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주의(청기사/다리)
서양미술사20C초(1900-1945)
인간의 감정을 형태로 표현하라
표현주의는 유럽전역에 걸쳐서 다양한 미술가집단들에 의해 일어난 움직임으로 1905년에서 1920년사이에 정점을 이루었다.
표현주의는 기쁘고 행복한 느낌보다는 절망이 더욱 미적 환기성이 강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한다. 1933년 나치의 탄압으로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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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거리의 풍경
키르히너, 1913년, 뉴욕근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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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
칸딘스키, 1912년, 뉴욕구겐하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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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들
키르히너, 1915년, 뉴욕구겐하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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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
뭉크, 1893년, 오슬로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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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사교계
막스 베크만, 1931년, 뉴욕구겐하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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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풍선
파울클레, 1922년, 뉴욕구겐하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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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한 티롤의 대지
프란츠 마르크, 1913년, 뉴욕구겐하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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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신부
오스카 코코슈카, 1914년, 바젤쿤스트무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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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표현주의는 유럽전역에 걸쳐서 다양한 미술가집단들에 의해 일어난 움직임으로 1905년에서 1920년사이에 정점을 이루었다. 표현주의는 기쁘고 행복한 느낌보다는 절망이 더욱 미적 환기성이 강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한다. 1933년 나치의 탄압으로 해체되었다.
독일의 야수파
표현주의는 일반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여 주로 독일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새로운 표현양식을 말한다. 프랑스의 야수주의와 거의 같은 무렵에 등장하여 밝은 인상파적 태도를 버리고 극단적이며 주관적인 개인의 감수성을 표현하기 위해 강렬한 색채의 강조, 대담한 형태의 변형을 가하였다는 점에서 두 화파는 공통점을 가진다.
표현주의는 입체파와 야수파 그리고 의식적으로 자연의 모방을 거부한 여러 화가들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서 1911년 독일 비평가들이 사용한 용어이며, 인상주의에 반대되는 활동 모두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신비스럽고도 불안에 가득 찬 게르만족 특유의 정서와 잘 어울리는 표현주의는 초기 추상미술들의 주안점이었던 작가 개인의 주관을 표현하는 것에 몰두했다.
위에서와 같이 야수파와 공통점도 보이지만 야수파가 색채의 향연과 시각효과에 주목했다면 표현주의는 불안, 공포, 고통 등 인간 화가의 내면 감정중에서도 부정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정신적불안의 시대
표현주의 회화는 긴밀한 구도로 소수의 강한 색채를 이용하여 단순한 대비효과를 노린다. 비이성을 추구하고 반서구적이고 반 전통적인 성격을 띠며 그림의 내용인 문학성을 형태의 완성보다 중요시하는 내용주의 미학에 기초를 두고 감정과 이념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조형적인 완성도보다는 메시지 전달이나 작가의 내면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을 더욱 중시하였다.
화가의 개인적인 마음의 상태가 주제가 되기 때문에 표현주의 작품은 객관성을 획득하기 힘들다는 난점이 있다. 20세기 뿐 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정신적 불안에 시달렸던 시대에 항상 표현주의가 나타난다는 점을 기억하면 표현주의는 미술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항구적 경향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프랑스의 입체주의를 도입한 청기사파
표현주의 화가들은 대략 두 그룹의 미술가들이 주도하였는데, 이들은 청기사파와 다리파라고 불렸다. 이 그룹의 이름인 ‘청기사’란 칸딘스키와 마르크 등이 이 무렵 즐겨 택했던 작품 이름이었는데 이것이 그대로 그룹명에 사용되었으며1911년에 결성된 이 그룹은 단 2회만 그룹전을 열 수 있었지만 당시 유럽의 전위적인 화가들을 동시에 초청하여 강렬하고 대규모적인 경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가장 뜨거운 표현주의 운동이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해체되었다. 청기사 그룹의 특징은 형태와 내용의 조화를 고려하면서 화려한 원색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신비하고 영적인 세계에 경도되었으며, 현실세계 속에 감추어진 정신적인 진리를 드러내고자 했다. 뮌헨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 그룹은 여러나라의 미술가들이 함께며, 인 모현실세서 특히 프랑스 미술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청기사파의 핵심인물은 당시 독일에 거주하고 있던 칸딘스키와 야블렌스키였다.
사회적 의식을 드러낸 다리파
표현주의의 또 다른 그룹인 다리파는 1905년 독일에서도 오랜 예술적인 전통을 지니고 있는 드레스덴에서 키르히너를 주축으로 하여 네 사람의 젊은이들로 결성된다. ‘다리’라는 명칭은 그들의 작품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다리 구실을 하리라는 믿음으로 붙여졌다. 이 그룹은 프랑스의 야수주의와 북유럽의 뭉크의 세계에 도취되어 독일 현대회화의 출발점을 이루었으며 독일 뿐만 아니라 스위스와 북유럽까지 순회전을 통해 적극적으로 회원을 확보하는 등 독일 내 전위적인 미술운동에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
또한 다리파의 가장 큰 의의는 회화에 있어 최초로 ‘사회적 의식’을 체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키르히너는 “대도시의 빛은 나의 신경에 끝없는 새로운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거기에는 단순한 정물로는 맛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내재해있다.”고 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후 더욱 광적으로 화풍이 변하였으며 나치의 득세에 공포를 느껴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제작태도에서 대도시의 그늘의 부도덕과 퇴폐성을 추적한 주제나, 도시의 아름다움과 그 내면의 열기를 발견하는 진정한 도시예술로서의 특성이 확립되었다는 점에서 다리파의 의의를 다시금 엿볼 수 있다.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한 탐구
표현주의 예술의 목적은 인간의 감정과 감각을 표현하는데 있었다. 그러므로 회화의 요소인 선, 형태, 색채 등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또한 데생에 충실하던 전통적 기법을 무시하고 주제를 강조하기 위하여 색채와 형태의 왜곡을 주저하지 않았다. 표현주의자들은 미술이 인간본성에 내재된 진실을 표현하고 싦의 의미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표현주의 이념은 전후의 혼란 속에서도 독일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나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며 ‘퇴폐예술’로 규정되어 결정적인 탄압을 받고 해체되었다. 세기말적 시대상황에서 상처받은 인간의 존재가치와 윤리에 관한 분석과 풍자. 단순하면서도 치밀한 구도 등의 특징을 지난 표현주의 작품은 현대미술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게 된다.
뮤움 미술사연구팀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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