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익송: 시공간을 넘어
2024.07.11 ▶ 2024.09.08
2024.07.11 ▶ 2024.09.08
전시 포스터
1980년대 후반, 정치·사회적으로 이념적 충돌과 갈등이 사라지고 안정기에 돌입한 대한민국은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88올림픽과 1993년 대전엑스포를 차례로 개최하며,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 미술계 또한 젊은 작가들이 해외로 유학을 떠나며 다른 여러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작가들은 기억과 시간, 문화 간 이동, 유토피아 등의 주제를 다루게 되었다.
그 당시 주목받던 작가 중, 고(故) 진익송(1960-2022) 작가 또한 졸업 직후 도미(渡美)하여,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동시대 미술을 체감하고 한국에 돌아와 지난 40여 년간 한국과 미국, 영국 등을 오가며 일관되게 공간과 시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미국의 화가이자 저명한 미술 평론가인 윌 바넷(Will Barnet, 1911-2012)은 진익송의 작품에는 전진적이고 목적 있는 어떤 속성이 있으며, 작품 스스로가 시간을 통해 완벽해져 가는 양식을 취하면서도 현시대의 예술적 관점을 아주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데, 그 자체가 자신의 주변 시야(perimeter)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속에서 각 작품이 생동감 있게 작용한다고 평하였으며, 그의 작품은 마치 어떤 새로운 세계, 신비의 영역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듯하다고 호평하였다.
기획전 《진익송 : 시공간을 넘어(Beyond the Timeless Door)》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전시켰던 작가이자, 후학양성에 매진했던 교육자였지만, 지난 2022년 전시 참가를 위해 미국 뉴욕에서 머물다가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충북대학교 교수 고(故) 진익송 작가의 시대별 작품과 업적들을 돌아보고자 한다.
진익송(1960-2022)은 1960년 8월 울산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에 부산으로 이사를 한 후, 부산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1979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학과를 입학하였다. 1984년 졸업 이후 1988년 부산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이후 그 당시의 동문들과 마찬가지로,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서 뉴욕대(NYU) 대학원을 입학하여 1992년에 졸업하였다. 1996년에는 주한영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연구장학기금 수혜자로 선정되어 1996년부터 1997년에 영국 뉴캐슬(Newcastle)의 노섬브리아대학교(Northumbria University)에서 방문작가 및 박사 후 연구원(Post Doc. Fellow)으로 영국의 현대미술을 연구하였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강의와 작업을 병행하였고, 1997년 충북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어 후학을 양성하며 작고하는 날까지도 제자들을 위해, 또 지역의 한계를 넘어 미술로 다른 지역, 다른 문화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작가는 학창 시절부터 주변 환경과 공간에 대한 탐색을 주제로 작품을 하였다. 사물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도 그 대상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조화 등을 모색하였으며 이를 발전시켜, 공간에 대한 연구를 평면 회화에 적용했다. 그 결과를 첫 개인전에서 ‘공감(Feeling Space)’을 주제로 전시를 하였으며, 같은 해에 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현대미술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며 많은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작품의 소재에 철판 등 다양한 오브제를 적용하여 ‘시간’을 덧입힌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후 진익송은 유학을 끝내고 다시 한국에 들어와 시간 강사 등을 하면서도 더욱 작품에 매진하며, 그의 작품 세계를 확장한다. 그는 한국, 미국, 영국 등에서 다양한 문화와 사회, 환경을 경험하며 그의 대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문(Door) 시리즈 작업을 선보이게 되는데, 문 연작들은 인간에 대한 사유와 삶에 대한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또한 수백 개의 시계가 붙어있는 <영원한 문(Timeless Door)> 연작들은 문 시리즈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그는 2010년대 이후 홀로그램 등을 적용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는데, 여기에서도 자신의 작품을 ‘작품’이라기보다 ‘연구’라고 불렀던 그의 연구자로서의 태도가 돋보인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하였는데, 1980년대 초기 작품을 다룬 “1부 : 공감, 공간에 대한 감각(Feeling Space)”, 1990년대 뉴욕에서 철판으로 제작한 작품들과 문(Door) 시리즈의 초기작으로 구성한 “2부 : 시간을 담다(On the Steel Paper)”, 2000년대 다양한 문(Door) 시리즈 작품을 다룬 “3부 : 시공간의 여행자(A Traveller through the Doors)”, 2010년대 그의 대표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타임리스 도어(Timeless Door)’ 시리즈를 다룬 “4부 : 영원한 문을 넘어(Beyond the Timeless Door)”와 더불어, 에필로그 “끝나지 않은 실험(The Unended Study)”에서는 그의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작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상영한다.
이 세상과 현상에 대해 명철하고 예리하게 분석하였지만,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보듬는 마음을 잃지 않았던 작가의 지난 작품을 통해 세상과의 조화, 시간의 유한성과 무한성, 인간 내면의 선택과 확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진익송은 시간과 공간, 현시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했던 연구자로서, 또 제자들에게 작가로서의 길을 열어주고자 열렬히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교육자로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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