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쾌대(Lee Quede)

1913년 출생 - 1965년 사망

서울에서 활동

추가정보

이쾌대(李快大,1913~1965)는 백남준(白南準, 1932~2006)과 함께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히며, 그가 그린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1940년대)은 한국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는 월북화가라는 이유로 이름조차 거론되는 것이 금기시되다 1988년 해금이 된 후에야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동안 그 존재조차 가려져 왔던 화가가 이토록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완벽에 가깝게 인체를 그려내는 뛰어난 능력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 듯한 인물들의 분위기와 표정, 역사와 시대가 녹아있는 작품의 주제가 감상자들을 작품 속으로 깊이 빨아들인다.  1913년 경북 칠곡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이쾌대는 서울의 휘문고보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웠다. 학창시절 이쾌대는 인물화에 관심을 보였으며, 일본의 유명 전람회인 ‘니카텐’(二科展)에서 <운명>(1938)으로 입선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귀국 후에는 이중섭(李仲燮, 1916~1956), 최재덕(崔載德, 1916∼?) 등 일본 유학출신 화가들과 함께 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한국적인 감성의 세련된 서양화들을 선보였다.   해방 후에는 해방의 감격과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하여 <군상―해방고지>(1948)와 같은 대작을 발표하며 화단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쾌대는 새로운 국가건설에 있어서 예술가의 역할과 사명을 고민하면서 창작의욕을 불태우는 한편, 홍익대학교 강사,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화가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그러나 6.25가 발발했을 때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북한군의 선전미술 제작에 가담하게 되었고, 국군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북한으로 가고 말았다.  이쾌대가 어떠한 구속도 없이 회화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한 1933년부터 한국전쟁 이전인 1949년까지 2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이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이쾌대가 남긴 작품은 30대의 화가가 남긴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한 탐구정신과 예술세계의 변화를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는 이쾌대의 17살 때 그린 수채화부터 월북직전 포로수용소에서 남긴 드로잉까지, 이쾌대 예술의 전개와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이다. 아울러 이번 전시에 최초로 공개되는 드로잉, 잡지 표지화, 편지, 그리고 각종 유품들은 이쾌대의 예술세계를 한 단계 깊이 이해하는 것을 도와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