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색 그 열정에 대하여...

2015.11.16 ▶ 2016.01.30

갤러리 신시

서울 서초구 논현로5길 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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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ㅣ 2015-11-16 17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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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남훈

    Patriot Ahn Joong-kun oil on canvas, 133x162cm, 2015

  • Press Release

    2015 2회 개인전을 준비하며

    한 모델의 깊이와 철학을 그리고 내면을 담으려 오래전부터 관상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짧지만 역학을 공부하며 자연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환경과 배경 그리고 그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면적 철학이 그 사람의 얼굴을 완성시키게 된다. 그 깊이있는 아우라와 분위기는 그 내공의 깊이 만큼 나오게 되있다. 관상을 공부하다 보면 그 중심이 하나로 일맥상통한다. 그것은 바로 눈이다.
    눈은 모든 관상의 완성채인듯하다.

    인간의 뇌에서 가장 가까운 기관은 눈이다. 눈은 뇌를 그대로 보여주는 창일것이다.
    그래서 눈을 보면 그 사람의 깊이를 알수 있을것이다. 좋은 생각을 하고 넓은 생각을 하게 되면 눈에서 그대로 방영이 되는듯하다. 그리고 맑은 생각이 아닌 좋지않은 생각과 사고를 하게 되면 그것또한 눈에서 그대로 방영이 되는듯하다.

    어떻게 보면 그냥 물이 흐르듯이 순리인듯하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말이다. 이러한 자연의 경관을 내가 보는 느낌과 감성 그리고 관상에 중심을 두고 빠르고 직관적인 표현을 한다.

    얼굴의 존재론과 선물의 윤리
    얼굴은 ‘인간’의 것이다. 얼굴은 직립한 채 거의 정면으로 살아내는 인간의 표식이다. 엎드린 짐승은 전방위(全方位)로 살아가고 그러므로 짐승은 얼굴이 없다. 얼굴은 대면, 대결, 대치, 대적하며 생존하는 인간의 낙인이다. 얼굴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야하는 인간의 업이다. 정면을 응시하면서 인간은 문명을 축적했고, 빛나는 이마로 직진하는 인간의 역사적 운명은 시간 역시도 정복했다. 얼굴은 유한성 안으로 초월적 시간을 불러들이고 무상(無常)한 자연에 대적하는 인간의 상징이다. 얼(soul)-굴(屈)은 내면을 갖는 인간의 이름이다. 인간은 얼굴을 쓰고 깊이를 감추면서 드러내는 존재이다. 얼굴을 통해 인간은 물리적 삶과 정신적 실체라는 고유한 이중성을 육화해낸다. 신경과 근육 위에 덮인 피부/껍질로서의 얼굴은 영혼을 담지한다. 인간은 얼굴을 통해 짐승에서 나와 초-물질적/형이상학적 존재로 올라가고 있다.

    얼굴의 인간성은 눈을 중심으로 확산한다. 눈은 얼굴의 중심이고 얼굴 자체이다. 눈의 봄은 세계와 존재를 대상화하고 고정하고 이해하고 소유한다. 근대적 세계관은 모두 보기의 은유로 구성되어 있다. 볼 수 없는 것까지 시각장 안으로 불러들여 볼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중에 문명은 신의 지역까지 넘보게 되었다. 짐승과 신 사이에서, 유한성과 무한성 사이에서, 물질학과 형이상학 사이에서 자신의 상승, 진보에 대한 이념을 구축해왔던 인간은 이제 자연(自然)도 신성(神性)도 거의 상실한 채로 불구화되고 있다.

    영혼의 출구로서의 얼굴과 인식의 기원으로서의 눈 사이에서 인간은 인간이거나 비인간이다. 인식은 더 밝은 눈을, 영혼은 더 맑은 얼굴을 간구한다. 제대로 정확하게 보기와 진실된 반영은 근대적 시각성과 초상화의 윤리였다. 그리고 인식의 곤궁(困窮)은 눈의 무능을, 영혼의 상실은 얼굴의 무의미를 요구할 지경에 이르면서 위험에 처해 있다. 그것이 이 시대에 눈과 얼굴이 무‘가치’한 이유이다. 인식의 전횡과 폭력, 그리고 신의 죽음이나 부재는 얼굴이 지워지고 눈이 거의 사라진 인간으로, 심지어 인간이 거의 부재하는 황량한 풍경으로 동시대 삶을 재현하는 주된 이유일 것이다.

    이 시대에 인간을 말한다는 것, 이 시대에 초상을 그린다는 것. 인간의 얼굴.

    도대체 누가 그렇게 시대착오적인 희망을 유지한 채 살 수 있단 말인가?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 눈으로 본다는 것은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폐허다’(황지우)고 고백하며 슬픔에 빠진 시인의 자의식 외에/이후에 무엇을 낳을 수 있을까? 인간의 실패가 갖고 온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 이상으로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할까? 얼굴은 낡았고 타락했고 사라지고 있다. 몰락의 악취와 슬픔의 서정성을 제외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다시 인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재현하고 인간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을까? 도대체 누가, 어떻게?

    얼굴을 그리는 자를 우리는 희구할 것이지만 그의 출현은 그의 태도와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 더욱이 인간의 실종과 동시적인 회화의 위기 이후의 회화 안에서라면.

    임남훈의 회화는 화가와 모델의 새로운 ‘대면’을 통해 출현한다. 그는 자신이 그린 인물, 자신에게 세시간 가량의 대화를 위한 시간을 할당해준 모델, 자신에게 자신의 ‘꿈’을 들려준 이에게 ‘작품’을 선물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난 인물들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데 드는 모든 비용을 스스로 지불하고, 또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일 그림을 선물할 것이다. 그들은 그와 만나 대화한 이들이다. 그것이 애초 이번 첫 번째 전시의 기획이고 의도였다. 그에게 얼굴, 영혼, 표정을 보여준 이들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자신의 쾌락을 돌려줄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자긍심, 자유, 고독이 모독받는 시절 예외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증명하는 예술가의 실존 방식을 끝끝내 붙들고 살아낸 이가 오직 캔버스에서 출현한 형상의 ‘이름’에게 그 캔버스를 돌려주기 위해 그린다는 이야기...... 그는 인간에게 무슨 빚을 진 것일까? 두텁게 쳐바른 물감의 더께로 편평한 인간의 거죽을 보호하고 그 ‘안’에 존재의 두려움, 쓸쓸함, 고귀함, 위엄, 슬픔 같은 것을 불어넣는 이 ‘재생(再生)’의 과정은 그가 인간에게 진 빚을 갚는 과정일까? 그러므로 무구한 자가 죄지은 자를 구한다는 종교적 이념이 출현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를 사해주는 제식은 계속 있게 될 것인가? 내가 인간의 얼굴로 지은 죄를 씻어줄 자는 죄 없는 자라면, 그것이 회화로서의 종교가 해왔던 실천이라면, 예술가-성직자의 형상을 우리는 임남훈에게서 알아보아야(recognize) 하는가? (별도로 그는 ‘예수’의 형상을 재현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과업에 매달리고 있다.)

    화가 임남훈의 첫 번째 개인전 <색과 춤을>은 화가의 친구들, 지인들, 그리고 몇몇 배우들의 초상으로 구성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화가였다는 화가 자신의 ‘허풍’을 경청하기엔 그의 화가로서의 이력은 보잘 것이 없다. 그는 40이 넘어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고 이제껏 그는 화가로서의 자신의 소명과는 무관한 일들로 생계를 꾸리거나 제자들을 양성하는 데 주력했다. 이력과 경력을 길게 채우는 관행이 직업적 근면함이나 전문가적 화려함을 증명하는 시절 그는 가난 뿐인 이력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는 스스로의 고백처럼 극빈층 출신이다. 그는 그 사실을 밝히는 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다. 가난은 그의 낙인이고 심지어 그의 경력이고 결국 그의 위엄이 되었다. 가난을 떠안은 이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그때 가난은 모든 삶의 배경이자 그림자이자 음화로서 삶을 주재하게 된다. 예술가의 가난은 말하자면 이념이고 자유이고 희망이 된다.

    박탈당한 자들의 편에 서서, 사라져가는 인간의 형상을 재현하는 데 골몰하는 결기(決起)를 붙들고, 얼-굴을 찾아 방랑하는 화가가 임남훈이다. 그는 자신을 모욕하고 배신하고 떠나간 이들을 줄곧 보아왔음에도 모욕하고 배신하고 떠나는 역할은 맡길 거부했다. 그는 부유하고 화려하고 잔인한 삶의 거죽이 벗겨지는 순간 드러나는 인간의 허약함, 위선, 거짓에 대해 증언하기도 거부했다. 대신에 그는 그 모든 악취, 폐허, 불구, 치욕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보호하는 자리에 남아 인간을 되살리고 요청하고 복원하는 임무를 화가로서의 자신의 운명으로 출현시켰다. 그것이 그에게 인간의 신성이 할당한 역할이었다.

    그의 인간들, 그의 얼굴들은 어떤 순간을 드러낸다. 그것은 부정적인 것들(의 힘)에도 불구하고 출현하는 예외적 순간이고 표정이고 영혼이다. 그는 그것을 사람들이 알아볼 얼굴에 새겼다. 그는 스케치가 끝나면 그 위에 나이프로 색을 올린다. 두 세 시간이면 그의 페인팅은 완성된다. 보통 일반적인 작업에 사용되는 것보다 세배 이상의 물감이 들어가는 작업 특성으로 인해 캔버스는 물리적 깊이를 보유하게 된다. 모델과의 닮음보다는 모델의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느낌이나 표정을 포착하는데 주력하는 화가의 캔버스는 물감의 물성과 보색성으로 인해 강렬한 표현주의적 풍경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에게 모델이 되었던 이는 자신의 물감-얼굴을 응시하면서 그것이 자신임을 알아보는데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화가와 모델의 대면은 모델과 그림의 대면으로 반복되면서 모델에게 그림을 닮을 것을 요구한다. 아니 그것이 자신의 얼-굴이었음을 납득해야 한다.

    얼굴은 사실 내가 갖고 다니는 타인이다. 얼굴은 나의 것이지만 그것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낯선 것이다. 신경과 근육 위에 얹힌 시간의 더께인 얼굴은 세계와 상황 혹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취약한 주변부적 자리이다. 그곳은 내가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이질적인 것들이 끊임없이 침범하고 넘나드는 접경지대이다. 나의 얼굴은 세계, 너에게 드러나는 나의 안이자 세계와 너의 표식이다. 거울과 사진에서 일순간 만나는 얼굴은 내가 계속 나를 낯설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결국 나의 타인임을 증명한다. 화가의 물감들 사이로 드러나는 얼굴은 모델도 간과한 자신의 일부분이자 자신의 나머지이다. 임남훈은 모델에게 ‘얼굴’을 돌려준다. 그것은 모델이 알아볼 수도 오인할 수도 부인할 수도 있을 낯섬으로 현전한다. 그것을 자신이라고 알아보는 이에 의해 얼굴은 인간화되고 이름을 얻는다.

    이름은 존재의 얼굴이거나 존재가 숨는 가면이다. 이름은 언제든 무, 익명, 집단으로 돌변할 수 있는 인간에게 책임, 사랑, 희망을 요구할 때 사용되는 구실이고 기회 혹은 가능성이다. 이름은 그저 사라져가는 존재들, 이름없는 것들, 다수에게 존재의 고유함, 소속의 권리를 부여한다. 임남훈의 개인 초상화는 그가 한 번에 한 사람씩 만나는 그의 대화의 방식, 한 사람에게 영혼을 불어넣을 한 번의 기회를 위해 마련된 종교적 의식이다. 그는 자신의 인간에게 자신의 삶의 이유를 불어넣는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회화적 형상 안으로 현실의 인간을 밀어넣음으로써 일시적으로, 순간적으로 예술을 호출한다.

    회화는 오래도록 신성의 문제를 건드려왔다. 신은 타자의 얼굴로 우리에게 불현듯 급습한다. 신은 우리가 인간이길 요구하는 이름이다. 회화는 낡은 구식의 제스쳐로 유화라는 느린 물성으로 인간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오래도록 담당해왔다. 화가는 사회와 인간의 주변부에서 사회와 인간의 미래를 호출해 사회와 인간의 침몰을 지연시킨다. 화가는 캔버스와 물감의 존재론으로 현실에서 비껴서서 현실을 수정한다.

    비평글/미학박사 양효실

    전시제목춤&색 그 열정에 대하여...

    전시기간2015.11.16(월) - 2016.01.30(토)

    참여작가 임남훈

    초대일시2015-11-16 17pm

    관람시간10:00am~18:30pm 매주 일요일 공휴일은 쉽니다.

    휴관일일요일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신시 Gallery seensee (서울 서초구 논현로5길 31-14 )

    연락처070-4619-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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