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2018.09.07 ▶ 2018.10.15
2018.09.07 ▶ 2018.10.15
전시 포스터
오픈스페이스 배는 더위가 가시는 (그리고 부산비엔날레가 열리는) 9월, 송기철 개인전 《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를 개최합니다. 송기철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의 문장을 정치적으로 재해석해 전시제목으로 가져오면서, 해방과 자유는 불가능하지만, 그것을 향한 노력은 계속 되어야 하며, 그것은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자기 학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시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송기철(1982~)은 데뷔한 이래 공간힘과 송은아트큐브에서 두 번의 개인전을 갖고, 이 외에 부산시립미술관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2015), 부산비엔날레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2016), 하정웅미술상(2017), 신세계갤러리 《(in)Active Utopia》(2017) 등 굵직한 전시들을 소화해내며 지금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작가는 퍼포먼스, 영상, 설치, 사진, 일러스트 등 매체를 넘나들며 다양한 형식들을 실험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자본주의와 그 체제가 빚어내는 무수한 폐해들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며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데뷔작이나 다름없는 도시개발의 그늘을 담아낸 퍼포먼스 영상작품
이번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갖는 세 번째 개인전 《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역시 작가가 지금껏 고민해오던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준비한 전시이다. 단 차이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재개발, 난민 등 어떤 구체적인 문제들을 들고 나와 그 상황을 분석하고 비판∙고발하며 작품을 제작한 것인데 비해, 이번 전시에서는 문제를 보다 더 근본적으로 끌고 들어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주체성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이보성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 1895~1966)은 동시대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 1989~1977)과 비교되며 널리 알려진 희극 영화감독이다. 그는 위험한 상황에 특수효과나 스턴트를 사용하지 않고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영화를 보다 보면 위험한 상황에 스스로 몸을 내던지면서도 무감각한 몸짓과 표정을 유지하는 인물들을 계속해서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당면한 위험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서인지 무언가 결여되어 있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 이들의 이런 행동은 덜 떨어져 보여 우스꽝스럽게 보이는데, 이들의 이런 모습은 얼핏 니체가 ‘말인(Last Man)’[1](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신체’[2])이라 부른 존재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난 이들을 보면서 보통의 해석과는 다르게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도 걸 줄 아는 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의 소설가 체스터튼(G. K. Chesterton, 1874~1936)은 용기의 역설을 이야기하며 “포위당한 병사가 탈출하고자 한다면 살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에 이상한 무심함을 결합시켜야 한다. 단지 삶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며, 죽음을 기다려서도 안 된다. 삶을 물처럼 욕망해야 하지만 동시에 죽음을 포도주처럼 마셔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나는 버스터 키튼의 영화 속 등장인물들에게서 이를 느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의 무감각한 몸짓과 표정은 무엇인가의 결여가 아니라 스스로 안전한 삶과 소소한 쾌락들로 가득 찬 삶에서 벗어나는 것을 통해서 얻어지는 과잉의 결과라 생각한다.
오늘날 과연 누가 그들처럼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하는가 생각해보면 암울하기만 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얼마 갖지도 못했으면서도 그것에 만족하며 그것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예외를 만나기도 한다. 한 예로 내부고발자들을 들 수 있다. 스노든(Edward Joseph Snowden, 1983~)과 어산지(Julian Assange, 1971~)가 대표적인데, 그들은 국가보다 대중과 인민의 편에 서서 주요 정보들을 공개함으로써 그들이 가진 특권을 포기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한 발 내디뎠다. 그들은 현재 반역자, 배신자로 낙인 찍히고 결국에는 추방과 도피의 삶을 살고 있는데, 그들이 행동을 하기 전에 이런 상황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희생’을 기리고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이들을 ‘자기 희생’이라는 프레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들의 이런 행동을 ‘희생’이 아니라 ‘자기 부정’을 통한 일종의 ‘자유 행위’였다고 생각한다. 지젝(Slavoj Zizek, 1949~)은 “자유는 특정 양태의 인과성, 행위자의 자기 결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에 이율배반이 존재한다. 행동이 기존의 원인들에 필연적으로 결정되거나, 순수한 우연성에 의존한다면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중략) 이 이율배반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반성적 인과관계를 도입하는 것이다. 나는 원인들에 의해 결정되며 자유의 공간은 이러한 원인들이 나를 결정하게 될 방식을 사후적으로 선택/결정하는 나의 능력이다”고 말했다. 즉, 자유 행위란 외부적으로 강요된 것들 없이 우리가 원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형태에 저항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이란 말이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스노든과 어산지의 행위가 자유 행위였다고 생각한다.
이런 자유 행위는 우리사회에 존재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권력의 은밀한 뒷모습을 들어내 보이게 한다. 즉, 자유 행위는 축복받은 조화와 균형의 중립적 형태가 아니라, 그것을 교란하는 폭력적인 행위이며, 자유로운 행동은 근본적으로 전체 상황의 좌표를 바꾸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나는 마조히즘적인 여러 모습을 영상으로 선보이려고 한다. 이는 스노든과 어산지의 내부고발들과 같이 해방을 위한 첫 번째 행동, 즉 자유 행위이다. 나는 이 자기에게 스스로 가하는 폭력을 통해 주인과 종이 존재했음을 명확히 나타내고, 그럼과 동시에 주인의 권리라 생각되는 폭력을 주인이 아닌 종에게 종속시킴으로써, 주인이 허구(또는 잉여)였음을 고발하고, 더 나아가 관계가 역전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송기철
1982년 부산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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