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마음으로, 최병상
2023.05.23 ▶ 2023.09.10
2023.05.23 ▶ 2023.09.10
전시 포스터
최병상
열두 사람 동, 아크릴, 200x130x80cm, 1973
최병상
빛을 보라 스테인리스 스틸, 홀로그램, 55x40x30cm, 2007
최병상
부활의 노래 스테인리스 스틸, EL, 홀로그램, 43x30x43cm, 2001
최병상
꿈의 이야기 스테인리스 스틸, 홀로그램, 80x75x85cm, 2007
최병상
선과 악의 대화 강철, 70x150x70cm, 1968
최병상
꿈의 틈바구니 강철, 110x130x80cm, 1963
최병상
방주Ⅰ 스테인리스 스틸, 100x110x10cm, 1986
최병상
하늘과 땅 스테인리스 스틸, 50x50x50cm, 1992
포항시립미술관은 스틸아트뮤지움으로서 한국 철조의 태동과 스틸아트의 시원(始原)에 대한 조명을 통해 그 예술적 가치를 정립하고자 스틸아트 작가 조망전 《기도하는 마음으로, 최병상》을 마련하였다.
최병상(1937-)은 일생을 용접조각에만 매진한 작가이다. 오로지 하나의 제작 방법으로 작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보통의 끈기와 집념이 아니고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결과이다. 그를 매료시킨 용접조각은 과연 조각가 최병상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1958년 서울대학교 2학년 재학 시절 집과 학교를 오가며 본 용접 불꽃은 그의 뇌리에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았다. 첫 시작은 호기심이었으나 그 섬광은 조각가로서의 삶에 뿌리가 되었고, 그 후 그의 인생은 용접조각과 뗄 수 없는 필연적 인연으로 이어진다. 대학에서 철조 실기 교육이 이뤄진 것은 1960년이지만 작가는 우연히 마주한 철공소에서 용접기사의 도움을 받아 교과 과정에도 없는 용접조각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다. 당시 젊은 작가들은 학교가 아닌 길거리에서 고철을 구해 용접조각을 제작하고 있었다. 전후(戰後) 격변하는 시대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전통 조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유롭게 형태를 만들고 덧붙여 가며 작가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적절했던 용접기법은 한국전쟁을 경험했던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표현의 장을 열어주었다.
최병상은 철 추상 작품이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입상되기 드물던 때, 제8회 국전(1959)에서 철판 조각을 모아 제작한 <대지>로 첫 특선을 수상하며 큰 용기를 얻게 된다. 대학 졸업 후 1960년대부터는 교육자로서 후학을 양성하면서도 「현대공간회」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으며, 23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국전에 출품하는 등 작품활동에 전념하며 다양한 용접조각을 발표했다.
일관된 제작 방법만큼이나 그의 작품들은 입체 구성의 기본적 요소에 집중한다. 최병상은 곡선 형태의 반복 구성과 리듬, 질감의 변화, 공간과의 관계, 색채 효과를 통해 조형성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했으며 이 같은 표현의 이면에 사상과 감정의 내면적 정신 본질을 담고자 노력했다. 작가의 사고와 감정, 이상이 집약된 것이 작품이라면 그에게 작품은 신앙고백으로서 승화된 형태의 창출이다. 기독교 사상을 근저로 한 형상들과 태극 형상으로부터 변화된 곡선 형태의 구성은 비상과 같은 점증적 상승의 이미지를 드러내며, 신앙에 대한 믿음과 다짐을 표현하고 있다. 최병상의 작품세계는 크게 세 가지 시기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1960-1970년대 성장기, 1980년대 성숙기 그리고 1990-2000년대 변환기이다. 시기에 따라 재료와 조형실험의 변화가 뚜렷하며 특히, 90년대부터는 홀로그램, EL(전기발광, Electro Luminescent), 레이저 등 테크놀로지를 도입하여 3차원의 효과를 복합적으로 발생시킴으로써 금속조각의 변모를 꾀하였다.
이번 전시는 최병상 작가의 작업세계를 정리하는 회고적 성격의 전시로 국내 철조 도입의 시작부터 용접조각과 평생을 함께해 온 작가의 삶과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이다. 66년 조각 인생에서 단 세 차례의 개인전(1974, 1987, 2007)만 가졌을 정도로 작가는 조용하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17년 만의 개인전 《기도하는 마음으로, 최병상》을 통해 오로지 순수 조형적 가치와 일관된 형식미에 대한 탐구 그리고 자기 규범의 실천으로서 예술 활동을 이어온 최병상 작가의 진정한 가치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1960-1970년대 성장기 – 선과 악
이 시기 작품들은 철과 동에 의한 형태실험과 더불어 매체의 혼합을 시도한다. 여러 가지 금속 사용과 접합기법, 원색 사용과 착색실험 등 재료와 기법의 개발로 조형효과에 대한 실험을 지속했다. <꿈의 틈바구니>(1963)를 비롯하여 기하학적인 형태의 순수추상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였으나 점차 시대 의식이 내재 된 작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유년시절 겪은 한국전쟁의 고통과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에 대항하고자 하는 의식이 드러난 작품들이 등장한다. <선과 악의 대화>(1968), <싸우는 인간들>(1969)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내포한 최병상의 대표작들로 서로 얽혀 대치 상태에 놓여 있는 듯한 구성을 통해 갈등의 심리상태를 표현했다. 명제에서 보여주듯 ‘선과 악’에 대한 인간의 충돌을 시각화했으며 냉전 시대의 대립, 시대적 이슈인 반공이데올로기, 민주화 운동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표현으로 보인다.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혼란 그리고 공포 분위기의 확산이 전 국민적 항거로 이어지던 시절,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최병상은 공포와 고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실존주의적 의식 속에서 윤리적 도덕성의 상실과 같은 인간의 부조리를 종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1980년대 성숙기 – 기도하는 마음
순수미술의 본질에 입각한 미의 창출과 표현에 몰두하던 시기로 기독교 사상을 근저로 삶과 예술 그리고 종교에 대한 조화 현상을 추구하던 시기이다. 인간 삶의 깊은 부분에서부터 느낄 수 있는 기쁨, 고통 등의 감정을 자유곡선 형태의 자연스러운 반복과 교차를 통해 표현했다는 그의 작품은 상승구조의 단순 명료한 형태를 제시한다. 다양한 금속 재료를 사용하여 아크용접으로 접합한 용접비드에 의해 매스를 형성하고 유리, 아크릴 등의 재료를 복합시켜 사용함으로써 질감 대비의 극대화를 끌어냈다. 최병상은 1958년 용접조각을 시작한 이래 단 한번도 양식의 변화를 거치지 않았다. 용접조각이 가진 가장 큰 의의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직접적으로 표출할 수 있다는 점인데, 최병상은 오랫동안 용접조각에 매달리면서 자신의 경험이나 인식의 세계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가 작품 제작에서 중요시 여긴 점은 자아 중심의 개성과 자유 표현을 위한 개방적 자세 그리고 도전적이며 실험적인 표현이었다.
“작품은 작가의 내면세계와 삶의 표현물입니다. 작가는 자기의 사고와 사상, 감정, 이상 같은 것을 작품 속에다 자연스레 표현하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예술이란 한마디로 “정신세계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기에 작가가 신앙인으로서 뿌리가 깊으면 깊을수록 신앙에 근거한, 즉 신앙고백의 형태로 자기 작품이 나타날 것입니다. 구상할 때나 스케치할 때부터 모든 감정이 성경과 연결되므로 작품도 자연히 신앙과 예술의 공통분모가 되기 마련이지요.”
1990-2000년대 변환기 – 빛을 보라
1980년 후반부터 작가는 스테인리스 스틸의 표면처리로 생성되는 빛의 반사나 반영 효과에 관심을 두고 조형 실험을 펼쳐나간다. 광택에 의한 탄력 있는 양감과 다양한 질감 그리고 빛을 이용해 공간의 확산성과 가변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작품의 일부 또는 전체에 형태의 명확함과 강한 인상을 부여하기 위해 적, 황, 청색을 입혀 질감을 대비시켜 생동성을 강조했다. 작가는 빛의 반사나 반영에 의한 공간 확산에 그치지 않고 빛에 의하여 주체적으로 창안된 공간을 구현하고자 했다. 그 결과 빛으로 형태와 공간을 형성할 수 있는 홀로그램, EL(전기발광, Electro Luminescent), 레이저를 조각에 결합해 빛 표현의 심화와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게 된다. 최병상에게 빛은 정신적인 비물질의 공간으로 작가가 탐구해 온 초월적이거나 영적인 세계를 담아내는 기본 요소이다. 이 빛의 표면은 단순한 면이 아닌 무한한 세계가 펼쳐지는 또 하나의 공간을 나타낸다. 새로운 소재의 개발과 기법의 탐구는 종합예술의 추구라는 작가의 꿈을 무제한으로 실현하게 하는 수단으로서 끝없는 가능성을 펼쳐준다.
1937년 충남 대천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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