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유신애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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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편지: 삿된 청지기로 거하라
무엇이든 의심하고 의심받는 시대에 단 한 가지, 절대 의심받지 않는 것이 있다. 자본주의라는 절대적 질서이다. 이 상징적인 존재는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결코 그 책임을 묻는 법이 없다. 도리어 이 엄중한 체제를 기만하고 흠집을 낸 개인만이 끊임없이 재판에 회부될 뿐이다. 뒤에 물러나 얼마간의 거짓과 신비로 치장해 그 실체를 부풀리는 것, 이것은 곧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선악과라는 원죄를 짊어진 인간의 몸과 찬란하게 빛나는 슬롯머신, 화려한 장신구, 사이비 종교와 정체가 불분명한 광고 등을 외피로 두른 자본주의는 그 정체를 숨기고 우리 곁을 맴돌며 맞춤형 구원을 제안한다.
제14회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 유신애 개인전 《파생적 메시아》는 동명의 영상 작품을 중심으로 개인과 사회 간의 역학 관계가 빚어낸 오늘날의 새로운 메시아주의를 탐구한다. 그간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며 동시대 자본주의 사회 저변에 깔린 문화, 현상을 감각적인 언어로 포착했던 유신애는 이번 전시에서 그 구조의 근원에 위치한 믿음의 역할과 존재 방식에 의문을 부친다.
구원의 메시아라는 상징자본은 왜 이다지도 견고한 것인지. 그렇다고 이 닳고 닳은 묵시록을 아무 의문 없이 수용하거나, 그냥 냉소하며 넘겨 버려서는 안 될 일이다. 문 너머로는 여러 인물들의 간증과 회의 섞인 자기 고백이 이어진다. 전시 《파생적 메시아》는 과잉 욕망과 고도의 화려함, 불현듯 찾아오는 의구심과 회의감을 보탬이나 숨김없이 늘어놓는다. 희망과 절망, 도덕과 쾌락, 겸손과 교만,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 자기애와 자기혐오, 모든 모순적인 것들이 이 안에 기이하게 뒤엉켜 있다. 자본주의가 현실의 순순한 작동을 위해 온갖 실체 없는 것들을 매끄러운 포장으로 감추어 왔다면, 유신애는 모순되는 것들의 팽창을 통해 눈앞의 현실이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씨앗을 심어 자본주의의 영업 비밀을 살짝 들춰낸다.
우리는 세상이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믿었고, 이내 신은 죽었다고 믿었다. 곧 세상이 종말 할지 모른다고 믿기도 했다. 이 믿음들은 모두 깨진 지 오래다. 의심 많은 도마처럼 무엇이든 의심하는 나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구원을 바라는 나는?
신, 종교, 돈, 부동산, 물질, 자연, 과학, 지식, 사랑, 우정, 죄책감, 그리고 공포. 믿음이란 멍에 아래 나는 무엇과 연루되어 있는가. 내가 보는 것이 나를 이룬다는 믿음. 돈이나 부동산, 오직 손에 쥘 수 있는 것만이 나를 지킨다는 믿음. 신은 존재한다는 믿음. 그 초월적 존재가 나를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 나는 누구도,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는 믿음. 혹은 그냥 믿음 그 자체.
유신애(b. 1985)는 서울을 기반으로 작업한다. 2013년경, 유럽에서 활동을 시작해 현재는 한국을 중심으로 활동 중이다. 프라하 현대미술센터(2019, 프라하, 체코), 쿤스트하우스 랑겐탈(2016, 랑겐탈, 스위스)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문화역서울 284(2023, 서울), 핑샨아트뮤지엄(2023, 선전, 중국), 쿤스트할레 베른(2018, 베른, 스위스) 외 다양한 곳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제2회 프리즈 서울 포커스 아시아 스탠드 프라이즈(2023)와 스위스의 주요 미술상인 에슐리만 코티 어워드(2016)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23년 제14회 두산연강예술상 미술부문의 수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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