아이, 발레를 배우는 아이, 고양이 자동차를 타고 노는 아이, 형광색 안경을 쓴 아이, 과자봉지를 든 아이, 비둘기들과 노는 아이와 같은 작품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의 조형적인 감각 및 기술은 일반성을 뛰어넘는다. 그런데도 기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기술을 감춤으로써 오히려 감성적인 부분이 선명히 드러난다. 이는 시선을 자극하는 대신 감정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한다. 인물 묘사가 뚜렷하지 않으나, 실제를 능가하는 묘사력이 짚어내지 못하는 부분에서 감성적인 흡인력을 발휘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상보다는 그 이면에 은거하는 심미 표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궁극적으로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야 한다. 마음이 동하면 감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며, 그림의 진정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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