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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4(영조 30)∼1822(순조 22). 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현보(賢輔), 호는 긍재(兢齋), 초호는 홍월헌(弘月軒). 화원이었던 응리(應履)의 아들이며, 응환(應煥)의 조카이다. 화원으로 첨중(僉中)을 지낸 한중흥(韓重興)의 외손자이다.
동생인 석신(碩臣)·양신(良臣), 그리고 아들인 건종(建鍾)·수종(秀鍾)·하종(夏鍾)이 모두 화원이었다. 그 또한 화원으로 초도첨사(椒島僉使)를 지냈다. 1791년 정조어진(正祖御眞)의 원유관본(遠遊冠本)을 그리는 데에 이명기(李命基)·김홍도 (金弘道)·신한평(申漢坪)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풍속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밖에 도석인물(道釋人物) 및 산수·영모(翎毛)도 잘 그렸다. 각 분야에 걸쳐 김홍도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풍속화의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김홍도의 후기 화풍을 계승하면서 산수를 배경으로 더 삽입시켰다.
또 해학적 분위기와 정서를 좀더 가미하여 그에 못지 않은 역량을 발휘하였다. 그는 풍속화에서 김홍도의 전통을 이은 대표적 화가로 손꼽히고 있을 뿐 아니라, <곽분양행락도 郭汾陽行樂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같은 공필(工筆)의 고사도(故事圖)를 남기고 있어 보다 다양한 일면을 보이고 있다.
산수와 영모에서도 서정성 높은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파적도 破寂圖>(간송미술관 소장)·<풍속화첩>(간송미술관 소장)·<귀시도 歸市圖>(개인 소장)·<풍속팔곡병 風俗八曲屛>·<오동폐월도 梧桐吠月圖>(개인 소장)·<신선도>(호암미술관 소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