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김선두의 고향읽기

2014.09.03 ▶ 2014.09.28

롯데갤러리 본점

서울 중구 남대문로2가 130번지 롯데백화점 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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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ㅣ 2014년 09월 03일 수요일 05: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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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두

    서편제-길의 노래 장지위에 분채, 60x90cm,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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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두

    밤산길의 독행자 장지위에 먹, 분채, 130x162c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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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두

    성가신 봄 기행도 장지위에 먹, 분채, 196x191cm,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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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두

    서편제-소리의 얼굴 장지위에 먹, 분채, 90x60cm,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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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두

    서편제-유봉 장지위에 먹, 분채, 60x90cm, 2013

  • Press Release

    두 예술가의 한 고향읽기
    사람들은 요즘 열심히 길을 걷는다. 둘레길 같은 나라 안의 길뿐 아니라, 순례자들이 걸었다는 먼 나라의 길Camino de Santiago도 걷는다. 그들은 오로지 두 다리에 의지해 느린 걸음으로 길을 걷기 위해, 때로 비행기처럼 빠른 문명의 이기(利器)를 타고 날아간다. 사람들이 나라 안팎에서 걷는 길은 대부분 새 길이 아니라 옛길이다. 곧게 뚫린 새 길은 터널 따위를 이용해 이쪽과 저쪽을 빠르게 이어준다. 박달재나 미시령이 그렇듯 새 길 곁에는 구불구불한 옛길이 남아있는 경우가 꽤 있다. 속도와 효율이 중요한 시대, 옛길은 그 이름처럼 잊혔었다. 하지만 옛길은 예전처럼 지금도 거기 그렇게 있다. 현실에서 지워져 눈으로 볼 수 없는 옛길도 마찬가지다. 길은 우리가 길을 잊을 때만 사라지고 없게 된다. 그러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길은 사람과 더불어 비로소 길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요즘 치유healing를 갈망한다. 사방에서 들리는'힐링'이 말해주듯, 그들이 옛길을 걷는 이유는 도시의 삶에 지친 몸과 마음,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술을 통해서도 그런 치유를 맛볼 수 있다. 고향의 산하와 사람들을 노래하고 그린 이야기와 그림은, 옛길을 걸으며 자연의 색과 소리와 향기를 느끼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길이다. ● 고향은 사람이 태어나 자란 곳, 조상들이 살던 땅이다. 고향은 추상적인 공간이 아니라 구체적인 장소다. 장소는 감각적 경험으로 의미가 부여된 공간으로, 장소의 중심은 경험을 모태로 하는 기억이다. 고향은'나'만 아니라'우리'의 기억이 축적된 장소다. 우리는 오랜 시간 한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겪으며 맺어진 운명공동체다. 우리는 나에서 시작해 가족, 민족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타향의 가장 큰 단위는 타국이라 할 수 있다.

    이청준과 김선두의 고향은 전남 장흥이다. 한 고을 태생인 두 예술가는 소설과 그림으로 고향을 형상화했다. 삶에 대한 반성적 장르를 다루는 소설가는 사람에 주목해서 「남도사람」연작을 썼고, 시각적 이미지를 다루는 화가는 그 사람들이 사는 땅, 「남도」 연작을 그렸다. 남도는 두 예술가에게 좁게는 장흥이며 넓게는 장흥 주변의 강진, 보성을 포함한 전남 전체를 말한다. ● 1. 이청준-이청준은 「남도 사람」 연작과 같은 시기에 「언어사회학서설」연작을 썼다. 「남도사람」은 고향(시골)을 기반으로 존재적 삶을 그렸고, 「언어사회학 서설」은 타향(도시)을 중심으로 관계적 삶을 그렸다. 이청준의 소설에서 존재적 삶은'나무'가 상징하는 붙박이 삶이고, 관계적 삶은'새'가 상징하는 떠돌이 삶이다. 「남도사람」의 네 번째 작품인 「새와 나무」는 두 삶을 표제로 한다. 새 중에서도'빗새'는 비 오는 날 편안히 깃들 둥지조차 없는 새다. 고향을 떠나 정처를 잃고 떠도는 사람을 나타내는 이런 빗새들은 귀향을 통해서 젖은 날개를 말리고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 고향은 이청준에게'관용의 성지'이면서'까마득한 유년의 기억'이 있는'사라진 밀실'이기도 하다.

    이청준은 고향을 도망치듯 빠져나왔기 때문에 떠났다기보다 쫓겨났다는 의식이 강했다. 젊은 그는 고향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성공하기 전에는 찾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이청준이 고향을 찾기까지 그렇게 20년이 걸렸다. 그동안 그의 도시생활은 광장의 삶이었다. 광장은'대량정보와 빠른 유통 속도의 시대, 그로 하여 누구나 서로 자신의 밀실을 나와 함께 섞이고 어울려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개인의 밀실이 간직되지 못한 삶은 참자아의 모색과 창조를 어렵게 한다. 이청준이 광장의 오랜 삶에 지쳐 고향을 찾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밀실찾기라 할 수 있다. 그는 광에 숨어 깊은 잠을 자곤 하던 어린 날의 시골살이가 바로 고향살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시골의 삶에 대한 그리움은 자기 삶의 근원과 순정성에의 회귀욕구이다. 도회살이가 합리적 정보나 지식의 전수를 통해 힘과 지배의 질서를 지향한다면, 시골살이는 대상과 직접 만나 스스로 깨닫는 세계에 자신을 순응시켜 나가는 조화를 지향한다. 시골살이에서는 개인이 삶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존재 자체에 다가가는 밀실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청준은'고향이라는 것은 자기 삶의 실체나 영혼이 허물어짐을 깨달았을 때 그 삶을 다시 추슬러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자위나 자정(自淨)의 심정적 귀향지'라 하였다.

    나는 마침내 그 피곤기와 부끄러움을 안고 고향길에 나섰다. 그리고 비로소 고향의 참모습을 만났다. 고향은 밖에서 이루고 얻은 자들의 금의환향만을 기다리는 곳이 아니었다. 밖에서 잃고 지쳐 돌아온 자들을 위해 휴식과 위안을 더 많이 준비하고 기다리는 곳이었다. 그 넉넉하고 허물없는 도량은 누가 감히 무엇을 더하고 덜할 것이 없는 관용의 성지였다.-(김선두 작가 삶으로 맺고 소리로 풀고中) 새에게 나무가 자유와 새로운 비상의 터전이듯 고향은 지친 영혼을 끌어안고 치유하는 곳이다. 이청준이 삶의 굽이를 돌때마다 찾아가는 고향은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동시에, 소설 속'이어도'처럼 현실 속의 이상향이기도 하다. 외지인에게 장흥은 산과 바다와 들판의 조화가 아름다운 고장일 뿐이지만, 그에게 고향은 두 개 이상의 층위를 갖는다. 하나는 현실의 구체적인 장소이며 다른 하나는 머리와 가슴 속에 있는 과거의 고향, 이상적인 고향이다. 옛고향에는 이청준이 살았던 시간만 속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고향이 품고 있는 모든 시간대가, 한마디로 그곳을 그곳이게끔 하는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래서 한국전쟁 등 참혹한 경험과 끼니를 거르는 궁핍한 경험도 정직하게 응시할 경우 새로운 힘을 주는 원천이 된다.

    이청준은 소설쓰기를 일종의 자기 씻김질이라 했다. 그것은'마음속에 한을 쌓고 맺는 노릇이 아니라 맺힌 한을 풀어 넘어서려는 쪽'이라는 점에서 남도소리와 맥을 같이한다. 이청준의 『남도사람』에 유장히 흐르는 것이'서편제'로 대변되는 남도소리다. 남도는 노래를 하고 풍류를 즐기면서 마음의 한을 신명으로 만든다. 노래와 풍류로 마음의 한을 신명으로 만드는 것은 예술로 삶의 아픔을 풀어 씻기는 것이다. 이청준은 그런 남도를 같은 남도 태생 화가 김선두의 그림에서 보곤 했다. 풍경화에 대한 내 상식과는 달리 역(逆)원근법을 사용한다는 그의 그림에 대한 미학적 이해는 말할 처지가 못 되지만, 누런 황토밭과 회백색 논바닥, 무너진 속살의 상처를 벌겋게 드러낸 숲길과 콩나물 대가리처럼 우습게 구부러진 나무들에서 나는 어딘지 궁핍스런 고향의 정한과 함께 남도 사람들의 정겨운 사투리 객담 투라도 마주한 기분이 들곤 하였다.- (이청준 작가 영혼의 소리를 듣는 화가中) ● 이청준이 김선두를'울림 깊은 화혼'으로'다른 혼백들도 깨워 일으켜 말을 하게 하고 그 소리를 듣는','영혼의 소리를 듣는 화가'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 2. 김선두 예술가는 세계에 대해 자기만의 인식틀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생각이나 느낌,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작업이 고유의 세계관을 다지는 데 매우 중요하다. 아주 분명해 보이는 생각이나 감정도 사실은 혼돈 그 자체일 때가 많다. 글읽기와 글쓰기는 생각과 느낌을 구조화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로 소설가뿐 아니라 다른 예술가에게도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김선두가 태생의 정서를 같이하는 소설가 이청준을 만난 것은 행운이라 할 수 있다.

    김선두는 그림길 처음에 도시 주변인과 서커스 사람들을 그렸다. 그 길은 「남도」와 「그리운 잡풀들」, 「행」과 「싱그러운 폭죽」과 「느린 풍경」으로 이어진다. 김선두는 「남도」에서 역원근법을 본격적으로 선보이는데, 역원근법은 남도라는 땅이 가진 생명력을 보여주는 데 매우 잘 맞는다. 남도 그림을 보면 가끔 땅이 벌떡 일어서 보는 사람을 덮칠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역원근법은 「그리운 잡풀들」에서 가장 커진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고향 땅 위에 그 땅보다 더 크게 솟아난 잡풀들은 무엇일까. 그들은 왜 그리운가. 김선두에게'이청준의 글을 읽는 것'은'고향에 가기','고향길 걷기'와 같다. 그래서 화가는 한 고을 태생 소설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어린 시절 고향 사람들이 떠오른다고 한다. 도시 주변인과 서커스 광대는 관상용 꽃들이 아니라 이름 없는 잡풀들이다. 이런 잡풀들은 도시가 남도로 바뀌면'그리운' 잡풀들이 된다. 어린 시절 장소인 남도에는 그리운 잡풀들이 산다. 도시로 옮겨진 나와 나의 확산인 우리는 주변인이지만, 고향에서 나(우리)는 세상의 중심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김선두의 그림에서 그리운 잡풀은 점차 땅에 깊게 뿌리를 내린 존재,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진 나무가 된다. 많은 경우 김선두의 고향 풍경에서 나무는 곧 사람이다. 그가 그린 나무들은 제각각 움직이거나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남도」의 역원근법은 가장 먼 것이 가장 큰 것이고, 가장 먼 공간이 가장 가까운 공간, 다시 말해 가장 깊은 장소인 고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김선두에게도 고향은 지금 이곳의 고향이 품은 현실 속의 이상향에 가깝다. 김선두가 이청준을 만난 뒤 시작한 「행」과 「느린 풍경」의 길은 지금 남도길이 아니다. 화가의 기억 속에 있는 구불구불한 비포장길, 느린 풍경 속의 느린 길, 앞이 아니라 뒤로 난 그 길은 남도 소리가 시각적 이미지로 나타난 육자배기 같은 길이다. 이 길은 // 앞이 아니라 뒤로 가는 길 // 밖이 아니라 안으로 난 길 -(김선두 작가 뒤로 난 길中)

    빠르고 느리다는 시간개념은 상대적이다. 아무리 느려도'~보다' 빠르다. 상대적 느림은 어쨌든 흘러간다. 하지만 이런 느림에 공간이 결합되면 시간은 상대성을 잃는다. 공간화된 느림은 그 공간에서 시간을 끝없이 되접어 다시 살 수 있는 절대적인 느림이다. 김선두에게 공간화된 느림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답하려면 그에게 고향이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 김선두에게 고향은 이청준과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어린 시절의 공간이다. 아직 어른의 의무를 갖지 않고 자연과 사람들과 사이좋게 어울려 살던 곳, 그 기억과 추억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래서 고향은 공간이되 어린 시절이라는 절대적 시간을 포함한 특별한 장소가 된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면 다시 꺼내볼 수 있는 기억으로 멈춘 시간, 그 시간을 품은 장소가 된다. 김선두가'정확한 관계''빈틈없는 계산''틀림없는 숫자' 등으로 정의하는 직선, 직선적인 것은 이청준의 소설에서 관계적인 삶, 도시의 삶을 나타내고, 곡선은 존재적인 삶, 시골의 삶을 나타낸다. 두 예술가는 직선 속에 살지만 곡선의 삶을 지향한다. 도회의 삶에 지친 예술가가 돌아가 쉴 수 있는 고향은 모든 직선의 삶을 곡선으로 감싸 안는 곳이다. 고향은 사람 사이의 분명하고 직선적인 관계를 풀어 그들이 존재와 존재로 만나게 하는 곳이다. 느린 선의 미학을 통해 우리네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 내 그림이다. 나의 그림길엔 항상 느린 선의 꿈과 노래, 그리고 사랑의 마음이 함께할 것이다. -(김선두 작가 코멘트)

    김선두는 이청준의 「눈길」을 여러 번 그림으로 그렸고 병풍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병풍은 펼쳐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구부려놓고 걸어가면서 보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하나가 네모난 구도 속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큰 전체로 연결되는, 마치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네모난 차창으로 보는 풍경의 끝없는 유혹 같은 것이다. 그 풍경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화가가 재창조한'눈길'처럼 풍경의 유혹을 받으며 끝없이 걸어서 다다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지구는 둥글어 자꾸 걷다 보면 결국 자신이 떠나온 그곳에 이를 것이다. 그곳은 이청준 소설의 인물 무소작이 말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멀고 낯선 곳, 이 세상을 모조리 헤매 돌아다니다가 종국에 도달하는 곳, 바로 고향이다. 그런데 이청준의 소설에서 그 고향은 사라지고 없다. 그가 무소작으로 하여금 현실에서 사라진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다. 앞서 보았듯이 고향은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 돌아갈 꿈이 없이는 삶을 살아갈 수 없지만 그곳에 실제로 살러 갈 수도 없는 현실 속의 이상향이다. 사정은 김선두나 고향을 떠난 대부분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모든 고향은 예전처럼 지금도 거기 그렇게 있다. 현실에서 지워져 눈으로 볼 수 없는 옛고향도 마찬가지다. 고향은 우리가 고향을 잊을 때만 사라지고 없게 된다. 그러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향은 사람과 더불어 비로소 고향이 된다는 것이다. 이청준, 김선두 두 예술가에게는 어린 시절에 체험한 고향이 원형으로 남아 있다. 그들이 다시 돌아가 만나는 현실의 고향에는 그들이 예술 속에 형상화한 고향의 원형이 들어있다. 우리는 그들의 예술을 통해 우리의 고향을 본다. ■ 이윤옥

    전시제목이청준, 김선두의 고향읽기

    전시기간2014.09.03(수) - 2014.09.28(일)

    참여작가 김선두

    초대일시2014년 09월 03일 수요일 05:00pm

    관람시간10:30am~18:00pm

    휴관일없음, 백화점 휴점일 휴관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무료

    장소롯데갤러리 본점 Avenuel Lotte gallery (서울 중구 남대문로2가 130번지 롯데백화점 본점)

    연락처02-726-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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