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웅필(ung-pi byen)

1970년04월27일 출생

서울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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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말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변웅필

누구나 내가 누구인지, 내 모습은 어떠한지 생각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독특한 자기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생활 주변의 환경이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자의적이기도 하고 타의적이기도 한 상황들이 발생하고 서로 적응하고 동화되며 자신의 모습이 형성되어 간다. 어제 만난 친구는 책을 좋아해 나도 책을 즐겨 읽게 됐고, 오늘 만난 친구는 여행을 좋아해 나도 종종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형성된 한 사람 한 사람은 타인과의 상호 교환적인 관계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지만 간혹 생김새만으로 섣불리 상대를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 행동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타당하다는 오만한 믿음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다수가 그렇게 인정하기에 그저 동조하는 소심함에 비롯되기도 한다.
나를 만나보고 내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쉽게 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얼굴은 머리의 모양. 이마의 넓이, 눈매의 길이, 콧날의 높이, 그리고 귀의 크기. 입술의 두께, 얼굴의 모양, 피부의 색상과 같은 각각의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고, 놀랍게도 저마다의 모양새를 유지하며 조화롭고도 다른 이의 그것과 같은 꼴 하나 없이 잘도 어우러져 있다. 이처럼 각각의 얼굴모양이 고유한 만큼 또 지루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서로 닮은 얼굴을 찾아내며 웃고 즐거워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고유한 얼굴 속에 내재하는 내형의 모습은 얼마나 많고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 그 누구도 속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 얼굴을 안다고 나를 안다고 믿는 것이다. 하여튼, 이 고유한 얼굴은 이처럼 자신을 나타내기에 둘도 없이 좋은 대상이기에 화가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의 자화상 그리기를 즐겨했다. 아마도 그들은 자화상을 그리며 스스로의 존재감을 표출하고, 자신의 모습에 감탄을 자아냈을 것이며, 그런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알리고, 후세에 길이길이 남기고자했을 것이다.
유럽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처음 현지에 도착해 언어가 소통되지 않던 시기에는 물론이고 시간이 지나 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때에도 현지인들로부터 이유 없는 차별을 자주 느꼈다. 아마도 자신들과 다른 동양인의 외모로부터 비롯된 선입견(좋은 것이던, 그렇지 않은 것이던)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경험이 결국 내가 그리는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을 만들어 냈다. 나만의 고유한 얼굴을 자의적으로 일그러트리거나, 특정부분을 감추고 보여준다면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저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내 모습을 보여주며 이것이 내 자화상이라고 주장해 과연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비록 결과적으로는 온전한 내 모습이 아닌 또 하나의 괴기스러운 모습을 창조하는 결과만을 얻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시도가 내가 하는 예술적 작업과 연관이 아주 깊다는 것은 분명했다.
너무도 주관적 시선인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 아직도 공공연한 피부색으로 인한 인종적 차별, 서로 경험해보지 못한 성별에 따른 섣부른 태도, 그리고 직업과 사회적 위치에 따른 계급적 판단 등. 이런 수많은 선입관과 편견들로부터 나 또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을 통해 진정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새로운 모습을 대하는 것에 더욱 익숙해져야 하며, 그것의 형상이 가진 외면만을 보지 않고 내면의 모습에도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