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자
A chi of Yin and Yang 음과양의기(氣) Acrylic on wood with mirror, 30x96x6inch, 2010
김희자
Up close sky 허공을향해 Acrylic on wood with mirror, 24x84x4inch, 2010
김희자
Comes like dewdrop, and... 아침이슬로 왔다가 ,저녁별이 되어 떠나리... Acrylic on wood with mirror, 56x48x8inch, 2010
김희자
Dr.K's room 김박사님의방 Acrylic on wood with mirror, 24x24x4inch, 2010
김희자
The long awaited 너무나긴기다림(부분컷) Acrylic on wood with mirror, 16x48x4inch, 2010
거울시대, 김희자의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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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란 삶의 여정에서 보자면, 한 작가가 그 자신의 눈으로 세상살이를 읽어내는 방법이자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종교의 눈으로 세상을 컬러링해서 읽기도 하지만, 어린아이의 눈으로 솔직하고 천진무구하게 읽기도 한다. 어렸을 적에 배운 과학이나 커서 익힌 철학, 어느 날 감동있게 읽은 문학, 아니면 저 위대한 음악의 울림을 빌려 읽는 건 아주 예사로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림을 그린다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무엇인가에 물들여지지 않고서는 어떤것도 그릴 수가 없지 않은가? ‘의미읽기’recture에서 ‘관습주의’conventionalism라 부르는 게 이것이다. 김희자론을 말하기에 앞서, 이 말을 하는 건 작가가 십여년 전 미국행을 전후로 그림을 일구어온 방식이 그녀가 선택하고 설정한 룰에 따라 누구 보다도 치열하고도 일관되게 세상살이를 읽고자 한 데서다. 김희자는 일찍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와 선불교, 특히 유식唯識 Intelligence-Only론에 접한 바 있다. 여기에 1980~90년대에 운명처럼 다가온 생의 고뇌가 가세함으로써 작가 특유의 예술적 사유체계가 이루어졌다. 그녀가 일구어낸 방식은 그야 말로 그녀 독자적인 것이었다. 나약함과 좌절이 아니라 치열과 힘을 지향했던 건(니체) 물론, 세속적 욕망과 유혹을 한낱 만화경에 비유했던 건(유식학) 그 녀의 독자적인 회화를 구축하는 데 커다란 요인이 되었다. 이 때문에 김희자에게서 그림이란 아름다움을 쫓는 신기루 작업은 결코 아니었다. 작가의 언급처럼, ‘인간의 욕망과 집착에서 마음을 어떻게 쉬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찾는 작업’이었다. 이 언급이야 말로 작가가 짊어진 고뇌의 깊이와 넓이는 물론 이를 타개하려는 치열성을 함축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작가가 여기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은 간단치 않다. 가정을 꾸리느라 늦깎이로 1980년대 중반에 판화를 시작했던 건 단지 하나의 시작이었다. 이 시절의 작품들은 엠보싱embossing의 판면에다 입체효과를 가하여 세상을 보는 마음의 눈을 미스테리의 빛으로 전치시켜 표현하고자 했다. 그 후 두 번째로 내놓은 1980년대 말의 시도가 쉐입캔버스였다. 평면이라는 한정된 틀을 벗어나 캔버스와 벽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화면을 토막 내거나 한가운데에 홀을 내었다. 이 시절의 홀은 선禪명상 시 무념무상으로 바라보는 ‘벽면 너머의 공간’을 뜻했다. 이른 바 응시凝視 gaze의 점으로서 홀은 작가와 관객이 ‘의문의 공허’를 공유함으로써 사물과 세계가 궁극적으로는 공空 emptiness으로 귀일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상기시켰다. 이거야 말로 유식학의 세계에 좀 더 가까이 가려는 작가 자신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도미하기 직전이던 1990년대 후반에 내놓기 시작한 게 화면에 거울을 등장시킨 작품이었다. 이 작품들은 종래의 홀에 거울을 덧대어 본격적으로 마음의 세계를 드러내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우리의 마음이 세계에 집착하듯이, 거울 또한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고자 세계로부터 자유롭지 않는다는 걸 보이려 했다. 그러나 거울 속의 세상이란 실은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 작가는 주목하였다. 우리가 보고 욕망하는 일체가 공하다는 의미에서 마음과 거울은 모두 허구를 쫒는 짝패라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 이를 뛰어넘으려는 의지는 마침내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를 불러왔고, 여기에 공空사상이 가세함으로써 도약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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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의 ‘거울시대’는 이렇게 해서 등장했다. 이번 「인사갤러리 초대전」은 1990년대 이후 거울시대의 초기, 중기, 후기에 이르는 전모를 보여준다. 전시장의 3개 층에 나누어 초기와 중기의 작품들이 회고의 의의를 더해 몇 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거반은 신작들이다. 신작들은 200년「인사아트센터 개인전」에서 선보인 것과 연계선의 작품들로 근자에 새로 제작한 설치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이번 서울 전은 김희자의 거울시대가 작가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보여준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이미 2년 전 귀국전에서 대거 선보인 바, 작가가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지금까지 살고 있는 롱 아일랜드의 망망 대해와 하늘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지난 해 전시작들의 경우, 마음 가는 장소에 의자가 딸린 테이블과 인간의 주체가 증발된 텅빈 공허가 등장한다. 구름 산 새 나무 물 사람 파도가 잔여 주제로 등장하지만, 이것들은 상징적 의미보다는 하나의 가시적 어휘로서의 역할을 한다. 자세히는 자신의 마음과의 관계에서 작용하게 될 의미의 향배를 위해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일견해서 바다 수면의 짧고 긴 파문, 하늘, 구름을 나무의 나이테로 전치시키는 방식은 물론, 같은 프레임 안에다 복수의 캔버스를 좌우로 배치해서 판넬의 나뭇결을 물결과 병존시키는가 하면, 물가에 나무기둥을 세워 물의 향수를 물씬하게 드러낸다.
바다풀 암석 나무 배 수중길 이름 없는 공간도형을 누이거나, 화면 가운데를 절개해서 절개한 만큼의 크기로 여닫이문을 만들어 화면가운데 설치함으로써 그림의 바깥과 안을 상정케 한다. 바깥 쪽에는 바다와 구름과 파도 잔디를 그리고, 안쪽 맞은 편 벽면에는 거울을 부착해서 안쪽 바닥에 그린 이미지를 거울에 반시시켜 실재의 이미지와 거울이미지를 중첩시키고 현실과 가상의 역동적인 병합을 시도하였다. 바깥 쪽에 그린 사물들은 이것들이 그 자체의 의의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작가가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결코 범접할 수 없는 무위자연의 조건들을 상징시키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안쪽의 거울이미지들은 이러한 사물들의 상이란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세계요 허상이란 걸 강조하려는 데 뜻이 있다. 궁극적으로는 사물과 거울이미지를 병합함으로써 인생지사 일체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만화경이자 요지경임을 폭로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이번 근작전은 이와 연장선상에서 현실과 가상, 가상과 가상이 침윤되는 보다 극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임머젼’immersion을 빌려 경계가 해방되고, 여기서 비롯되는 몽환적인 퓨전의 세계상을 클로즈업시킨다. 이미지로 채워진 화면 한가운데 닫힌 문이 있거나, 열러진 문 안에 벽감壁嵌을 설치하거나, 휑하게 뚫린 두터운 기념문, 아니면 문과 벽감을 아우르는 삼각 벽감이 대거 등장한다. 삼각 벽감을 전면에 클로즈업함으로써 작품은 평면에서 ‘인스톨레이션’으로 확장된다. 김희자의 거울시대는 어느 때보다 근자에 이르러 전성기를 구가한다. 가능한 한 모노톤으로 나뭇결을 최대한 살리는 한편, 삼각 벽감과 거울 이미지를 강화시켜 명상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근자의 경향은 2천년대 거울시대의 초기 작업이 검정 바탕에 흑연이나 은빛 무채색으로써 도미 직후의 절망의 침묵을 표출했던 것과 대조를 보인다. 이어지는 중간기에 보였던 나뭇 결을 캔버스의 일부로 삼아 희망의 메시지를 부각시켰던 것과도 차이를 드러낸다. 중간기에서는 옥색의 맑은 푸른빛으로써 바다의 정경을 그려 삶의 안정과 관조를 부각시킨 바 있다. 근작들은 이것들과 대비를 보여준다. 지난 해 인사아트센타 전을 포함해서 금년 인사갤러리 초대전에서 그 진가를 다시 확인시킨다. 근작들은 거울을 도입하는 방식을 빌려, 현실이란 곧 실체가 없는 그림자요 환영이라는 걸 전면에 부각시킨다. 부각시키는 방식의 여하에 따라 복잡도와 스케일이 달라진다.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거울을 곁들이냐, 아니면 이미지를 간소화하고 거울을 클로즈업시키느냐에 따라 작품의 정황이 달라진다. 그 어느 경우든 근작들은 현실의 허상과 만화경을 보여주려는 데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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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전에서 김희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건 기표記表 signifiers 면에서는 삼각 벽감과 거울이다. 기의記義 signified 면에서는 ‘만화경같은 세상’Kaleidoscope of world의 파노라마를 부각시킨다. 만화경을 ‘주마등’走馬燈 revolving lantern이라고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말은 말을 타고 달리듯 빠른 속도로 등이 회전할 때 순서를 따라 그림의 장면이 다르게 등장한다는 데서 붙여졌다. 사물이 시간을 따라 덧없이 변한다는 걸 나타내는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만화경은 속에 몇 개의 거울과 색유리 조각을 넣고 원통으로 둘러싸 회전시키면 온갖 형상들이 대칭적으로 작동되는 거울이다. 만화경을 즐기려면 구멍으로 들여다보면서 즐겨야 하기에 이를 일명 ‘핍쇼’peep show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들 모두가 김희자에게는 세계의 허구와 공허를 시사하는 은유들이 아닐 수 없다. 라캉의 정신분석 언어로 말하면 ‘이마고’imago로 상징되는 거울시대mirror stage의 표상이다. 이게 김희자의 후기 시대에 실제의 거울을 빌려 화려하게 등장하였음은 우연의 일치일까? 일찍이 김희자는 1990년대 말 삼각 캔버스에 삼각 벽감을 뚫어 현실 너머를 응시한 적이 있다. 2천년대 중후반부터는 벽감에 거울을 덧대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삼각 벽감은 애초 캔버스를 부착해서 캔버스와 벽과의 관계에서 공간의 깊이를 드러내려 한 데 뜻이 있었지만, 거울을 덧대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마음의 환영을 드러내는 쪽으로 전향하였다. 특히 마음이 보는 세계인 과거 현재 미래의 3세世와 삼각 벽감을 동일시하려는 데 뜻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라캉에 의하면, 흔히 유아기 시절 이마고의 의식이 무의식 가운데에 구조화되어 있다가 성장 이후 현실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동기를 만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발발한다. 라캉에게서 유아는 성숙한 작가의 미래상이다. 작가들은 흔히 어린 시절의 기억을 오늘의 현실과 동일시하거나 현실에 대처하는 방편으로 삼는다는 게 라캉의 생각이다. 김희자의 거울 역시 자신의 무의식에 구조화되어 있는 어린 시절의 이마고의 반영이자 재발견의 품목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마고를 다룸에 있어 니체의 권력(욕망)의 개념은 물론 일체는 마음이 지어낸 허상이라는 유식학과 결부시켜 작가 자신이 가장 성숙한 시절, 특히 거울을 빌려 등장시켰다. 그녀는 일찍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의 작업에서 거울 삼각형이라는 입체물은 욕망과 그 반향, 그리고 왜곡된 세상의 굴레를 뜻합니다. 삼각형의 세 개의 날이 섰을 땐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욕망에서 오는 불안을 삼각형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 구조는 만화경에서 차용했지만 환상의 공간이 갖는 생생한 내용들과 매혹적인 존재는 단지 텅빈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나의 작품에서 안에 있는 삼각형과 겉에 있는 삼각형은 갈등과 모순을 풀어가는 삶의 과정같은 것입니다. 작업에 거울놀이의 만화경 구조를 도입하고 감상자와 이를 함께 즐기고 싶어 설치의 방법을 차용했어요. 인생은 요지경이라는 속어가 얼마나 진실로 다가왔는지 모릅니다(이주헌과의 대담에서 일부번안, 1999).
이 언급은 작가가 생의 초기 시절에 읽은 니체를 후기시대에 작가로서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동기의 하나로 불러들여 생애에 걸쳐 줄곧 관심을 가졌던 유식의 세계와 결부시키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시도는 사회행동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만화경과 주마등이라는 이마고(허구)를 은유로 삼아 인생사의 부질없는 욕망을 상징적으로 해체하려는 데 뜻이 있다. ‘마음의 비유로서 거울을 빌려 만화경 같은 요지경의 세상사를 그리려 했다’(2008 노트)는 작가의 언급은 허구에다 강렬한 힘(니체)을 실어, 허상에 안주하려는 현대인의 삶이 실은 욕망의 부유물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한다. 이 시도는 궁극적으로는, 속화되기 이전의 순연한 의미의 니체를 차용하여 속화된 권력을 공격하는 데 목적이 있을 뿐 아니라, 물신주의fetishism에 매몰된 현대인의 속물근성을 상징적으로 전복시키려는 데 뜻이 있다. 한마디로 말해 현대인의 물화物化된reified 삶에 대한 총체적 비판이 김희자의 근작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비판의 매너에 있어 은근과 예의를 잃지 않는다. 지난 해 보여주었던 강열한 품새를 상당히 완화시켰다. 본질에 있어서는 권력에의 의지를 그 역으로 차용함으로써 현실을 풍자하고자 하는 데서는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 김복영(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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