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용
화양연화 60x100cm, Mixed meadia mother of pearl on wood, 2024
김덕용
Ocean Rhapsody 100x180cm, Mixed media(Mother of pearl) on wood, 2023
김덕용
차경-관해음 100x140cm, Mixed media mother of pearl on wood, 2024
김덕용
결-순환 160x140cm, Mixed media(Mother of pearl) on wood, 2023
김덕용, 연결과 순환의 한국미-‘세밀가귀(細密可貴)’
안현정 |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나전 솜씨가 세밀해 가히 귀하다(細密可貴)” - 송나라 서긍의 『고려도경(高麗圖經)』 중에서
세밀가귀라는 고려 나전(螺鈿)의 세련됨이 ‘완벽한 기량’과 ‘자연미감’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삭힘의 자세를 통해 작품에 안착된다. 김덕용은 이를 “세월의 결로 새기는 한국적 아름다움”이라고 평한다. 나무의 결이 자연스러운 시간 속에서 생성되듯이, 담백하게 발현된 ‘시간성의 발효’는 고려장인의 섬세함을 타고 천년 뒤 김덕용의 오늘과 만난다. 작가는 “한결같다”는 말을 좋아한다. 흐르는 물(流水)이 과거-현재-미래의 레이어로 연결되듯, 작품은 고려 시대 최고 미감을 바탕삼아 가장 현대적인 매체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최근 작가의 여러 작업을 혼성모방한 사례들이 적잖이 목도되지만, 김덕용의 작품을 눈여겨 본이라면 한국적 세계관과 완성도에서 모방하기 어려운 ‘최고기량과 곰삭듯 녹아든 미감의 깊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나전이 자연의 여러 문양들을 패턴화 했다면, 김덕용의 작품은 고른 표면 위에 현대적인 추상과 구상의 단면들이 정확한 배열과 단청 채색 등을 겸비하면서 조화된다. 옻을 기반한 자개-알 껍질-금박과의 조화 등까지 김덕용의 작품들은 고도의 기술과 동시대 미감이 겸비된 ‘최고기량의 조화미’라고 할 수 있다. 전혀 다른 미감 사이의 조화는 끊고 마감해 연결하는 ‘공간 프로젝트’를 통해 확장된다.
작가의 작품은 크게 순환의 결을 연결하는 ‘관계 중심’의 키워드와 무한대의 공간을 제한적 재료로 개성화한 ‘차경(借景)-time and space’ 시리즈로 나눌 수 있다. 오랜 나무판에 올려낸 인물들 또한 한국의 자연을 ‘생의 미학’으로 올려낸 구수하고 깊은 맛을 담았다. 나무판에 연결된 ‘세밀가귀의 위엄’은 자연의 조화미를 현대적 공간으로 옮겨 ‘한국적 피막을 생성하고, 자개와 나무, 재를 활용한 독특한 작품’으로까지 연결된다. 순환하는 우주를 보는 듯한 김덕용의 작품들은 “인간의 유한성에도 불구하고, 영속되게 살아가는 자연의 이치”를 담는다. 추상과 구상을 구분하기보다, 한국적인 소재와 전통 재료를 초석삼아 정신의 깊이를 좇아 ‘나의 시간과 공간이 요구하는 대로’ 따르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작가의 작품들은 여러 은하계가 우주라는 무한대의 에너지로 연결되듯 ‘차연(差延, différance)’의 방식을 좇는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차연’이 해체와 지연이라는 상반적 언어의 결과값(Result Value)이라면, 김덕용의 방식은 순환하면서 개별화되는 “여러 마음의 방”을 하나의 연재처럼 연결한 더욱 넓은 차원의 종합화를 의미한다. < 차경(borrowing landscape: 자연에서 빌려온 경치) > 시리즈에 등장하는 바다, 별들의 궤적을 그린 <우주(宇宙)>, 유희하듯 어우러진 <상서로운 산수> 시리즈 등은 ‘순환하면서도 연결되는 귀한 미감’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동양화라는 전공에서 찾기 어려운 대중적 매개체를 ‘한국미의 다채로운 재해석’ 속에서 결집해온 작가는 동서고금의 미감을 종합하는 ‘최고기량의 조화미’를 실험하면서 한국미를 하나의 순환미감 속에서 실현하고 있다.
“한국의 미는 담백, 절제, 발효, 숭고, 그리움....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비빔밥같은 조화의 미학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에서 근원의 그리움을 찿아가는 결의 순환인 것이다.”
- 김덕용 인터뷰 중에서
작가의 말
태초
우리는 우주의
한 점이런가..
玄의 한 점은
모체에서 생성되어
생명으로 존재하다가
다시 빛이 되어
한 점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 하나의 점은
심현의 공간에
영롱한 진주처럼 한톨의
씨앗으로 뿌려져
새로운 생명으로 움트고
다시 우리에게 따뜻한 감성으로 비춰 온다
점은 씨앗이고
씨앗은 생명이다
생명은
형체가 변할지라도
결코 소멸되지 않고
함께한 그들의 마음에
한 점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심현(深玄)을 향한 의경(意境)
김찬동 | 전시기획,전 수원시립미술관장
언젠가 교외에 장만한 지인의 새 집에 초대받았을 때, 집주인은 하늘을 향해 뚫린 유리 천정을 자랑하며 밤마다 무수한 별들과 우주를 자신의 방으로 초대하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일상에서 별을 올려다 볼 기회를 잃고 사는 필자에게 그의 말은 단순한 자랑 그 이상이었다. 한옥에 살던 선인들은 외부의 풍경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되도록 창을 넓게 만들기도 하고 지붕창을 만들어 실내외를 하나로 통하게 하는 자연관을 구현했다. 이러한 차경(借景)의 방식은 단순히 자연을 받아들여 즐기는 차원을 넘어 내부 공간을 소박,단순화하면서 그 공간에 거주하는 인간의 내면을 비우기 위한 사유이기도 했다.
김덕용의 작품들은 인물이나 한복,달 항아리 등 전통적 요소들이 배치된 실내를 소재로 다루면서 부분적으로 창밖의 풍경들을 병치하는 방식을 보여 왔다. 근작에서는 과거의 작품과 달리,인물들은 보이지 않고 윤슬로 반짝이는 가없는 바다와 무수한 별들이 흩어진 밤하늘의 풍경이 자주 등장한다. 그의 작품에는 실재 목재를 화면에 부착하여 형상화한 마루나 기둥,창,문 그리고 가구들이 등장하는 데, 명시적이진 않지만 전통 한옥의 공간을 염두에 둔 듯 실내와 외부를 자연스럽게 하나로 연결해 내고 있다. 그의 <차경(借景)> 연작은 내부 공간과 외부공간을 한 화면에 동시에 담아냄으로써 이러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실내 공간이 드러나 있지 않은 경우도 내부의 공간이 외부까지 확장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는 그가 기본적으로 가변성과 비움을 기본으로 하는 전통 건축의 공간관에 익숙함을 드러내고 있다. 근작에서는 건축적 요소의 비중이 약화되는 대신, 풍경 이미지가 강화되어 있다. 좁은 기둥들 사이로 넓게 펼쳐지는 바다나 밤하늘이 그것이다. 또 <심현(深玄)> 연작에서는 건축적 요소가 최소화되거나 배제된 채, 달 항아리와 같은 기물이나 풍경 그 자체만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의 시선과 관심이 점차 차경의 대상이 되는 외부의 요소들로 옮겨가고 있는 듯하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인 인물이나 꽃,한복,자개 장롱,전통가옥 등의 이미지는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감성을 표출하고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이 부드러움은 그의 의식 심층에 내재되어 있는 불안과 공포, 젊은 날 아픈 기억들의 승화된 것이다. 광주 5.18의 현장에서 경험한 죽음에 대한 극심한 불안과 공포, 적응하기 힘든 낯선 환경과 빈곤,고독과 싸워야했던 서울에서의 대학 시절, 청춘의 아픔과 방황을 극복할 수 있게 한 힘은 어머니의 사랑과 고향의 친구들이었다 한다. 그의 작품 속 따뜻함과 부드러움은 그가 나고 자란 고향 남도의 자연과 인간들에 대한 향수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그의 근작은 이러한 향수와 그리움을 정신적,형이상학적 차원으로 승화시켜내고 있다. 그의 <차경>이나 <심현>은 그가 추구하는 근원적인 세계,시원성에 관한 동경과 희구를 드러내고 있다. 차경의 대상이 되는 바다와 하늘(우주)은 그에게는 생명의 시원이 되며 회귀해야하는 본질적 세계인 것이다. 그는 이 세계를 바다의 심연에서 나고 자란 생명체인 자개의 단편들과 존재를 태우고 남은 재와 숯가루로 형상화 한다. 자개의 편린들로 형상화한 윤슬이나 별들의 반짝임 그리고 달(항아리)의 광채는 자연에 함축된 영겁의 흔적을 담고 있는 재료들에서 작가가 읽어낸 시원의 언어와 형상이다. 이러한 자각과 감수성을 통해 작가는 영속과 순환의 우주 안에서 하나의 작은 존재인 자신을 발견해 내고 있다.
“ 태초 우리는 우주의 한 점이련가......
한줌의 형체는 하나의 점이되어 심현의 공간에 한 톨의 씨앗과 진주로 뿌려져
새로운 생명으로 움트고 다시 우리에게 따뜻한 감성으로 비춰온다.”
작가 노트
그의 작업 과정은 깊은 심현에 영속과 순환을 위한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심정의 발로이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현실을 떠난 관념의 세계를 노닐지 않고, 치밀하고 정교하면서도 지난한 장인적 공력으로 현실과 마주한다. 자개를 자르거나 빻아 가루로 만들고 나무를 태워 재를 만들어 안료와 섞어 원하는 색을 얻어낸다. 육체와 땀으로 물질에 부딪치며 그 물질에 정신과 혼을 넣어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동양화론에선 이러한 작가의 주관적 정서와 객관적인 물상의 결합을 의경(意境)이라 한다. 의경은 작가의 사상이나 심미의식이 작가의 체험과 융합하여 그 정신과 기질을 드러내는 것이며, 작가의 주관적 심미의식을 작품상에 표현하는 것이다. 예술창작과정에서 의(意)의 개념은 작가가 객관 대상을 관조하고 내면에 융합시킨 주관적 평가와 아울러 예술적 사유에 의해 재창조되어 형성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또한 경(境)은 작가의 심미의식 속에 묘사되어 구체화된 풍경이나 사물을 가리키며 예술가가 객관사물에 대한 관찰과 체험을 통해 자연의 본연에 접근함을 의미한다. 즉, 단순한 객관의 묘사에 머무르는 것에서 벗어나 심미대상의 본질에 역점을 두어 그 정수를 취하는 것이다.
김덕용의 작품은 긴 여정을 통해 심현을 관조하는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심현을 그 넓이를 측량할 수 없는 깊은 어둠의 세계로 피상적으로는 혼돈처럼 보이나 그 안에 빛과 생명을 담지하고 있는 근원적 세계라 할 때, 그는 인간이 나고 돌아갈 그 곳을 그리워하며 그 시각으로 사물과 인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구사하는 이미지들은 단순히 시각적 대상으로서의 경물(景物)이라기보다는 존재의 본질에 관해 질문하는 통감각적 소산이며, 피상적으로 볼 때, 그의 화면은 사실적 묘사의 결과라기보다는 추상성을 가진 하나의 물성적 특성을 가진다. 물론, 그 물성은 서구 모더니즘이 추구하던 사물로서의 회화적 본질을 추구하는 차원과는 다른 것이다. 물질과의 정신적 교감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이며,몸 전체로 자연과 우주만물의 자체의 원리로 자연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려는 태도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자개의 편린과 재로부터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곳에 감추어진 우주의 빛과 어둠의 언어를 탐구하고 표출하는 그의 근작들에서 영속과 순환의 심현을 향한 의경의 세계를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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