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1978년 아이비예술대학(Ivy School of Professional Art) 그래픽디자인 전공 학사
추가정보
키스해링은 195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레딩(Reading)에서 태어나 쿠츠타운(Kutztown)에서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닥터 수스(Dr. Seuss)와 월트 디즈니(Walt Disney)의 만화영화를 즐겨 보며 그림 그리기에 흥미를 가졌다. 1976년 피츠버그의 아이비전문예술학교에 입학하여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이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그는 1978년 뉴욕으로 옮겨 와 시각예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해링은 뉴욕 거리의 벽면과 지하철 플랫폼에 그려져 있는 낙서 스타일의 그림을 보고 깊은 영감을 얻었다. 다운타운의 활기찬 에너지와 신선한 기운 속에서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감지할 수 있었다. 길거리, 지하철, 클럽 등지의 벽은 이제 그의 캔버스가 되어 지나가는 평범한 행인들에게 말을 걸었다. 즉, 그만의 예술언어로 도시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빈번히 공공기물 훼손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하였지만 사람들은 해링의 독특한 이미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픽토그램(Pictogram) 같은 간결한 선과 강렬한 원색,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표현에서 단번에 그의 재능을 간파한 딜러 토니 샤프라치(Tony Shafrazi)는 자신의 갤러리에서 그의 개인전을 기획하였다. 해링은 이 전시를 계기로 스타 작가로 부상하게 되었으며, 하위문화로 낙인찍힌 낙서화의 형식을 빌려 새로운 회화 양식을 창조해낸 그의 그림은 뉴욕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다. 기어가는 아기, 춤추는 사람, 짓는 개, 피라미드, TV 수상기 그리고 비행접시 등 해링의 이미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상형문자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해링의 작품으로서 인식하는 한편, 그의 페르소나와 작품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을 통해 더욱 심층적으로 해독하게 된다. 장난기 어린 해링의 이미지는 도시라는 문맥을 통해 바라보면 보다 깊은 문화적 의미를 지니게 되는데, 다양한 도시의 환경을 계속해서 개인으로서의 사적 욕구와 공공의 요구 사이의 절충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인종간의 문제, 성적 자유, 에이즈 문제 그리고 사회 정의 등은 헤링의 작업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주제이며, 그가 남긴 끊임없는 인간 형상의 모자이크는 침묵 강요당했던 문제들을 언급하면서 그러한 주제들이 문화적으로 인식되어야 함을 세상에 알린다. 해링은 다른 낙서화가들과 다르게 인종차별 반대, 반핵 운동, 동성애자 인권운동, 에이즈 교육 등의 사회문제를 다루었다. 그의 작품은 거리와 지하철을 벗어나 티셔츠와 배지, 벽화, 공익광고와 포스터 등으로 제작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그의 이미지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표현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탄생과 죽음, 사랑과 섹스, 전쟁과 평화 등의 우주관을 담고 있다.
1990년 2월 16일 해링은 뉴욕에서 만 서른 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에이즈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