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탐(探)하다: 이재효1991-2012
2012.03.30 ▶ 2012.05.27
2012.03.30 ▶ 2012.05.27
이재효
0121-1110=1080815 Stone, 95x95x600cm, 2008
이재효
0121-1110=112032 Wood(larch & camellia), 38x38x299cm & 100x74x62cm, 2012
이재효
0121-1110=112033 Stainless steel bolts, nails & wood, 80x42x238cm, 2012
이재효
0121-1110=1080620 Stone, 151x540x285cm, 2008
이재효
0121-1110=1100212 Wood(camellia), 250x250x9cm, 2010
이재효
0121-1110=112034 Wood(bamboo), 210x210x66cm, 2012
이재효
0121-1110=1101012 Stainless steel bolts, nails & wood, 233x180x7cm, 2010
이재효
0121-1110=1120210 Wood(oak), Variable installation, 2012
이재효
0121-1110=1071110 Stone, Variable installation, 2007
자연을 탐(探)하다: 이재효 1991-2012
1.
모름지기 예술가는 특정 형식을 오랫동안 고집하거나 주목하는 것을 예의 경계해야하지만 자연의 형식은 이재효에게 지속적이고 생산적인 작업 모티프로 작용했다. 자연이 지닌 다양한 형식과 체계적 통일성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받아들인 경험적 법칙들은 조각가 이재효에게 있어 건강한 작업충동이 되었다.
이재효는 이른바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학창시절을 제외하곤 줄곧 시골에서 살았다. 지금도 시골에서 살고 있다. 돌아보니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며 경험한 한국의 사계와 그에 따른 세세한 자연의 변화는 그토록 찾고 바랐던 훌륭한 스승이었다. 보잘 것 없는 하나하나가 모여 아름답고 커다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하나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 살아 있는 교육 현장 그 자체였다.
조각가로 성장 후 자신을 돌아보았다. 오만이었다. 나름 뛰어난 손재주와 남다른 눈썰미 하나 믿고 조각가의 길로 들어선 그였지만 정작 답은 겸손한 자연에 있었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내비게이션에도 잡히지 않는 깊숙한 곳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자연과 함께하며 작고 사소한, 힘없는 것들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다.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을 통해 그들의 아름다움과 강한 힘을 보았다. 마음 속 깊이 자연의 보편적 개념을 받아들였다. 자연을 압도하려는 흔한 인간적 교만을 자연스레 덜어나갔다. 자연의 형식과 하나 되어 어울리며 자연을 받아들이고 더해갔다. 시나브로 몸과 마음, 눈높이를 자연에 맞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작업 전반에 배어 있는 따스한 자연충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
이재효는 땅에 떨어진 빛바래고 말라비틀어진 자연물, 용도 폐기된 고물, 소임을 다하고 버려진 사물들에 무한 애 정을 보낸다. 사소하지만, 그에게는 사뭇 소중하다. 그들의 다하지 못한 생명력과 존재의 떨림이 가슴 속 울림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울림과 떨림. 이재효가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이유다. 누구보다 먼저 다가간다. 사랑으로 어루만진다.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특별히 재료를 찾아 나서기보다는 자연과 생활 가운데 만나고 접한 오브제들을 통해 콘셉트를 떠올린다. 뛰어난 감각이자 발상이다. 그의 순발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재효의 작업실 내 사무공간과 작은 전시공간에는 아기자기한 오브제 드로잉, 소품들이 가득하다. 나뭇가지, 담배꽁초, 연필, 못, 핀, 세숫수건, 주운 철판, 낡은 성경책, 용접봉, 철사, 용수철 등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을 구부리고 쌓고 파내고 묶어내며 조합했다. 이재효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부여 받은 그들은 생기가 완연했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만지작거려 무언가로 재탄생시키는 연금술사 이재효. 볼품없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모아 다양하고 아름다운 무엇으로 이야기하듯 뚝딱 엮어낸다. 이재효의 커다란, 제법 규모 있는 대부분의 조각들은 이러한 따스한 미물에의 관심과 수많은 소품 제작과정을 거치면서 비롯되고 완성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이를 테면, 이재효 특유의 오브제 드로잉이라 부를 수 있겠다.
작업 모티프가 그러하듯 대부분의 작업은 자연에서 구한 재료를 사용한다. 나무와 나뭇가지, 떨어진 이파리, 크고 작은 돌, 풀 등이 그것이다. 못이나 볼트, 철제 와이어와 철근, 용접술 등도 일부 개입한다. 재료들을 안전하게 효과적으로 결합하고 집적하기 위해서다. 이재효의 작업에서 이들의 만남과 역할은 운명적이다. 어찌 보면 상처를 입고 입히는 관계의 나무와 못이 상조(相助)하며 그의 대표적인 작업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때론 나무가 중심이 되기도 하고 때론 못이 강조되기도 한다. 철근이나 철제 와이어는 주로 나무 이파리나 돌 등을 반복적으로 엮거나 천정에 높이 매다는 등 제작과 현장설치를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자연을 효과적으로 전하고 드러내기 위해 최소한의 인공을 용인한다. 작업현장은 규모도 규모지만, 그야말로 치열한 공사현장을 방불하게 한다. 작품의 규모와 제작과정이 점점 커지고 치밀해지고 있음이다.
3.
도처의 생활문화공간에서 접하는, 그래서 더욱 익숙해진 이재효의 나무, 못작업들과는 달리, 실험적인 설치작업은 그동안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초대형규모의 설치작업에서부터 공간을 반영한 현실적인 크기와 다양한 재료의 설치작업들이 상당하다. 이재효가 지난 20여 년 동안 꾸준히 천착해온 자연과 작업에 대한 이해와 의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작업이다. 지난 작업은 물론 앞으로의 작업 방향까지 총망라하는 결정체로 이해된다. 작가에게는 일종의 미완(未完)의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재효의 설치작업은 자연의 내적/외적구조를 원과 직선을 중심으로 포괄하고 있다. 자연의 순환구조와 반복양상을 단순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반영한다. 자연의 원만함과 무한함, 생성과 소멸,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이는 속성을 현재적 파노라마 시점으로 담았다. 강가에서 주운 돌과 버려진 나뭇가지 등 자연의 풍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재료들 그리고 바람, 빛, 공기, 소리 등과 같은 비물질적인 기운들을 머금고 있는 여러 오브제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작품이 실제로 움직이지 않으나, 마치 움직이는 것 같은 효과(moiré)를 경험하게 하는 옵티컬한 설치작업도 흥미롭다. 일부 작품의 경우, 줄을 당기면 오브제들이 부딪히면서 소리를 내며 화답하는 일종의 키네틱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그러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될 실험적인 설치작업에 비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업은 역시 나무와 못을 사용한 작업이다. 1998년 무렵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나무작업은 이재효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그동안의 작업이 그러했듯 재료의 속내와 성결을 있는 그대로 강조했다. 밤나무, 잣나무, 동백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선택적으로 사용했다. 그중에서도 나이테가 맑고 선명하게 드러나는 낙엽송을 주로 채택했다. 벌목과정에서 남은 자투리가 대부분이다. 대형 작업의 경우, 목재시장에서 직접 구입하기도 한다. 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만난 나무들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투박하고 보잘 것 없다. 또한 살아 있는 나무가 아니기에 단면에는 건조하게 갈라진 틈들이 많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재효는 이 모두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자연스런 미감으로 승화시켜 나간다. 작가의 무던함이 묻어나는 부분이다.
자연의 속성을 하나로 응축하려는 듯 이재효의 나무작업은 몇 개의 단순한 형태로 환원된다. 사물과 자연의 고갱이를 단단하게 보여주려는 그의 노력이 자리하고 있음이다. 나무의 속살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작업은 주로 구(球)나 링, 기타 다양한 유기적인 형태로, 환원적 속성을 띤다. 작업 모티프를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로 환원, 응축하고 이를 0121-1110=112032, 2012, Wood(larch&camellia), 38x38x299cm&100x74x62cm 구현하기 위한 뼈대를 만든 후 나무를 더해 들어간다. 우선 용접술을 통해 나무를 지지하고 고정할 뼈대를 만든다. 마치 까치가 나무위에 나뭇가지로 집을 짓듯 얼키설키 나무들을 엮는다. 보조적인 지지대라든가 서로를 견고하게 지탱하고 잡아주는 심봉들이 추가된다.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고 하나로서 맺어주는 역할을 못과 볼트가 묵묵히 수행한다. 계획했던 구체적인 외형을 대입시킨다. 의도하는 형태를 얻을 때까지 대형 전기톱으로 나무를 잘라낸다. 서로를 견고하게 지지하기 시작한다. 여러 종류 와 크기의 나무와 수백 개의 못과 볼트, 그리고 철판이 사용되지만, 결과적으로 나무가 드러나고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재효는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못을 활용한 작업을 시작했다. 수 백, 수 천 개의 못을 쉼 없이 두드려 박았다. 나무작업이 그러했듯 못의 내부에 감춰져 있는 재료의 본성과 물성을 존중하되 보다 직접적으로, 공격적으로 드러내고자 노력했다. 이재효의 못작업은 평소 나무속 깊이 박혀 있어 제한적으로만 알고 있던 못의 억압된 존재론적 본능을 매력적으로 들춰내는 작업이다. 감추어져 있었던 못의 자유로운 표정과 반짝이는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못과 볼트 안에 잠복되어 있던 표정과 기운을 이처럼 극대화한 된 적은 없다. 검게 그을린 침묵의 들판 위에 수 천 개의 못들이 집단적으로 춤을 춘다. 메시지를 전한다. 상상할 수 없는 표정과 동작으로 속내를 드러낸다. 나무작업과는 달리 못이 중심이 되고 나무가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일정한 형태의 매스를 지닌 나무 위에 수 천 개의 못들을 치고 박은 후 이리저리 구부린다. 그라인더로 반지름 정도의 두께를 갈아낸다. 하얀 반짝이는 속살이 드러난다. 불로 나무를 적당히 그을리거나 태운다. 나무의 표정은 검게 타들어가고 부피가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못의 존재가 선명하고 강하게 부각된다. 태울수록 그 존재는 더욱 빛이 난다. 평소 나무에 박힌 채 그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던 못이 여기저기 반짝반짝 거리면서 섬광처럼 번뜩인다. 못과 볼트를 구부리고 갈아내는 등 인공을 다스린 결과이자 흔적이다. 이러한 못작업은 나무작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확산적인 양상을 보인다. 활짝 열린 바깥세상을 향해 해방의 기운을 널리 퍼뜨리고 있는 못이라는 오브제들의 시각적 산종(散種)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4.
이재효의 작품은 대부분 물리적으로 엄청난 무게를 갖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두둥실 하늘로 떠오를 듯 가볍게 다가온다. 시각적으로 경쾌하고 가벼운 느낌을 준다. 크게 부담이 없다. 사실 주재료인 나무의 무게도 무게지만, 그것들을 잡아주고 지탱하는 철제구조와 철판 등의 무게가 상당하다. 재료가 주는 친근함과 자연처럼 무리 없는 원만한 형태를 지향하는 작가의 성결을 닮았기 때문일까. 작품들은 대부분 동글동글 유기적인 표정이다. 재료도 그러하지만, 시각적/촉각적으로도 거부감이 없다. 원만한 양상이다. 세상이 그러했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일 수도 있다.
뭉치면 힘이 된다고 했다. 작고 미약한, 보잘 것 없는 것들로부터 익숙하고 친근한 것들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집적해나간 그의 작업은 풍부하고 단단한 시각적/물리적 양감을 보인다. 때론 특정 방향, 혹은 정해지지 않은 방향성을 보이며 특정 형태로 응집되어 있다. 단단하게 뭉친, 물리적/시각적 견고함이 압권이다. 한편 부드럽고 가벼워 보이는 시각적 경량감은 그의 작업을 어디에 놓아도, 심지어 천정에 매달아 놓아도 크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주변과 주위 환경과 다투지 않는 무리 없는 이재효 특유의 조형감각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효의 작업이 선사하는 매력은 자연과 인공의 상호작용이 자아내는 다양한 조합과 생생한 연출이다. 이들은 다투지 않으며 서로를 존중하듯 자신을 숨기고 낮추며 상대를 위해 배려한다. 밖으로 드러나 있건 안에 숨겨져 있건 중요하지 않다. 주목할 것은 그가 작업을 통해 환기시키려는, 관객에게 건네는 자연에 대한 이야기다. 대조 역시 조화라 했던가. 자연과 인공, 나무와 철, 작가의 행위와 그것을 묵묵히 받아주는 오브제의 성결이 모두 같은 듯 다른, 대비되고 대립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재효의 품성이 그러하듯 이들은 결코 다투지 않는다. 다만 유기적인 조화와 질서를 선사할 따름이다.
이렇듯 이재효의 작업의 특징이자 미덕은 다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공이 그러하고 작품과 설치되는 공간, 작가와 재료가 그러하다. 재료 또한 서로 다투지 않는다.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집적되어 있다. 뭉치면 힘이 된다는 것. 보잘 것 없는 자연의 티끌, 터럭 하나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 작가의 애정을 만날 수 있다. 새삼 먼지의 두께를 돌아보게 한다. 이번 전시는 끊임없이 반복, 순환하는 자연의 다양한 형식과 체계적 통일성에 대한 애정과 깨달음 그리고 꾸준한 성실함으로 이어온 작가의 지난 작업세계를 한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1965년 경남 합천출생
박경종: 층위 워프 Layer Wa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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