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열(Han Jae-Yeol)

1983년06월10일 출생

서울에서 활동

작가 프로필 이미지

소개말

그의 곁에 머무는 것들

예술은 삶을 보다 윤택한 것으로 만든다. -프란시스 베이컨

나는 아직도 한재열의 그림이 내게 주었던 충격과 전율을 잊을 수 없다. 그 날 갤러리를 나설 즈음 이미 혼란에 휩싸여 있었던 것도 기억한다. 더블린의 도슨 가를 서성이던 어느 날, 아폴로 갤러리로 들어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도중 나는 숀 스컬리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조그만 캔버스들을 보게 되었다. 전시의 일부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돋보이던 그 그림들은 전시의 전부였어야 마땅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재열의 그림들은 나를 흥분시키고 달뜨게 했다. 모든 것이 평온했던 8월의 오후, 나는 왜 그 그림이 나를 흥분시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렇게 나는 그의 그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약 한 달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다시금 재열을 만나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 우리는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고 있었다. 재열은 그의 작가노트를 편집하고 싶다는 나의 부탁을 받아들였고 그 날 우리는 카페에서 진행과정을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 당시 그가 알고 있는 단어가 한정되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그의 영어는 경이로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약간의 문법적인 오류만 바로잡아 준다면 금방 돌파구를 찾아낼 듯싶었다. 180cm에 다다르는 장신을 가진 그는 늘 맵시 있는 옷을 골라 입었고, 항시 탐구하는 태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 분명한 방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지만 결코 유머감각을 잃지는 않았다. 그와 대화하면서 나는 동양인이 R과 L의 발음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는 재열이 발음 때문에 겪는 오해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이 사실을 눈치챘는지 나와 함께한 여러 달 동안 끝까지 자신의 발음을 바로잡지 않았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늘 즐거웠다. 사생활에서도 재열은 항상 예의 바른 사람이었는데 이런 성품은 서양에서 찾기 힘든, 철저히 동양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품이 그의 전부는 아니었다. 한재열이라는 사람에게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바로 화가로써의 굳은 결심이었다. 재열은 재미를 보려고 1년 동안의 해외거주를 신청한 것이 아니었다. 아일랜드에 있는 동안 마약에 손을 대거나 유흥에 빠지는 대신 그는 오직 ‘얼굴’ 연작을 발전시키는 데에 집중했다. (연작이 발전해나가는 동안 그는 계속 다른 제목을 붙였다.)

화가에 대한 얘기는 충분했고 이제 그의 작품에 대해 말하고 싶다. 최근 나는 그의 작품들이 마치 중력과 같은 힘으로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의 작품들에는 단지 기교적인 일관성이라고 보기 어려운, 말로는 설명할 수는 없는 공통점이 있다. 비유컨대 그림들 스스로가 모여서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설명할 테니 지금은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싶다.

한재열은 괴테의 색채론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그닥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도 그는 색채론의 한국어 번역본을 읽고 있었다). 채도가 높은 색을 즐겨 사용하는 그는 검은색을 하나의 색채 이상으로 여기며, 형태를 파악하고 세밀한 묘사를 더하는 데에 검은색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이용한다. 물론 검은색은 그림자로서 그의 그림에 양감을 더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그림에 더하는 양감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늘 움직이는 듯하다. 그의 그림 대부분이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거나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는 행인들의 얼굴을 각각의 캔버스에 담아낸 것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그의 그림은 끊임없이 부딪히는 표현과 생략의 사이에서 태어난다. 예술만이 아니라 해부학에도 정통한 그는 주제가 되는 인물의 특징을 정확하고도 개성 있게 포착해낸다. 그는 매일 스케치북에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이 중에서 독특한 반향(反響)을 지닌 얼굴들을 골라낸다. 그렇게 밤이 깊고 나서, 그는 단 한 번의 집중된 시간 동안 유화를 그려낸다. 이 연작은 실로 그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성격은 작품에 걸맞게 강인하고 자유롭다. 아니다, 그가 아는 단어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그는 내가 말하는 단어 하나에 주의 깊게 귀 기울이곤 했다. 나는 원어민이기 때문에 생각 따위를 표현할 때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어떻게 말하든 내 말은 이치에 맞고 조화를 이룰 것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열은 늘 내 말을 분석했고, 내 말에 동의하지 않을 때에는 평소의 과묵함을 깨고 끈질기게 반박했다. 이럴 때마다 그의 영어는 불가사의하게도 원어민인 나의 영어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었다! 우리의 말다툼은 마치 향신료와 같았고, 카페나 갤러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혹은 전시회가 끝나고 나서 점심을 함께 먹고 나면 우리의 혀는 얼얼해져 있었다. 이런 고집이야말로 작품을 쫓는 원동력임이 틀림없었다.

다시 그의 그림에 대해 말하자면 빛에 관련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빛으로 하여금 조화를 이루게 하고, 명암의 대비보다는 색채의 선명함을 강조한다. 거침없이 일어나는 변화는 금방이라도 말을 걸어올 듯 생생하다. 손으로 만지고 싶다는 충동을 부르는 오일바의 질감, 때로는 두텁게 덧대어지고 때로는 투명에 가깝게 풀어지는 유화물감. 그럼에도 내게 가장 와닿았던 것은 그가 그림을 통해 인간으로써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의 그림을 섣불리 전체주의로 분류하지 않도록 조심하는데, 전체주의가 적절하지 않다기보다는 그의 그림을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분석을 통해 우리는 이미 입증된 사실들은 어떤 것이고 주목할 만한 것들은 또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존재의 매 순간을 스쳐 지나가며 우리의 관심을 끄는 수많은 것들을 설명하기에 논리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의 그림은 어떻게 존재의 은밀한 부분을 건드리는 걸까?

이 수수께끼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로 했다. 먼저 그의 그림이 왜 스케치나 연습의 범주를 넘어섰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그의 그림을 보다 넒은 관점에서 고려해 보기로 했다. 예를 들어 나는 그가 한국에 돌아가서 초상화들을 더 큰 캔버스로 옮기고 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다. (그가 최근 작업한 큰 캔버스들을 본 순간 나의 의심은 말끔히 사라졌다.) 또한 그는 얼굴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림을 통해 예술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예술관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아래에 그의 말 일부를 소개한다.

“예술가는 관심을 받아 마땅한, 그러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들을 탐구해야 한다. 이 연작은 완벽한 타인들이 내 흥미의 대상으로 바뀌면서 발생하는 실존적인 힘을 포착한다.”

여기에 더불어 재열의 성장배경을 소개하면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재열은 학교와 가정 양쪽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받아 왔던 엄격한 교육에 대해 말했다. 또 외동아들로서 겪었던 외로움에 대해서도 말했다. 만일 그가 받았던 엄격한 교육이 예술가에게 필요한 통제력의 근원이 되었다면, 바로 그가 겪었던 외로움이 남들과 다르고 독보적인 존재로 살고자 하는 그의 의지에 불을 댕겼던 것은 아닐까. 혹자가 그의 작품에서 도덕이 느껴진다고 말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래에 덧붙이는 그의 작가노트에는 이러한 사상이 녹아 들어 있다. 참고로 그가 여기에서 말하는 감정은, 감정을 절제와 균형의 대상으로 보는 동양 철학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감정은 무의식적인 판단의 결과이다. 감정은 내면의 감성과 이성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이성적인 판단 또는 결론에서 감정을 느끼고, 감정은 다시 이성적인 결론을 낳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태어나는 산물이 내게 있어서는 그림이다. 그림은 다량의 시각적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매체이고, 따라서 나는 감성과 이성의 역동적인 줄다리기를 그림으로 옮긴다. 내 그림을 보는 관객의 내면에서 충돌하는 이성과 감성은 물론 관객이 느끼는 감정이지만 동시에 내가 그림에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이로써 우리는 그가 예술가로서 이룩하고자 하는 목적에 한층 더 가까워진다. “…충돌하는 이성과 감성은 물론 관객이 느끼는 감정이지만 동시에 내가 그림에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로 끝나는 마지막 문장은 내가 앞서 말했던, 그의 그림이 가진 중력과 같은 힘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가 관찰하는 대상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그의 그림을 보는 관객도 여기에 사로잡히면서 그 밀접함의 일부가 된다.

한재열이 캔버스에 담아내는 거친 붓 놀림은 마치 조각과 같다. 그리고 덩어리를 잡아나가는 과정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은 희미한 선들은 마치 요람처럼 거친 조각의 얼굴을 감싼다. 이러한 부드러운 선은 조형적인 요소와 대비를 이루며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젯소로 마감한 캔버스에 지나지 않았을 표면은 하나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캔버스의 빈 공간은 유화로 칠해진 부분에 대항하는 힘이지만 동시에 조화를 이룬다. 얼굴을 가두는 대신 움직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곳곳에서 물감이 옅어지고 색이 서로 스며드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사라지지도 뚜렷이 나타나지도 않은 부분들은 양 극단 어디로도 향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부분들은 반투명하다. 그러나 반투명이라는 말에는 가능성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고, 따라서 그의 그림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표현은 아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 따르면, 그림의 빈 공간은 사람들의 지각을 피해간다고 한다. 그러나 게슈탈트 심리학도 이렇게 지각을 피해가는 부분들이 어떻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 반투명한 부분이야말로 관객을 끌어당긴다고 생각한다. 가득 메워진 곳에는 더할 것이 없지만, 빈 부분들은 관객이 무언가를 더함으로써 완성된다. 물감이 텅 빈 캔버스로 바뀌는 반투명한 지점은 그림을 완성하는 부분이지만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에 걸친 분석 동안 내가 깨달은 바는 다음과 같다. 한재열의 그림을 보는 동안 그 사람은 한재열이 그려낸 수많은 행인의 일부가 된다. 결국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스쳐지나가는 행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행인의 무리 속에, 한동안 함께 걸었던 아는 얼굴이 섞여 있다 하더라도 그 역시 무리의 일부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얼굴’ 연작은 관객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녹여내고 있었다.

©2012년 8월 섀이 라일리 / 번역 한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