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 고독의 박제 그리고 부유
2023.05.09 ▶ 2023.05.27
2023.05.09 ▶ 2023.05.27
전시 포스터
허진
유목동물+인간-문명2022-10 162×130cm,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22
허진
갤러리 PaL 전시 전경 1
허진
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2019-2 145×112cm×2개,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19
허진
유목동물+인간-문명2022-14 100×80cm,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22
허진
유목동물+인간-문명2022-7 145×112cm,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22
허진
유목동물+인간-문명2022-8 145×112cm,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22
허진
갤러리 PaL 전시 전경 2
허진
유목동물+인간-문명2019-7 145×112cm,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19
허진
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2021-1 162×130cm×2개,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21
허진
유목동물+인간-문명2023-7 100×80cm,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23
허진
유목동물+인간-문명2023-8 100×80cm,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2023
고독의 박제 그리고 부유
화면 전반에 걸쳐 다양한 존재들을 편만하게 펼쳐 보여주는 허진의 작품에서 오늘날의 시대적 불안과 우울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그만의 예민한 감성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허진은 그의 내면 깊숙이 흡착되어있는 무의식 신경세포를 통해 생성된 욕망의 에너지를 화면 곳곳에 오토메티즘적으로 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얼핏 보면 화면 전체에 여기저기 등장하는 인간 및 동물들과 여타 사물들은 몽글몽글한 느낌의 무수한 알갱이들이 빼곡히 들어찬 입자 은하수 공간에서 서로 어울리며 자유롭고 편안하게 유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말, 사자 같은 동물이나 비행기, 핸드폰 같은 인공물들이 화면에 크게 자리 잡고 있고 이들 사이사이에 개체화된 인간들은 상대적으로 아주 작게 축소된 채 산발적으로 포진되어 주변 존재들과 부분적으로 접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접촉지점인데 이것은 엄격한 경계를 유지하면서 화학적 상호작용을 거부하고 있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본래 상호작용이라 함은 경계를 통해 스며들어오는 외부의 영향에 대해 반응하고 그 반응의 영향이 다시 경계 밖으로 섭동이 되어 전해지는 것인데 허진의 화면에서는 다소 경직된 불완전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경계의 안과 밖은 끝없는 상호작용으로 서로를 변화시켜 새로움을 탄생시키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허진의 화면에 나타나는 인간과 여타 존재들은 여전히 자신의 경계를 강화하며 서로의 고독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허공에 겉돌며 타자에 기생하듯 여기저기 붙어있는 왜소해진 인간의 고립된 모습에서 고독의 이미지가 더욱 부각되는 듯하다.
한편 여러 존재들 사이를 채워가며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구슬 같은 무수한 입자들은 우주 제4의 물질 상태라 하는 플라즈마 성향을 띠며 약간의 점성이 있는 겔상 입자 같다고 느껴진다. 이것들은 존재들을 보호해주고 연결해주는 가상의 보조물질로서 일종의 에테르(Ether) 입자나 우주의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같은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이 보조입자에너지는 현대문명에 의해 오염되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역작용을 하면서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혼돈의 모서리로 존재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면의 여러 존재들은 본시적 파동성을 잃고 현대문명의 욕망이 이끄는 중력에 잡혀 점차 경화되어가는 입자들의 집합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다. 이들의 본성은 원래 서로 관계 맺기를 원하나 오히려 서서히 고립화되어 늪과 같은 유동적 폐쇄 공간에 갇히게 될 운명이라고 존재들 스스로가 감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정황에서 허진의 작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엔트로피적 운명에 대한 암시적 분위기를 풍기며, 새삼 지금 인류가 살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되물어 보는 듯하다.
화면에서 부유하는 존재들이 마치 태평양 바다를 점령하고 있는 거대한 쓰레기섬으로도 보이고, 그 섬을 이루고 있는 분화된 욕망의 상징체인 플라스틱 폐기물들과도 오버랩되면서 동시대적 환경위기 상황들이 연상된다. 그러면서 현대문명이란 것이 마치 대박에 욕심나 제비 다리를 부러뜨린 후 고쳐주는 얍삽한 놀부와 같기도 하고, 생명이 없는 껍데기일 뿐인 박제와도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간 허진이 추구한 작업의 방향이 생태적 본질성 회복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현대문명에 관련하여 미시물리학적 관점에서 역설적으로 살펴보게 되었다.
전성규 (미술학 박사, 목포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1962년 서울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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