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칸(Jineekhan)

1972년 서울 출생

서울에서 활동

작가 프로필 이미지

소개말

안녕하세요. 진이칸 입니다. 간단히 저의 가치관과 성격을 언급하자면, 저는 좋은 결과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무엇보다 좋은 과정을 의미 있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좋은 과정에서 풍성한 결과와 퀼리티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번 마음먹은 일은 아무리 힘든 어려움이 닥쳐와도 반드시 관철시키는 성격입니다. 거기에는 끊임없이 도전하는 도전정신과 이를 완수하는 책임감이 중요한 덕목인데, 이러한 정신력은 평탄치 않았던 낯선 미국유학생활에서 비롯됩니다. 미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시련은 시작되었는데요. 첫날, 공항에 마중 나오기로 했던 사람이 나오지 않아 이민용 가방을 끌고 랭귀지 하기로 되어있던 대학교로 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머지않아 IMF가 터지면서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한국으로 가버렸지만 저는 꼭 공부를 마치고 돌아간다는 일념 하에 열심히 일하면서 공부하였습니다. 항상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은 무사히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이후 전공과 연계된 다양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다문화의 도시인 뉴욕에서는 이방인이자 마이너리티 여성작가로서 느낀 삶의 현장을 중심으로 회화,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의 매체를 왕래하며 전 방위적으로 작업하였습니다.
귀국 후에는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사회문제에 과감하게 직면하면서 다양한 주제로 확장하게 됩니다. 예컨대 화장품 브랜드 엔프라니의 실험문화인으로 뽑혀 제작된‘제이 여배우 되다!’프로젝트를 들 수 있습니다. 장애인을 여배우로 기획한 다큐멘터리 영상과 사진은 한국사회의 부를 상징하는 청담동 쇼핑거리에 화장품 모델로 인식되었습니다. 또한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빨간 가발과 흉직한 가면을 쓰고, 이질적인 인터뷰를 시도함으로써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미디어의 허구를 고발하기도 했었고, 샘표 스페이스에서는 근·현대라는 이름으로 형성된 부산물과 또한 고급과 저급으로 양극화된 한국문화의 경계境界를 본 작가주변의 향락의 거리에 투사시켜 고스란히 전시장으로 옮겨놓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인도 힌두교의 대표 신으로 알려진 파괴 갱생의 신‘쉬바’의 이미지를 자화상과 혼합함으로써 가부장적인 남성 신의 이데올로기, 고정관념, 잘못 프로그래밍 된 것에 대한 도전을 시도하였는데, 이름 하여‘쉬바진경’프로젝트입니다. 화폭위에서 공자, 부처, 예수가 함께 어울리고 오랜 시간 고착된 식민지의 잔재를 벗겨내고 숨이 막히는 모든 구속에서 자유롭기를 바랐던 의도의 여신 형상들은 여러 모양의 콘셉트와 콘텐츠로 진화하게 되면서 영화제, 미술관, 뉴욕의 갤러리 등에 캐릭터로 나타납니다. 사실, 한국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면서 저는 많은 시간 회화작업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뉴욕에서의 경험과 그간의 전 방위적인 작업들이 회화에 직·간접적으로 녹아지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은 회화를 기저로 한 예술경계의 확장입니다. 이 일련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철학을 좀 더 이론적으로 발전시키고자 성균관대 동양철학 박사과정에 입학하였고 마침내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회화는 모든 예술장르의 기본으로 인류의 원초적인 표현인 원시 미술부터 문화이론으로 대변되는 현대미술의 정점까지 이어져왔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진화와 역사를 넘는 혁명의 과정이었고 이에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시대정신과 창작자의 예술성이었습니다. 규정짓기는 싫지만 아마도 여성주의적 시각이 강한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회화의 새로운 경계를 열어내는데 동양 특유의 여성주의적 작업을 통해 이뤄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