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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가문이지만 몇 대에 걸쳐 과거를 통하여 출사(出仕)하지 못한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40세 이전의 경력을 확실하게 입증할 만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으며, 41세 때인 1716년(숙종 42) 종6품의 관상감(觀象監) 천문학겸교수(天文學兼敎授)로 첫 관직에 올랐다는 것이 통설이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났고, 처음에는 중국 남화(南畵)에서 출발하였으나 30세를 전후하여 조선 산수화(山水畵)의 독자적 특징을 살린 사생(寫生)의 진경화(眞景畵)로 전환하였으며 여행을 즐겨 전국의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심사정(沈師正)·조영석(趙榮祏)과 함께 삼재(三齋)로 불리었다. 강한 농담(濃淡)의 대조 위에 청색을 주조로 하여 암벽의 면과 질감을 나타낸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으나 후계자가 없어 그의 화풍은 단절되었다. 문재(文才)가 없었으므로 다만 서명과 한두 개의 낙관만이 화폭의 구석에 있을 뿐 화제(畵題)가 없다.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난곡(蘭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