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선(Lee Young-Sun)

1971년10월18일 출생

서울에서 활동

작가 프로필 이미지

소개말

회화가 문학을 대신하려 한다는 일부 개념미술(槪念美術) 비판가들도 있으나 회화와 문학이 사실상 표현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원래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작가 이영선의 작품은 "예술가의 역할은 물질을 치장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고찰하느냐의 문제"라고 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말한 개념미술(槪念美術)로부터, 고찰의 대상과 관점을 다양하게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술의 본질을 내적으로 더욱 성숙시킨 문학미술(文學美術)에 가깝다.

작가 이영선의 작품 전반에는 시간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시계나 뿌리, 나침반, 신문이나 활자 등은 실크스크린(Silk-Screen)기법을 통해 '시간과 존재'의 이미지로 구현되기도 하고, 파라핀(Paraffin)을 만나거나 혹은 실물로 직접 참여하는 등 그녀의 작업에 자주 애용되는 오브제들이다. 그래서 시간과 존재는 따로 다뤄질 성질이 아니고 그 결과 작품에는 시간을 제시한 작가와 존재를 확인해야할 감상자의 몫이 공평히 분배되어 있다. 그럼에도 파라핀(Paraffin)을 응용하는 표현 양태(樣態)는 수시로 변화하고 있다. 이전의 작업이 파라핀(Paraffin) 특유의 따뜻함을 전달했다면, 이번 파라핀(Paraffin)작업은 용융(溶融)속도에 따른 작가의 손놀림이 투명한 매체나 유화물감들과 만나면서 형성되는 그림자 선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따뜻함 외에 차가움이 드러난다. 그래서 감상의 폭이 매우 풍부해진 느낌이며 보이는 것 이상의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전체적으로 그녀의 작품은 치열하게 전개되는 문명사회 속의 삶을 자연의 소재를 통해 그 이치를 표현하며 정서를 자극한다. 그래서 호흡이 가쁜 민중미술(民衆美術)이나 개념미술(槪念美術)이 아니며 특히 포장술이 화려한 자본미술(資本美術)은 더더욱 아니다. 그녀의 작품에 제시된 시간은 인생의 기억, 자취, 진행형 등을 의미하고 있으면서 거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담아내고 있다. 부드러움과 빠른 속도의 선으로 삶의 이야기를 하고, 미래를 넌지시 가리키는 내적인 그녀의 작품은 은밀하게 문학성(文學性)을 내포하고 있다.

그림을 감상한다고 할 때는 단순히 <본다>라는 시각(視覺)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시각적으로 보는 외에 감성을 느낀다거나 분석한다거나 하는 시각외적인 의미가 포함된다. 작가 이영선의 작품은 단순히 본다는 차원에 머물러있지 않다. 누구나 공감하고 체험하고 있는 삶을 이야기하기에 각자의 깊이와 체험정도에 따라 호흡을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은 문학작품을 읽는 느낌이다. 이런 작품을 이야기할 미술계의 용어가 마땅치 않아 문학미술(文學美術)이라는 용어를 붙여본다.

김보겸(소설가, 예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