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

2014.01.17 ▶ 2014.03.16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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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빨래터 Washerwomen by the Stream Oil on canvas, 50.5x111.5cm,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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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노상 Street Scene Oil on canvas, 31.5x41cm,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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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앉아있는 여인 Oil on canvas, 65x53cm,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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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시장 사람들 People at the Marketplace Oil on canvas, 77.5x51.5cm, 195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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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우물가(집) A Cottage near the Well Oil on hardboard, 19x24.5cm,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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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아기업은 소녀와 아이들 A Girl Tending to a Infant and Children Oil on canvas, 45.8x37.5cm, 195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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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아기보는 소녀 A Girl Tending to an Infant, Oil on canvas, 27.5x13cm,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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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노인과 소녀 The Old and the Young Oil on canvas, 130x80cm,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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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여인과 소녀들 A Woman and Girls Oil on hardboard, 25.8x32cm,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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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귀로 The Way Home Oil on hardboard, 26.8X34.3cm,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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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고목과 행인, An Old Tree and Women Oil on canvas, 53x40.5cm, 196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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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귀로 The Way Home Oil on hardboard, 16.4x34.6cm,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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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무제 Untitled Watercolor and pencil on paper, 31.5x25.5cm, 196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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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수채화 Watercolor and pencil on paper, 24x30cm,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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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책가방 A School Bag Watercolor on paper, 25x31cm, 196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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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과일쟁반 Watercolor and pencil on paper, 25x31cm,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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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청색 고무신 Watercolor and pencil on paper, 20.5x30.5cm, 1962

  • Press Release

    전시 내용
    ● <국민화가>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
    가나아트는 <국민화가>로 칭송받는 한국근대미술의 대표작가 박수근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박수근 회고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박수근이 남긴 유화 작품 90여 점과, 수채화와 드로잉 30여 점 등 총 120 여 점을 선보이는 역대 최대 규모의 기획전이다. 박수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대를 뛰어 넘는 그의 예술혼을 다시금 새기는 한편,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지역인 인사동에서 전시를 함으로써 한국인들에게는 자긍심을, 외국인들에게는 한국 예술의 우수성을 알리고 동시에 한국 미술의 위상을 정립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한국적인 화가 박수근
    박수근(朴壽根, 1914-1965)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한국적이고 서민적이며 독자적인 특성을 지닌 작가로 평가 받고 있다. 그가 주로 그렸던 것은 시장 사람들, 빨래터의 아낙네들, 절구질 하는 여인 등 평범한 서민의 일상이었다. 따라서 박수근의 작품은 한 시대의 기록으로서도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특유의 짙은 감정이 묻어나는 작품들은 박수근이 가지고 있던 예술에 대한 생각 즉,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으로 작품을 그려야 한다'는 뜻을 그대로 전한다.

    ● 인간에 대한 긍정과 사랑에서 느껴지는, 시대를 뛰어넘은 감동적인 울림
    박수근의 작품에는 우리 민족이 역사 속에서 쌓아온 정서가 함축되어 있어 오늘날에도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준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우리 이웃과 가족을 향한 박수근의 따뜻한 시선을 통해 그려진 인물들에게서는 시대를 뛰어 넘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김달진 미술연구소에서 소장 중인 박수근 관련 아카이브 자료와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에서 제공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이 함께 전시될 예정이어서, 작가 활동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다각적인 이해를 도울 것이다. 이번 전시는 변화의 소용돌이와 가치관의 혼돈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위대한 예술을 통한 불변의 가치를 제시할 것이라 기대한다.

    박수근
    그의 예술세계를 되돌아본다.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전 문화재청장)

    탄신 100주년, 서거 50주년
    [...]
    1914년, 그가 태어난 때는 우리 근대미술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바로 전 해(1913년)에는 춘곡 고희동이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서양화에 대한 인식은 전무한 상태여서 그가 미술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을 신문은 대서특필하고 서양화라는 유화란 우리의 전통회화와는 재료와 기법이 모두 달라서 ‘기름기 있는 되다란 물감을 천에다 바르는’ 그림이라는 해설이 실릴 정도였다. 그런 시절에 태어난 박수근이 성장하여 결국 그가 이룩한 예술적 업적이 우리 근대미술의 마지막 성과로 수렴되었으니 그 상징하는 바가 자못 크다.

    서민의 화가라는 박수근의 작가상
    [...]
    역사적인 거리를 갖는 작가상이란 왕왕 그의 다양한 인간적 예술적 실체들이, 마치 박수근의 작품에 나오는 나목처럼 곁가지가 모두 쳐지고 오롯하게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되곤 하는데 그것은 한 인간이 죽은 다음 역사적 인물로 영원히 남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들에게 남겨진 박수근이라는 인간상은 ‘서민의 화가’이다. 박수근은 그의 인생뿐만 아니라 예술에서도 전형적인 서민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작가상 역시 ‘서민의 화가’이다.
    [...]
    고인에게 결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창신동 집 마루에서 아내와 막내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 가장 박수근의 인간상에 가까운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다. 반소매 내의에 양말을 벗고 손가락 깍지를 끼어 양 무릎을 껴안은 채 이쪽을 바라보는 천연스런 자세와 어진 눈빛이 이 사진 뒷배경이 된 그의 작품들에 나오는 인물들과 흔연히 어울린다. 게다가 새로 산 흰 고무신이 마루 위에 잘 모셔져있어 이 가난한 화가의 맑은 마음씨를 보는 듯하다.
    [...]

    그림의 소재와 내용에 대하여
    박수근은 서민의 화가라 일컬어지듯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서민의 일상 모습이다. 골목길 풍경, 일하는 여인, 장터의 여인, 할아버지와 손자, 아기를 업은 소녀, 할머니, 행인, 공기놀이하는 소녀들……
    [...]
    박수근이 남자보다 여인과 소녀상을 더 많이 그렸다는 사실은 서민의 희망을 오히려 거기에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연약한 여인의 몸이지만 어진 마음으로 주어진 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나 따스한 온정이 느껴지는 그분들이 박수근 그림의 주인공으로 된 것이다.
    박수근 그림에 나오는 벌거벗은 나무의 의미 또한 그의 인물과 비슷한 것이다. 박수근은 좀처럼 꽃을 그리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남긴 <모란꽃>과 <목련>을 보면 둘 다 화려함이 아니라 애잔한 흰 꽃들이다. 꽃뿐만 아니라 그는 나뭇가지에 돋아나는 잎새의 표현에도 아주 인색하여 <노목과 어린나무>에서나 겨우 새순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
    그렇다. 박수근의 그림에서는 나무든 인물이든 현재의 모습은 고단한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조용히 삶의 새 봄을 기다리는 그런 희망이 애잔하게 그려 있다. 그것이 그 시대를 살아갔던 서민들의 참 모습이기도 하였다.

    유화의 마티엘에 대하여
    박수근 예술의 가장 큰 형식적 특징은 바위 질감을 느끼게 하는 두터운 마티엘 효과에 있고, 그의 그림이 날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화강암의 질감을 느끼게 하는 향토적이면서 거친 듯 소박한 느낌이 그가 취한 소재들과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면 박수근은 왜 이처럼 바위 질감을 느끼게 하는 두터운 마티엘을 추구했을까? 박수근은 정말로 가난한 화가였다. 당시는 그림물감이 비싸고 귀했다. [...] 그럼에도 그 귀한 물감을 두껍게 발라 이런 형식을 추구할 때는 분명한 이유, 즉 조형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형식 자체의 논리가 그렇게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지만,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이런 형식을 요구한 것일 수도 있다. 형식주의자가 아니었던 박수근의 경우는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수근은 서민의 삶을 그렸지만 그것을 풍속도로 그린 것은 아니었다. 그가 그린 서민상은 법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진국이다. 그는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했고 실제로 작품세계 또한 그러했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이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 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

    박수근 그림에는 움직임이 거의 없다. 농악을 그린 작품조차도 정지감이 강하다. 그런데 박수근 그림의 화풍상 변화를 보면 마티엘은 거칠고 굵은 데에서 점점 부드럽고 자잘한 질감으로 옮겨간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속의 대상 표현도 처음에는 굵은 선에서 나중에는 가는 선으로, 곡선과 묘사적 성격의 선에서 직선과 간결한 요약의 선으로, 은은한 배경에서 완벽한 평면으로 전환된 것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은 같은 <아기 보는 소녀>라도 1953년 작품은 굵은 윤곽선과 거친 마티엘에 움직임이 감지되는 서정적 정경이 동반되지만, 1963년 작품에서는 완벽한 정면성의 원리와 가는 직선으로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 만년의 경향이야말로 박수근 예술의 본령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에서 감지되는 중세 이콘(icon, 성화)의 분위기는 이런 연유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어딘지 종교화적 거룩함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1961년 작,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를 그린 <모자>라는 작품을 보면 기독교의 <성모자상(聖母子像)>이라는 도상을 연상케 되며, 그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도상으로 번안한 듯한 인상까지 받고 있다. 이 점은 그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박수근 그림에 나온 인물들은 만년으로 갈수록 표현의 사실성에서 의미의 상징성으로 옮겨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결과 박수근의 만년작에 이르면 영원불멸의 정지성 내지는 고착성이 두드러진다. 과장되게 말하면 화강암에 새겨진 마애불과 같은 느낌이다.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 마애불과 같은 거룩하고 의연한 인간. 다만 바위가 아닌 캔버스이고, 부처가 아닌 서민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나는 박수근 예술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

    프로타주 기법과 탁본
    그러면 박수근이 이처럼 그 질감을 바위처럼 나타내고 마애불처럼 인물을 화면에 고착시킨다는 조형적 발상을 어디서 얻었을까? 박수근 작품 중에 돌멩이에 대고 연필로 문지른 프로타주로 기법으로 된 <소>라는 작품이 있고, 그의 삽화 중에는 산동네 화강암 절벽을 프로타주 기법으로 나타낸 것을 보면 이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박수근의 벗인 황유엽, 장이석 화백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들은 경주를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경주 남산에서 마애불과 석탑들에 큰 감동을 받아 탁본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 박수근은 신라 토기나 석물조각들을 수집하여 작업실에 두고 만지고 살펴보면서 작품기법에 대해 연구했다. [...]

    수채화에 대하여
    박수근의 예술세계를 말할 때면 그의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유화 때문에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으나, 그의 수채화는 대단히 아름답고 조형적 밀도, 예술적 완성도가 높다.
    [...]
    박수근 수채화 중 <고무신> <책가방> <과일쟁반> <복숭아> 등은 가히 명화라 할 아름답고 사랑스런 작품이다. 그 해맑고 따뜻한 색감에는 박수근과 그의 시대적 순정이 남김없이 어려 있다. 그것은 그가 유화로는 나타낼 수 없던 서정의 구가였다.
    소재의 선택도 그렇다. <고무신>은 분명 아내가 새로 사온 꽃신일 것이고 <책가방>은 여학교 다니는 딸의 가방일 것이다. 일종의 정물화인데 박수근이 다름 아닌 아내의 고무신과 딸아이의 책가방을 그렸다는 것은 유화에서 장터의 아내, 동생을 업고 있는 언니를 그린 것과 똑같은 마음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은 밝은 채색이 가능한 수채화로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수근의 수채화는 그의 예술세계를 논할 때 유화와 동일한 지평에서 평가되는 것이 마땅하다.

    현대 문화사에서 갖는 위치
    이제 마무리를 짓겠다. 해방 50년, 60년을 보내면서 여러 분야 전공자들이 어울러 각 분야의 성과를 교체 검토하는 학제간의 교류가 활발하였다. 그런 학술행사가 많아지면서 20세기 후반 한국문화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 1950년대를 보내면서 그 시대 인간, 특히 서민 또는 민중이 갖고 있는 삶 의 정서를 박수근 화백만큼 절절한 감정으로 표현한 학자가 있습니까, 정치가가 있습니까, 사상가가 있습니까, 소설가가 있습니까?
    박수근은 그 시대 서민의 실상을 체득하면서 그 아픔에 동참했고 사랑으로 삭히면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혹자는 박수근의 작품 속에 나오는 서민은 정치의식의 결여로 각성되지 못한 민중 이라면서 그의 리얼리즘의 한계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박수근의 한계가 아니라 그 시대의 한계 였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외면한 것을 화가로서 포착해낸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보건대 박수근은 그림을 통해 위대한 사상가 못지않은 인간정신의 고귀성을 표현했다. 뛰어난 지성이나 예리한 감성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면밀히 관찰하여 부동(不動)의 형태로 고정시킴으로써 성공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아들에게 가르쳤다는 “더욱더 작아지게 하소서”라는 겸손의 미덕이 새삼 아름답게 다가온다.
    이것이 내가 갖고 있는 박수근이라는 화가의 상이다.

    우람한 손을 가진 나의 아버지
    박성남 (서양화가)

    아버지는 노래를 못하신다. 노래할 일이 생기면 아버지의 표정은 굳어진다. 어머니는 이런 표정을 재미있어 한다. 성화에 못 이겨 하모니카로 노래를 대신한다. 뻐꾹 왈츠서부터 신나게 서너 곡 불어 젖힌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음악 소녀가 된다. 정말 아버지의 뻐꾹 왈츠는 신나는 곡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집은 엄마 닮으면 어여쁜 앵무새가 되고 아버지를 닮으면 총대 없는 뻐꾸기 병정이 되곤 한다.
    놀이에 미친 나의 유년시절은 언제나 아버지의 걱정거리를 하나 더해 주었다. 그림에 열중하시는 아버지에겐 커다란 방해꾼이었고, 더더욱 어머니 심부름엔 철저한 방관자였다. 풀떡, 보리밥, 강냉이죽 주는 대로 뚝딱 해치우고 밖으로 줄행랑친다.
    배추밭에 물을 주어야 했고, 자동차길 따라 작은 집에 가야했던 심부름도 놀이에 까맣게 저당잡힌 채 달이 뜰 때까지도 잊고 있었다. 그런 날이면 나의 종아리는 아버지의 큰 손에 쥐어진 붓대로 불이 나는 것이다.
    '창신동 집'은 아버지가 월남하신 후 미군 PX 초상화부에서 근무하신 소산으로 마련된 우리의 보금자리였다. 미닫이 문이 없는 마루를 중심으로 마주 보노라면 오른편에는 안방과 부엌, 왼편에는 내가 종아리를 맞을 때면 나의 역성을 들어 주시던 형권이 아주머니가 살던 건넌방이 있다. 그리고 화장실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정남향의 ㄷ자 형의 한옥이었다.
    아버지의 화실인 마루는 동네 아주머니와 기름장사 아주머니 그리고 각종 행상인들이 잠시 걸터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부채 할아버지의 장사길을 재촉하는 쉼터이기도 했고, 때때로 몇 사람의 외국인들이 서성이며 그림을 감상했던 화랑이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틈틈이 나의 개구장이 친구가 온통 소란을 피우거나 북적거리기도 하고, 한겨울 따뜻한 햇살 한구석에 땀과 먼지에 버무려 놓은 옷가지를 조용히 빨래하시는 어머니의 빨래터이기도 한 생활터였다.
    이렇게 사노라면 으레 궁색한 우리집에 찾아주는 손님이 있었다. 아버지 그림에도 등용된 연미형의 꼬리를 가진 제비이다. 이들의 성화는 어찌나 극성인지 배설물을 안방이며 마루며 두루 다니며 그림에까지 발라 놓는 것이다. 얼핏 보아도 아버지 그림의 주조색과 너무 흡사하다. 제비들의 배설물을 닦아내는 곤욕이 우리 가족들의 심심찮은 소일거리가 되곤 했다.
    "얘야, 제비가 알을 많이 품으면 풍년이 된단다."
    이렇게 말씀하신 아버지는 고향 금성(金城)에 두고 온 처마 밑의 제비둥지를 연상하시곤 한다. 그럴 때면 사선을 넘어 온 이야기들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줄줄이 엮어져 나온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정경어린 신혼 시절의 그림, 불에 타 버린 그 숱한 스케치들을 생각하시면서 아버지는 다시 붓을 잡으신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의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나 할머니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이 말은 아버지의 담백하고 솔직한 예술관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그림으로 이 예술관을 실천해 보였다. 다시 우물물을 긷고 맷돌에 밀을 갈아 수제비를 끓여야 하는 소박한 생활과 더불어.
    철부지 시절, 놀이에 정신을 팔아 버린 나에겐 아버지의 그림이 마음에 들 리 없었다. 나뭇잎 하나 없는 나무도 그렇고, 때때로 눈, 코, 입이 생략되어 버린 인물화도 그렇다. 어쩌다 학교 선생님의 지시로 부탁해서 그려 주신, 노란 바탕의 간략한 선으로 그려진 삼일운동 포스터도 그랬었다. 어린 나에게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그림도 못 그리며 무위도식하는 사람으로 비쳤다. 일가친척 외에 대다수의 동네사람들도 인정하는, 무능력한 성남이 아버지였다. 어머님이나 아버지를 이해하는 주위의 소수를 제외하곤 아버지의 일이나 아버지의 정신을 이해할 리가 없었다.
    굶주림에 지친 어머니께서 콩자반 몇 알에 냉수만 들이키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시던 어머니는 만삭이 되어서 막내 여동생 인애가 태어나는 순간에 이르셨다. 학교에서 막 돌아온 나는 방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얼마쯤 지나 봇물 터지듯 하는 애기울음 소리를 뒤로 하고 분주하게 시중 드시던 아버지가 비지땀에 젖은 흰 런닝셔츠 차림으로 성큼 나오신다. 생명을 받아내신 기쁨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굵은 땀방울 속에 맺혀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나를 의식한 아버지는 엉거주춤, 우람한 손을 부자연스럽게 쥐시곤 어쩔 줄 몰라 하셨다.
    날이 지남에 따라 우람하고 부자연스럽던 손이, 제방공장만큼이나 위력있게 보이던 손이 고단함을 껴안은 외로운 손으로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일생 개인전다운 전시 한 번 못 가져본 아버지, 외국에서 순회전시를 하려던 꿈도 물거품이 된 아버지의 작품전은 화우들의 뜨거운 정으로 유작전으로 마련되었다. 어려울 때면 주거니 받거니 했던 낱개의 화이트 컬러며, 소중한 책을 팔아 전차표며 쌀을 사 주던 우정이 어우러져 침묵의 고뇌와 손때가 묻은 그림에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모순이 모순이 되기까지 아내와 자식을 사랑한 평범한 인간이자 동시에 따뜻한 가슴을 시대에 열어보인 다수웁고 우람한 손길을 가진 나의 아버지, 소명대로 인내한 아버지.

    전시제목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

    전시기간2014.01.17(금) - 2014.03.16(일)

    참여작가 박수근

    관람시간10:00am - 07:00pm
    수요일은 오후 9시까지 전시 연장

    휴관일없음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일반 10,000원
    초등학생 6,000원

    장소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

    연락처02-73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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