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희: 상상의 영역

2021.12.01 ▶ 2021.12.31

갤러리 학고재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소격동, 학고재) 학고재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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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희

    눈꽃처럼 Blossom Look Snow 2019, 캔버스에 한지 콜라주, 유채 Hanji collage and oil on canvas, 227x181.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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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희

    흰 꽃 H White Blossom H 2021, 캔버스에 한지 콜라주, 유채 Hanji collage and oil on canvas, 130.3x9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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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희

    붉은 꽃 H Red Blossom H 2021, 캔버스에 한지 콜라주, 유채 Hanji collage and oil on canvas, 130.3x9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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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희

    어여쁜 꽃 Lovely Blossom 2021, 캔버스에 한지 콜라주, 유채 Hanji collage and oil on canvas, 130.3x9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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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희

    밝은 붉은 꽃 H Light Red Blossom H 2021, 캔버스에 한지 콜라주, 유채 Hanji collage and oil on canvas, 90.9x72.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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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희

    밝은 정원 Bright Garden 2021, 캔버스에 한지 콜라주, 유채 Hanji collage and oil on canvas, 130.3x193.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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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희

    상상의 영역, Land of Imagination 2021, 혼합매체, Mixed media, 가변크기 Dimensions variable

  • Press Release

    조성희의 한지 콜라주 –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기 위한 여정

    이번 전시는 조성희의 유년 시절의 기억을 주제로 한 전시다. 유난히 꽃을 좋아한 아버지가 가꾸던 아름다운 정원과 창호지를 바른 격자창과 완자창으로 둘러싸인 한옥에서의 기억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하던 종이 놀이와 일곱 남매가 아버지의 정원에서 뛰어놀던 기억, 밤 하늘 별을 보며 행복한 이야기를 나누던 추억이 작업의 토대가 되었다. 조성희는 2010년부터 한지 콜라주 작업을 시작했다. 우연한 계기로 한지 조각을 캔버스에 붙이는 순간 유년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후 한지를 오리고 말아 꽃잎과 꽃대를 만들고 캔버스 위에 입체적으로 쌓기 시작했다. 한국 전통의 감수성에 개인적 서사를 녹여내는 일이다. 한지 조각을 수만 개씩 사용하는 노동 집약적인 과정은 조성희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낙원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이나 연못 위에 가득 찬 연잎, 혹은 초원 위를 뒤덮은 클로버처럼 화면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무수한 작은 원형의 한지 조각들은 하나하나가 작가의 상념을 담고 있는 듯하다”고 언급하며 조성희의 작품이 “현실과 이상을 연결하는 가교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관객이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치유의 효과”를 갖는다고 했다.


    조성희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전시

    조성희는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스쿨에서 수학했다. 이후 몇 년간 미국에서 활동하던 작가는 해외 생활의 한계점을 느껴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서양화를 주로 그리던 조성희는 2010년 무렵 한지를 사용한 콜라주 작업을 시작해 지난 10여 년 동안 자신만의 기법을 연마했다. 한국 전통의 감수성에 개인적 서사를 녹여내는 화면을 통해 다시 해외에서 두각을 드러내왔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파리, 밀라노, 모나코, 싱가포르, 홍콩 등 세계 곳곳에서 전시를 열어온 조성희는 해외에 한국적 아름다움을 소개했다. TEFAF 뉴욕, 아트마이애미, 홍콩 컨템포러리 등 유수의 국제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선보여 주목받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조성희가 수년간 지속해온 한지 콜라주 화면과 지난 일 년 동안 공들인 설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전시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한지 콜라주 작업의 완성도와 다양한 구성적 시도들이 돋보인다.
    ■ 학고재



    ‘잃어버린 낙원(Lost Paradise)’을 향한 회귀 의지

    Ⅰ.
    조성희는 어린 시절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전통 한옥에서 자랐다. 꽃을 매우 좋아한 그녀의 아버지는 정원 가꾸기가 취미였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뛰어놀며 그녀는 마음속으로 ‘꽃의 왕국’을 꿈꿨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 조성희는 어렸을 적 마음에 품었던 ‘꿈의 정원’을 주제로 작업을 펼친다. 유년시절에 본 정원이 낙원이라고 한다면, 70대 중반의 노년에 이르러 한 사람의 작가로서 펼치는 현재의 작업은 이른바 ‘복락원(復樂園)’인 셈이다. 조성희는 잃어버린 낙원을 꿈꾼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현재의 작업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 떠나는 긴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만일 타임캡슐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우리는 긴 인생을 살아오는 과정에서 맺힌 단단한 매듭들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감당하기에 결코 녹록치 않은 슬픈 감정이 축적된 삶의 분비물, 그 매듭들을 가리켜 ‘한(恨)’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도덕원리로 삼은 유교적 가부장제하의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신분은 특히 취약했다. 따라서 감정의 도피처가 마땅치 않았던 여성들은 길쌈이나 바느질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勞動謠)로 사회적 신분관계에서 오는 차별과 억압을 풀고자 했다. 노래와 춤, 그림, 문학과 같은 예술의 형식은 그러한 억압을 풀 수 있는 훌륭한 대리만족의 수단이었다.


    Ⅱ.
    실로 엄청난 공력을 들인 조성희의 한지작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녀는 저처럼 힘든 일을 자청해서 벌이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손으로 일일이 만들고 붙이는 그 힘겨운 작업과정이 자동화된 현대의 공정(工程)에 역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NFT와 메타버스가 운위되는 사이버 시대에 느리고 품을 팔아야 하는 수작업(手作業)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도무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조성희가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수작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다. 우선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속도에 대한 거부와 저항이다. 이것은 특히 효율성과 기능을 중시하는 현대의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저항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예술의 경우 현란한 사이버 세계의 구축을 통해 환상적인 ‘시각적 스펙타클’을 지향하는 현시점에서 눈앞에 현존하는 물질(오브제)로서의 작품은 매우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이른바 가상과 실제의 대결이 가능하다면, 그 판정은 언제 어떻게 내려질 것인가? 아니 도대체 그런 가정이 예술에서 합당하기나 한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예술을 비롯한 모든 인간활동이 나름대로 행위의 정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세계를 기반으로 한 예술도 이 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예술이고, 조성희처럼 일일이 손에 의존하는 작업도 나름대로 의의와 행위의 정당성을 지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공존이 불가피하지 않은가? 물론이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시대의 흐름에 뒤쳐진 것처럼 보이는 어떤 현상이 지닌 시사점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이다. 나는 그것을 조성희의 작업에서 발견한다. 이를테면 조성희의 작업에 나타나고 있는 ‘꿈의 회복’과 관련된 어떤 메시지가 그것이다.

    알다시피 조성희는 엄청난 양의 강도 높은 노동을 통해 ‘잃어버린 정원(낙원)’이란 주제를 자신의 예술로 구현해 내고 있다. 그녀가 만일 정원사였다면 ‘정원가꾸기’, 즉 조경으로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조형예술가인 그녀는 조형작업, 즉 회화와 조각, 설치와 같은 방법을 통해 그 꿈을 이루려 한다. 그리고 그 꿈은 아직 완성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다. 이것은 예술에서 매우 중요하다. 예술이 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 그것은 삶이 늘 진행형인 것처럼 예술 또한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의 예술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Ⅲ.
    여기서 잠시 조성희가 하는 작업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녀는 작품에 필요한 여러 가지 부속품들을 만든다. 한지를 다양한 크기의 원으로 오려서 만든 꽃잎과 사각형으로 잘라 일일이 말아서 만드는 꽃대 등등이다. 조성희는 한지를 바른 캔버스 위에 일일이 대여섯 개의 꽃대를 모아서 붙이고 그 위에 꽃잎을 얹어 풀로 고정시킨다. 그 다음에는 채색의 과정에 들어가는데, 테레핀으로 묽게 푼 유성물감을 듬뿍 묻힌 커다란 붓으로 뿌려 색을 입힌다. 여기서 그녀가 테레핀을 쓰는 이유는 송진 성분이 있는 테레핀이 천연의 재료여서 물감이 한지에 잘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을 십수 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행한다.

    미지의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한 조성희의 지칠 줄 모르는 반복적 행위는 작품 속에 그대로 유입돼 특유의 아우라(aura)를 만들어낸다. 붉은색의 단색화가 됐든, 마치 꽃밭 속의 꽃들처럼 다채로운 색상을 지닌 다색화가 됐든, 조성희가 만든 작품들은 아름다운 정원에 대한 유비(analogy)로써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줌으로써 치유의 효과를 낳는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나는 그녀의 이전 개인전 도록에 수록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조성희의 작품은 인생의 축도이자 지나온 삶과 세월의 응축이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이나 연못 위에 가득 찬 연잎, 혹은 초원 위를 뒤덮은 클로버처럼 화면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무수한 작은 원형의 한지 조각들은 하나하나가 작가의 상념을 담고 있는 듯 하다. 그것들이 하나의 집합적인 양태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그것을 통해 작가의 내면을 읽는다. 하나의 예술작품이 지닌 독특한 존재 양식은 작가와 관객 간의 소통을 위한 매개물이다. 그것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작가와 기나 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이런 엄청난 열정을 불러일으켰는가? 우리는 작가의 지난한 삶의 분비물인 작품을 바라보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 섬세한 내면과 작업을 향한 불굴의 의지, 무쇠도 녹일 듯한 예술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감지할 수 있다.”
    - 윤진섭, 〈우주와 인생에 대한 통찰, 조성희의 한지작업에 대하여〉 -

    그렇다면 조성희가 광기에 가득 찬 창조적 열정으로 뿜어내 놓은 저 상상의 꽃밭들, 즉 아름다운 오브제 작품들은 과연 무엇인가? 이 시대에 어떤 미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또한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가? 그것은 실제인가, 아니면 단지 하나의 허구로써 실제를 대리하는 감정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중요한 것은 조성희의 이 노동집약적인 작업이 현실과 이상을 연결하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관객들에게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 즉 ‘잃어버린 낙원’으로 향하는 다리가 돼 줌으로써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해 주는 치유를 효과를 낳는다. 특히 강렬한 붉은색과 푸른색 등등 단색화의 작품은 강한 에너지의 발산을 통해 이를 바라보는 자에게 열정을 불어넣게 될 것이다. 단색으로 이루어진 조성희의 한지작품들은 가까운 거리에서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면 단색으로 보이는 특수한 국면을 지니고 있다. 그녀의 작품을 반복성과 수행성, 촉각성을 특징으로 하는 ‘단색화(Dansaekhwa)’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조성희의 단색화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노동집약적인 수공(手工)에 의해 제작되는 조성희의 한지 작품은 반복되는 수작업(手作業) 특유의 아우라를 지닌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 혹은 극기(克己)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류(類)의 작업은 시간의 축적 혹은 과정으로서의 예술적 특징을 보여준다. 그것을 일러 우리는 ‘수행(Suhaeng:performance)’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최근에 국제적으로 부상되고 있는 한국의 단색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평가는 유교, 도교, 불교가 어울려 혼효(混淆)되는 가운데 형성된 한국 특유의 문화에 대한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할 때 조성희의 한지 작업에 대한 이해와 평가도 이제는 이러한 문화적 준거틀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 윤진섭, 〈우주와 인생에 대한 통찰, 조성희의 한지작업에 대하여〉 -

    조성희의 한지를 이용한 작품들은 예술가의 특권인 상상의 산물이다. 창호지를 바른 격자창과 완자창으로 둘러싸인 한옥에 얽힌 유년기의 추억은 조성희 예술의 원천 가운데 하나이다. 그녀가 지금 벌이고 있는 저 창조의 에너지로 가득 찬 작업은 어렸을 적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놀던 유희 본능과 깊은 연관이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탁월한 역사가인 후이징아(Johan Huizinga)가 문화의 본질로 본 ‘놀이 정신’이 조성희의 작업 맨 밑바닥에 깔려 있음을 본다. 그렇지 않다면 그처럼 고된 작업을 장구한 세월에 걸쳐 지속하지 못 했을 것이다. 놀이는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늘 새로운 작업을 향한 창조의 더듬이를 통해 작업의 반경을 넓혀나가는 조성희의 예술에 대한 열정은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기 위한 끊임없는 놀이의 천착이 아니겠는가? 70대 노령에도 불구하고 불처럼 뜨거운 정열로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조성희는 단색화에 대한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의 구축을 위해 오늘도 정신하고 있는 것이다.

    ■ 윤진섭 (미술평론가)


    조성희와 앤서니 하덴-게스트의 대담

    조성희 작가는 한지를 이용해 매혹적인 작품을 만든다. 한지는 한국 닥나무로 만든 종이로, 아시아에서 1,500년 이상 미술 재료로 활용되어왔으며 가치가 대단한 덕에 예로부터 종종 조공으로 바쳐져 왔다. 조성희의 작품 제작 과정에 대해 이야기함에 있어 ‘수고스럽다’라는 표현으로는 그 과정을 말하기 부족하다. 작가는 수작업을 통해 한지를 같은 크기의 원형 조각으로 오린 후 작품의 바탕이 되는 면에 붙이는데, 대개 캔버스를 바탕으로 선택하며 접착제로는 한국 목공풀을 사용한다. 한국 목공풀은 연성이 큰 재료로, 작가가 다른 풀을 사용한다면 대부분 깨져버릴 수준 이상까지 재료를 빚을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둥근 한지 조각을 붙인 후에는 조각 하나하나를 테레핀으로 희석한 유화 물감으로 채색한다. 테레핀은 소나무 수액을 이용해 만든 용액이기 때문에 조성희가 작품 제작에 활용하는 타 재료와 함께 사용하기에도 적합하다. 작가는 꽃잎과 줄기가 겹겹을 이룬 저부조처럼 작품의 표면이 존재감을 나타낼 때까지 이렇게 한지를 붙이고 칠하고, 또 붙이고 칠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수만 개의 둥근 한지 조각을 사용하기도 하며, 작품이 본인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다시 보고, 덧칠하고, 한지를 더하고 쌓아 올린다.

    조성희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꽃밭은 그것이 단색이든 다색이든 강렬하면서도 섬세하여 두드러지지만 고되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말 그대로 고통스러운 제작 과정은 시의적절한 질문을 필요로 한다. 기술 전문가들은 바로 이런 작업을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하게 하는 방법과 수단을 발명해냈다. 요즘 10대 청소년들은 이런 작업에 필요한 기술을 갖추고 있다. 포토샵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수작업 방식으로 회귀하는가? 바로 여기서 조성희의 배경 이야기를 살펴보게 된다.

    조성희는 1949년 한국에서 출생했다. 그 시대 한국은 가부장적인 문화가 특히나 뚜렷했던 때였지만 조성희 작가와 부모님, 그리고 7명의 형제자매는 사랑 넘치며 서로 끈끈한 가족이었다. 생생한 그녀의 어릴 적 기억 중엔 아버지가 소중히 여기던 정원에서 7살 즈음 된 그녀를 번쩍 들어 올린 기억도 있다. 작가의 아버지는 그 정원에서 꽃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 정원에 대한 정말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어요.”라고 작가는 말한다. “저는 행복한 아이였습니다. 저에게는 모든 것이 아름다웠어요.”

    조성희의 아버지는 은행가였고 가족은 한국 전통 가옥인 한옥에 살았는데, 한옥은 한국 방식대로 한지로 꾸며졌었다. 하지만 한지는 창호로 사용 시 닳고 찢어지기 마련이었기에 2년마다 새 한지로 교체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녀는 “한지를 교체할 때면 하루 이틀 집 안에서 노는 것이 허락됐어요.”라고 했다. 어머니는 상자를 오려 앞, 뒷면에 아버지, 어머니, 일, 이, 삼 등의 단어를 이루는 글자를 써 어린 조성희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 뿐만 아니라 딸에게 알맞은 크기의 방을 배정해주고 그 방의 벽을 꾸미도록 하셨다고 한다. “오려낸 종이 조각들을 가지고 다양한 모양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만든 모양들을 벽에 붙여도 된다고 하셨지요. 색칠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정말 저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그녀가 어른이 되어 한 작업, 이를테면 콜라주나 색상 선택 등의 형식적 기초가 바로 그때 쌓인 것임을 알고 있다.

    조성희는 1970년대에 홍익대학교에 입학했고, 그 당시 그녀가 사사했던 교수진에는 한국의 가장 저명한 추상화가인 남관과 박서보도 있었다. “수업 내용은 주로 에콜 드 파리에서 뉴욕 화파로의 전환, 입체파에서 추상표현주의파로의 전환에 관한 것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이런 전환의 중요성에 관해 공부했어요. 뒤샹식 개념도 배웠고 다다이즘도 많이 다루었습니다.”라고 했다.

    조성희는 본인의 작업도 병행했다. 작가는 “저는 뭔가를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신문지를 활용한 파피에 마쉐(papier maché)에 더 집중했고요. 이를 혼합하여 여러 다른 형태로 바꾸는 시도를 했습니다.”라고 했다. 조성희는 198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 오티스미술대학(Otis School of Art)에 입학해 에머슨 월퍼(Emerson Woelffer)의 지도를 받다가 월퍼의 추천으로 시카고미술대학(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으로 옮겨 학업을 이어갔다. 이후 뉴욕으로 옮겨가 당시 첼시 지구로 바뀌어 가고 있던 28가와 10번 애비뉴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신문지와 판지 상자를 미술 재료로 하는 작품들을 제작했고, 이렇게 만든 작품을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의 갤러리와 예술 공간에서 선보였다. 그런데 작가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저는 벽에 가로막힌 것 같았습니다. 제 오브제와 작품을 아름답게 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제 작업에는 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냥 큰 블록을 만들거나 단순히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만 나를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제가 생각하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알맞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조성희의 개인사 중 하나가 이와 관련 있는데, 중요한 부분이다. 조성희는 결혼하여 이정호라는 이름의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결국 파경을 맞았다. 게다가 아들을 맨해튼에서 키우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이런 상황과 가족의 압박으로 인해 그녀는 아들과 함께 1987년 서울로 돌아간다. 하지만 한국에서, 특히나 그 시절 한국에서는 이혼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컸고, 작가는 사랑하는 가족에게서마저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고 한다. 작가의 아들인 정호 군은 어머니인 조성희 작가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어머니는 30대 후반, 40대 초반이셨는데 당신의 상황을 정당화하기 위해 싸우셔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강한 여성이 되셨어요. 그리고 훌륭한 어머니세요.”

    2010년으로 빨리 감기 해보자. 하루는 조성희가 작업실에 앉아 텅 빈 캔버스를 보고 있었다. 작가가 작업할 때 일상적인 일이 아닌가? 작가는 손을 뻗어 작업실에 놓여있던 한지 조각을 주워 캔버스에 붙였다. 점으로 사용해볼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 순간만큼은 작가가 작업하는 일상의 한순간이 아니었다.

    한지를 다룬 것이 조성희에게는 기억을 상기시키는 촉발제가 되어 풍성한 추억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 어릴 적 기억,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그녀를 안아 올리셨던 정원에 대한 기억, 어머니에 대한 기억, 형제자매에 대한 기억. 마치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린 것만 같았다.

    작가는 단순히 말한다. “제 콜라주 작업이 시작된 것이었어요.”라고.
    강도 높고 힘든 작업을 요하는 조성희의 작품은 수술실만큼이나 빈틈없이 준비된 작업실에서 만들어진다. 이를 실제로 본 증인의 말을 빌려 이야기하겠다. 바로 조성희의 아들이다. 이정호는 “작업실의 무언가가 대칭에서 벗어나 있다면, 예를 들어 테이블이 열을 맞추지 못하고 틀어져 있다면, 어머니는 작업 시작 전 그것부터 고쳐야 하는 분입니다.”라고 한다. “어머니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하세요.”

    여기서 흥미로운 문화적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아름다움은 이를 성공적인 과정의 부산물로 보는 경향이 있는 서구권 작가들 사이에서는 민감한 단어일 수 있다. 반면 조성희는 작품 제작에 있어 온 마음을 다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조성희의 단색 작품을 떠올려보자. 서양의 단색화에는 나름의 유명한 절정이 있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의 1918년 절대주의 회화 작 〈흰색 위의 흰색(White on White)〉, 애드 라인하르트(Ad Reinhardt)가 “누구나 그릴 수 있는 마지막 그림”이라고 표현한 검은 캔버스 회화 작품들, 그리고 마치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듯, 화가가 그린 듯한 느낌은 최대한 배제하고자 했던 로버트 라우션버그(Robert Rauschenberg)의 1951년 세 폭 회화 작 〈하얀 그림들(White Paintings)〉을 예로 들 수 있다.

    방금 예로 든 단색화를 비롯한 대부분의 단색화는 모더니즘에 대한 재치있는 코멘트다. 하지만 조성희의 그림은 그렇지 않다. 조성희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그리고 공간을 채우고자 하는 “가득함”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수십만 개의 한지 조각을 하나의 평면에 붙여내야 했음을 설명한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한국의 미학적 요소가 담겨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작가는 “가득함이 꼭 한국적인 것은 아닙니다. 제 성격과 더 연관 있죠. 저는 제 눈에 완벽하게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단색 작품의 경우 멀리서 보았을 때 살짝 비어 보이거나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느껴지면 저는 그 부분을 채워야 합니다. 하나의 균일함을 만들어내야만 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한 작품은 어떤가?

    “그 부분에서는 조금 더 자유로움을 느낍니다.”라고 작가가 답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콜라주에 계속 끌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다양한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작품과 현재의 작품, 젊은 작가들이 만든 예술 작품에도 많이 노출되어 있지요. 콜라주라는 기법은 전혀 새롭지 않지만 제 목소리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는 제 나름의 방식입니다. 물론 과거의 것을 참고하고 존중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세 개 단어는 참고(reference), 존중(deference), 그리고 다름(difference)입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저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습니다. 이게 저, 저 자신입니다.”

    오늘날 많은 작가가 어렵고 종종 어둡기도 한 우리 시대를 표현한다. 그렇다면 조성희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합니다. 저는 작품을 감상하는 모두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전하고 싶어요. 왜냐고요? 제가 작업을 할 때, 실제로 작품을 만들 때, 시리즈를 마무리할 때, 새로운 모양이나 색으로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할 때 기쁨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제 작품을 보거나 소장하게 되면 저는 그 사람이 제가 작품을 제작할 때 행복했던 만큼, 지금 행복한 것처럼 행복했으면 합니다. 관객이 작품의 존재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 앤서니 하덴-게스트 (미술평론가)



    마음으로 만든 ‘상상의 영역’

    Ⅰ.
    컴컴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은 행복하다. 어렸을 적 본 별들을 생각하며 희망을 마음속에 품고 미래의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는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즉, 마음속에 품고 있는 어떤 일이 미래의 어느 날 이루어지길 바랄 때, 우리는 ‘희망을 갖는다’고 말한다.

    조성희의 작업은 이 희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그녀의 작업은 한지를 이용한 평면작업이 됐든, 아니면 조각을 연상시키는 설치작업이 됐든지 간에 ‘유년 시절’로의 긴 회항(回航)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민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제는 잃어버린 유년 시절의 꽃밭, 즉 ‘실낙원(Lost Paradise)’을 찾아 긴 여행을 시작한다.

    조성희가 어렸을 적, 집의 드넓은 정원에는 각종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유난히 꽃을 좋아한 아버지는 정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나비가 날고 벌이 잉잉대는 꽃밭은 어린 그녀의 놀이터였다.

    아스라한 기억의 저편에 어렴풋한 환상으로 존재하는 그 아름다운 정원은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제는 단지 ‘실낙원(Lost Paradise)’에 불과할 뿐이다.

    실낙원은 절망감을 낳는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볼 수 없는 현실은 절망감을 낳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가상이나마 ‘잃어버린 낙원’을 재건해 보자는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한 역설이 조성희의 예술을 낳는 원동력이다. 그녀의 한지를 이용한 작품들은 바로 이처럼 과거로의 긴 여행을 통해 ‘잃어버린 낙원’을 ‘다시 찾은 낙원’ 즉, ‘복낙원(復樂園)’으로 탈바꿈시키는 동인(動因)이다. 이 점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조성희는 어렸을 적 마음에 품었던 ‘꿈의 정원’을 주제로 작업을 펼친다. 유년 시절에 본 정원이 낙원이라고 한다면, 70대 중반의 노년에 이르러 한 사람의 작가로서 펼치는 현재의 작업은 이른바 ‘복락원(復樂園)’인 셈이다. 조성희는 잃어버린 낙원을 꿈꾼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현재의 작업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 떠나는 긴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 윤진섭, 〈‘잃어버린 낙원(Lost Paradise)’을 향한 회귀 의지〉, 조성희, 뉴욕 오페라갤러리 전시 도록, 2021 -

    그렇다면 조성희의 한지 작업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지닌 것일까? 작품을 처음 접한 관객은 십중팔구 작업에 기울이는 그녀의 엄청난 공력에 질리기 쉽다. 그리고 의문에 잠기게 된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녀는 저렇게 힘든 일을 자청해서 벌이는 것일까?

    얼마 후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관객들은 스스로 자문했던 의문이 풀리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한 의문은 우선 조성희가 제시한 한지 평면작품들이 유년 시절에 뛰어놀던 꽃밭에 대한 상징적 비유라는 것을 아는 순간 해소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붉거나 푸른 작은 원반 형태의 꽃들로 가득 찬 캔버스가 실은 꽃밭의 상징이라는 사실도. 관객들은 그녀의 작품을 보는 순간 회상에 잠기게 될 것이다. 유년 시절을 겪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누구나 한 번쯤은 꽃밭에서 뛰어논 경험이 있을 것이기에 그녀의 작품은 논리를 초월하여 감각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러면서 행복감에 잠기게 될 것이다.

    유년 시절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음속에서 잃어버린 세월의 강을 건너 이제는 잊어버린 ‘실낙원’의 영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 문을 조성희의 한지 평면작품들이 열어주고 있다. 조성희는 한지를 원반 형태로 작게 오린 후, 작은 한지 조각을 돌돌 말아서 만든 꽃대 위에 일일이 얹고 풀로 붙여 만든 넓은 가상의 꽃밭(캔버스)에 십 수차례에 걸쳐 붉거나 푸른 물감을 붓으로 뿌려 저처럼 ‘멋진 신세계’를 이룩한 것이다.

    Ⅱ.
    한지 평면작업에 덧붙여 조성희가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회심의 작업은 일련의 설치작품들이다. 나무로 만든 이 작품들은 딱히 조각이라기보다는 어떤 구조물 형태에 가깝다. 기둥을 연상시키는 그것들은 실은 조성희가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이다. 옆에서 보면 ‘공(工)’자 형태지만 위에서 보면 ‘열 십(十)’자 모습을 띠어 세 개나 네 개를 포개서 얹게 돼 있다. 같은 꼴로 만든 이 구조물들은 전시장 이곳저곳에 적절히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대체 이 기이한 형태의 ‘사물(Objet)’은 과연 무엇인가?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별’이라고 한다. 조성희는 커다란 기와집에 살았는데, 저녁을 물리고 난 후 마당에 편 멍석에 누워 바라다본 캄캄한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어린 소녀는 그 별들을 바라보며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폈을 것이다. 멋진 왕자가 사는 나라, 마치 동화 속에나 존재할 법한 호화스러운 왕궁을 상상하며 소녀는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상상의 꿈을 접었다 폈을 것이다.

    이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조성희의 작업은 비록 늦었지만 잊었던 유년 시절의 꿈을 다시 불러오는 일이다. 그 꿈을 복원하는 일에 어찌 정성을 다하지 않을 것인가? 그녀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을 모아 공들여 조합을 한다. ‘工’자와 ‘十’자의 모습을 띤 하나의 구조물은 ‘별’을 상징하는데, 다양한 형태의 각목들이 모여 이루어진 그것은 부위마다 각기 다른 형태에 다른 색들이 칠해져 있다. 전체적으로 똑같은 형태로 보이지만 부분을 뜯어보면 다 다르다. 마치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크기와 색깔이 다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냥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별이므로. 그것도 마음속에 품은, 보석보다도 더 진귀한 별이므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별들이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제아무리 ‘메타버스(Metaverse)’니 ‘NFT’를 운위하는 시대라 하더라도 가장 소중한 ‘마음’이 결여돼 있으면 말짱 공염불이요, 헛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텍쥐페리는 유명한 소설 <어린 왕자> 속에서 어린 왕자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는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는 거야.”

    순진무구한 마음이 없으면 진실된 작품을 낳을 수 없다. 이는 곧 천진한 아이의 눈에 세계가 바로 보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조성희의 마음이 실로 그렇다. 마음에 때 묻지 않고 순진무구한 구석이 있기에 저처럼 천진한 세계를 낳은 것이리라. 우주 속 어딘 가에 존재할지도 모를 자기만의 별을 그리며, 저처럼 기이한 형태를 만들어 놓고 ‘별’이라고 우기는 것이리라. 그 모습에서 우리는 한 명의 아이를 본다. 그리고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별에는 집이 있으며,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상상하며 조성희의 ‘별’과 ‘집’인 나무상자들을 바라본다. 나무로 짠 상자 모양의 ‘사물(Objet)’들은 크기나 형태가 서로 다르다. 옆으로 트인 나무상자의 안쪽 벽이나 천장에는 꽃들이 자라고 별들이 반짝인다. 관객들은 서로 다른 그 모습들을 잘 보아야 한다. 왜? 마음으로 정성껏 만든 ‘상상의 영역’이기에.

    ■ 윤진섭 (미술평론가)

    전시제목조성희: 상상의 영역

    전시기간2021.12.01(수) - 2021.12.31(금)

    참여작가 조성희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장르회화, 설치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학고재 Gallery 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소격동, 학고재) 학고재 본관)

    연락처02-72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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