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요섭(Baek Joseph)

1985 대전 출생

대전,서울에서 활동

작가 프로필 이미지

소개말

안녕하세요 백요섭 작가입니다.

Q.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현재는 축적된 과거를 바탕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사는 시간은 현재에 속하지만, 현재의 우리를 만들어낸 건 수많은 과거의 경험과 기억이다.
오늘의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어제의 ‘나’가 축적된 결과물이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나’가‘나’라는 사람의 본질에 더 가깝겠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종 이면의 세계는 간과하거나 쉽게 잊곤 한다.
특히 스마트 폰, 컴퓨터, sns등 기록 매체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은 가상의 공간에 쉽게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의도 하여 기록하고 보여주며 소통하는 법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물론 매체의 발달로 기록의 쉬운 접근 부분을 부정하거나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작가적 관심은 어떻게 오늘의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의도된 부분을 크롭 하여 극대화 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런 관심의 연유는 과거에 본인은 전반적인 삶과 예술 활동에 있어, 관계성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 되었다.
관계 속의 살아가는 우리는 각자가 의도하여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에 길들여져 있으며 이것은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의 고민으로 다가왔다. 물론 작가인 나의 삶의 방식이 의도된 방식에 길들여져 이러한 의문을 품게 되었을지 모른다. 이 과정은 작가와 작품 속에 관계에서도 공통된 질문으로 돌아왔다. 의도와 개념을 갖은 캔버스의 최종의 이미지가 과연 어떻게 전달되며 실재로 의미화 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비가시적 의미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것은 타인에게 어떻게 수용 되어지는가?
이러한 의문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 실마리를 탐구하던 중 곳곳에 숨어있는 공통 된 ‘나’를 주목하게 되었다. 현재의 표면에 드러난 ‘나’가 아닌 수많은 어제의 ‘나’가 어떻게 축적되어 가는지를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기억의 흔적들이 기록 되어지며 떠오를 수 있는지를 관심 가고 탐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나의 내적 창작의 동기가 되었으며, 이런 의문은 앞서 기술한 쉽고 빠르게 의도하여 보여 주는 방식에 익숙해진 현재의 우리들도 궁금해 하는 과정이라 생각 되어졌다.
본인의 작업은 “보여 지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관념을 배제하고 우리의 경험과 기억들이 어떻게 축적이 되며 현재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내면의 모습들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며 어떤 부분이 이면을 촉각 할 수 있는지를 회화의 기본적인 요소인 빛, 안료, 점, 선, 면을 통해 실험적 방식으로 전개 하게 되었다. 매일 일상의 기억을 종이에 기록하고 말리려고 널어놓은 종이 기록을 다시 캔버스에‘물질(안료)’을 덮고, 긁고, 걷어내고, 닦아내고, 다시 덮고 하는 것을 반복하는 실험을 하였다. 이것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하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축적된 과거를 바탕으로 하는 이면의 흔적이기도 하였다.

Q.주로 사용하는 작업방법과 나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팔림세스트(palimpsest)
중첩된 시간 속 기억의 문제를 보여주기 위하여, ‘팔림세스트’ 개념을 끌어 왔다. 다소 생소한 단어인 팔림세스트는 고대와 중세에 중동과 이집트, 유럽 등지에서 쓰던 기록의 방식을 말한다. 종이가 없던 시절, 글을 기록하던 용도로 쓰던 양피지나 동물 가죽은 그 값이 상당했다. 그래서 처음 썼던 글을 씻어내고 그 위에 다른 글을 써서 재활용했는데, 이러한 방식과 결과적으로 나온 텍스트를 팔림세스트라 한다. 팔림세스트는 그 자체로 유물로서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의미와 해석은 더 확장되어왔다. 특히 선형적 시간 순서상 앞에 쓰인 텍스트와 뒤에 쓰인 텍스트가 한 화면에 중첩되는 지점은 시간과 기억에 관한 우리의 일반적인 관념에 대해 돌이켜 보게 한다. 본인의 작업은 팔림세스트와 같은 중첩된 이미지에 주목하였다. 이를 위해 화면에 물감을 바르고 그 위에 또 다른 색을 덧바른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긁어내면, 물감의 마르기에 따라 여러 층들이 섞이기도 하고 긁혀 나가기도 한다. 이를 통해 밑에 칠해진 색이 위에 덧입혀진 색으로 인하여 덮이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면서 중첩된다. 이는 한 겹의 색면이 있을 때와는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저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되는 산술적인 결합이 아니라, 그 이상의 다층적인 감각을 가능하게 한다. 본인의 작업에서 반복적인 행위를 통하여 “원칙적으로 밑에 먼저 지워진 것들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생각”되어 질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저 밑면과 윗면 간의 시간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간은 경험에 따라 시간을 다르게 느낀다. 즐거운 경험을 할 때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지만 상대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는 시간이 더디게 느껴지곤 한다. 이러한 경험의 시간은 비단 역동적인 움직임에서만 있지 않다. 색과 물감의 질감, 붓질과 긁힌 흔적 등을 시각적으로 볼 때도 역시 하나하나 다른 시간적 경험을 하게 된다. 본인은 언뜻 단순한 색 면으로만 보였던 화면 속에서 수많은 색 층과 질감이 뒤섞여 다른 감각적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캔버스에서 관람자와 마주함을 맞닥뜨리는 순간 경험의 시간은 빛과 같이 빠를 수도 있고, 붓이 그어졌던 속도에 맞춰 차분한 움직임의 시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의 중첩
“레오니 고모가 나에게 준, 보리수 꽃을 달린 더운 물에 담근 한 조각의 마들렌 맛임을 깨닫자 즉시 거리에서 면한, 고모의 방이 있는 회색의 옛 가옥이 극의 무대장치처럼 나타나, … 작은 별채와 결부되었다. … 그러한 모든 것이 형태를 갖추고 뿌리를 내려, 마을과 정원과 더불어 나의 찻잔에서 나왔다.” -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마르셀 푸르스트의 유명한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스완의 집에서 주인공이 마들렌에 대해 회상하는 장면은 기억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본인이 추구하는 실험이 위 대목에서 말하는 마들렌 한 조각을 차에 넣어 베어 문 순간, 어릴 적 고모집에서의 기억이 소용돌이처럼 엄습해오는 느낌을 표현 하는것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실험으로 중첩되어진 표현을 통해 옛 기억이 ‘팝’하고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작으로 서로 연결된 감각적 기억의 파편들이 함께 날아온다는 점을 연구하고 시도하고 있다.
푸르스트는 ‘회색’ 가옥, ‘형태를 이루고, 물들고, 구분되어, 꿋꿋하고도 알아볼 수 있는 꽃’, ‘선량한 사람들과 그들의 조촐한 집들’ 등의 표현을 통하여 마치 그 공간을 보고, 냄새를 맡고, 느끼고, 말소리를 듣는 것처럼 오감으로 감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들이 주인공이 잡은 한 잔의 찻잔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이러한 연상의 과정은 본인이 말하는 작업방식과도 유사하다.

안료와 빛의 시각적 연구
아침에 뜨는 햇살, 아이를 안아 들었을 때의 행복,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기쁨과 고통의 느낌들,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의 미묘한 감정 등을 작품에 기록하고 실험하였다. 첫 번째로 본인이 겪게 되는 감정과 보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감각들을 기록하는 실험을 일년의 기간 동안 실행하였다. 세 끼니의 식사처럼 정해진 시간에 정해놓은 양의 드로잉을 하였다. 이는 본인에 대한 연구이자, 기억의 시각화에 대한 연구였다. 일종의 실험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시간과 상황을 최대한 제한하여 동일한 상황을 만들고, 그 속에 변인으로 매일의 시간과 본인의 개인적 경험만이 들어간다.
이렇게 매일 겪게 되는 현실적 상황은 드로잉을 하는 순간 기억되고 시각화되며, 이미지화가 되면서 현실적인 ‘실재(réel)’가 된다. 베르그송이 말했듯 어둠 속의 잠재된 과거가 현재에 빛나게 되면서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마치 이름을 불러주어 아름다운 꽃이 된 것처럼 말이다.
<팔림세스트> 이후 기억의 경험을 추상화한 작업을 해왔다. 본인이 느낀 여러 감각을 중첩하여 표현하고 지우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작품마다 미묘하게 다른 색감과 질감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마치 프루스트의 주인공이 한 잔의 찻잔에 자신의 기억을 환기하듯, 작품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기억을 떠올려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본인 작업의 목표이다.
녹색에 흔적이 가득한 캔버스에는 가족과 함께 한 캠핑의 즐거움이 떠오를 수 있고, 붉은색의 흔적이 가득한 화면에서는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던 때의 뿌듯함을, 녹음이 우거진 풀과 나무의 냄새, 바람, 아이들의 웃음소리, 맛있는 음식 등이, 밀리는 차의 붉은 등과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를 상쇄하듯 붉게 피어 오르는 저녁노을 볼 때의 안도감 등을 공유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실험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