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서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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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
김선정(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
조희현(아트선재센터 전시팀장)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는 서도호가 지난 20년간 탐구해 온 시간, 공간, 기억, 움직임의 주제를 ‘스페큘레이션(speculation)’의 개념으로 재구성한 전시다. 서도호의 작업 중 잘 알려진 작업은 작가가 실제 거주했던 집이나 작업실 공간을 부드러운 재료인 천으로 만든 작업으로 장소 특정적 미술의 이동 가능성을 보여준다. 단단한 물질을 재료로 삼아 특정한 장소에 고정되는 조각들과 달리 빛이 투과되고 부드러운 성질의 천으로 만든 서도호의 집은 어디로든 손쉽게 이동해 전시장에서 펼쳐진다. 이러한 작업들이 관객들에게 서도호의 공간을 경험하게 한 것이라면, 이번 전시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에서는 작가의 작업 구상과 아이디어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서도호의 여러 프로젝트 중 물리적, 기술적 어려움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던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와 계획을 살펴볼 수 있다. 일례로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선보인 <공인들>(1998)의 경우, 그 당시엔 기술적인 문제로 작동하지 못했지만,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작가의 구상대로 움직이는 작업이 가능하게 되었다.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는 <공인들>(2024)을 비롯한 여러 공공 프로젝트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과 구상을 바탕으로 작가가 작업하기 시작할 때부터 관심을 지니고 있었던 ‘통로’와 ‘연결되는 공간’에 관한 작업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서도호가 만들려는 ‘완벽한 집’에 대한 작업을 가설, 다이어그램, 드로잉, 모형, 애니메이션, 영상, 글 등으로 다각적으로 소개한다.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는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작가가 살았던 도시들을 연결해 만드는 ‘완벽한 집’에 대한 프로젝트이다. 작가가 거주했던 도시인 서울과 뉴욕을 연결하는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2010-2012), 그리고 서울과 뉴욕에, 지금 살고 있는 장소인 런던을 연결해 세 도시의 교차점에 완벽한 집을 만드는 <다리 프로젝트>(2024) 그리고 <별똥별>(2012, 2024)으로 완벽한 집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는 작가가 살았던 장소들을 잇는 (혹은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 집, 리버풀>(2010), <연결하는 집, 런던>(2024)과 <나의 집/들, 양>(2024), <나의 집/들, 음>(2024) 등의 작업이다. 마지막으로는 공공미술에 대한 작가의 제안을 소개한다. 영상 작업인 <로빈 후드 가든, 울모어 스트리트, 런던 E14 0HG>(2018)과 <동인아파트>(2022)를 스페이스 2에서 선보인다.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는 작가의 상상에서 시작되어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을 통해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작업 중에서는 실현된 것도 있고 아직 연구 단계인 것도 있다. 서도호는 자신의 창작 활동을 ‘스페큘레이션의 과정’이라고 표현하며 정서적이고 육체적인 삶의 복합성에 접근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다.
완벽한 집
집은 서도호가 오랫동안 다루어 왔던 주제로 작가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전의 작업이 과거에 지냈던 집이라는 공간을 천으로 만들어 전시장 내에 가져오는 작업이었다면, 최근에는 앞으로 만들어질 완벽한 집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아직 완결되지 않은 프로젝트이다. “완벽한 집은 무엇이고 또 어디에 있을까?”라는 서도호의 질문에서 시작된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는 스스로에게 고향처럼 느껴지는 두 도시, 뉴욕과 서울을 바다 위로 연결하고 그 중앙에 자신의 완벽한 집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두 도시를 잇는 다리를 상상한다. 원래 집은 한 장소에 고정된 건물이지만, 서도호의 집은 천으로 만들어져 여러 전시 장소로 옮겨 다니거나 집이 날아서 다른 도시 한복판에 가서 박히는 등 자유롭게 이동한다. 이처럼 그의 생각은 드로잉으로 옮겨졌다가, 나아가 오랜 시간에 걸쳐 작품으로 실현된다.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오랜 시간을 걸쳐 작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누고 만들어 가는 작업이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미완성의 상태로 이어지며 작가가 추구하는 완벽한 집을 짓기 위한 가상의 계획을 다룬다. 2010년 뉴욕 스토어프런트 갤러리에서 선보인 이후에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더 많은 데이터와 실험을 기반으로 6개의 채널로 이루어진 영상 작업에서는 다리를 짓기 위한 드로잉과 건축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리의 정확한 중간 지점(그곳은 태평양의 어느 지점에 해당한다고 한다)에 집을 짓는 상상을 한다. 이 집은 태평양의 조류와 풍력, 자연환경의 변화 등을 견딜 수 있으며 사람이 살 수 있는 건물로 계획된다. 불가능해 보이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건축가, 생물학자, 물리학자, 이론가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실제로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바닷물의 흐름과 바람을 버틸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자 수많은 조사 연구와 실험을 통해 완벽한 건축 계획을 세운다. 비록 이것은 가상의 프로젝트이지만, 작가는 이론적으로 완벽하기 위해서 과학자나 건축가 처럼 작업에 임한다.
그 다음 단계로, 서도호는 서울과 뉴욕을 잇는 기존의 <다리 프로젝트>에 자신의 현재 거주지인 런던을 추가한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 뉴욕, 런던 세 도시를 등거리로 연결한 지점인 북극 보퍼트해 인근 축지
(Chukchi) 고원(좌표: 77°55'33"N 161°23'49"W)에 ‘완벽한 집’을 설계하는 작업이다. 이처럼 <다리 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장소로 이주하며 마주하는 소속감과 경계의 문제들, 그리고 다시 세워지는 국경의 문턱으로부터 비롯된 의문들에 반응한 결과를 다룬 작업으로 임의로 만들어진 공간 그 너머로 향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작가는 스스로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가 생각하는 완벽한 집은 불가능성에 대한 작가의 도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연구와 실험을 하지만 이 완벽한 집은 환경이나 여러 조건들을 고려했을 때 스스로 포기하는게 낫다고 작가는 선택을 한 것이다.
연결
“계속 통로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통로들은 신체적으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동되었던 저의 개인적 경험과 연결됩니다…. 과거 ‘태어난 곳의’ 문화에 대한 향수와 현재의 이주 문화 사이의 거대한 틈을 연결하는 통로와도 같습니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지나가게 되는 사이의 공간에 관심이 많던 서도호 작가는, 평소에는 쓰이지 않고 화재 시 비상구로만 활용되는 웜우드 스트리트(Wormwood Street)의 육교에 한옥을 가져다 놓는 <연결하는 집, 런던>(2018)을 만들었다. 복잡한 런던의 고층빌딩 사이의 육교에 한국 전통 가옥이 떨어져 꽂힌 형태로 만들어진 이 작업은 그가 이주하는 과정에서 느낀 개인적인 국가, 문화에 관한 기억과 감정, 나아가 런던이라는 대도시의 이민 역사를 드러낸다. 또한. 그는 유년기에 살았던 집을 그가 이주하게 된 다른 도시로 옮기며,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의 기억은 어떻게 간직되는지 그리고 우리의 경험은 어떻게 우리 스스로를 정체화하는지에 관해 질문한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연결하는 집, 런던 (1/125 스케일)>(2024)은 건축 모형이 갖는 세밀하고 정교한 특성을 살려 장소 특정적 작업의 특성을 새롭게 맥락화한다.
서도호가 전 세계를 이주하며 경험한 반향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점이 된 작품인 <다리를 놓는 집>(2010)은 영국의 산업 도시 리버풀의 산업건축을 보여주는 두 건물 사이, 작가의 어린 시절 집을 축소한 모형을 끼어 둔 작업으로, ‘문화 충돌’이라는 단순화된 개념을 미묘하게 재구성하고 대도시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공간 부족에 대한 변주를 드러낸다. 작가는 충돌한 세 건물이 기묘하게 연결된 모습을 실제 건축 모형처럼 3D 모형으로 정교하게 만든 버전인 <다리를 놓는 집: 모형 1 (1/16 스케일)>(2015)을 선보인다.
서도호는 2000년대 후반, ’한 문화의 건축물이 날아가 다른 문화의 건축물에 박힌다면 어떨까’라는 구상에서 <별똥별> 연작을 시작했고, 이 작업은 이후 여러 단계를 거쳐 변모해 간다. 2010년에 제작된 <별똥별, 충돌하는 집>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불기 시작한 바람은 회오리바람으로 바뀌었고, 이 회오리바람에 살고 있던 집이 하늘로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회오리바람에 날려 가는 집안에서 그는 다른 회오리바람에 날려 가는 또 다른 집(도로시의 집)과, 왕관을 쓴 백조 열 한 마리를 만난다. 날아가는 도중에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보게 된다. 그것들을 지난 후 그는 집이 지상에 떨어질 때를 대비하여 몇 가지 일을 하게 된다. 우선 집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무게가 나가는 필요 없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도구함, 옷가지와 금속 재킷만을 남겨 둔 다음, 이번에는 안전한 착륙을 위한 낙하산을 만든다. 회오리바람이 그치고, 집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하자 만들어 둔 낙하산을 타고 안전하게 지상에 도착한다. 이때 그의 서울 집이 그가 미국에 처음 정착했던 로드아일랜드에 있는 아파트 건물인 그의 미국 집에 박히게 된다.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문화적 충격을 시각화한 일련의 작업으로 하나의 장소가 다른 장소로 전치되고, 충돌하면서 나타난 과정을 보여준 <별똥별, 충돌하는 집>이 한국의 한옥이 미국에 도착한 이야기라면, <별똥별>(2012)은 미국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에 실제로 설치되었다.
<별똥별>은 미국의 작은 오두막이 마치 신비한 힘에 의해 들어 올려져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의 제이콥스홀 꼭대기에 ‘착륙’한 것처럼 놓여 있다. 7층 건물 옥상에 비스듬히 놓여 외팔보 형태로 뻗어 나와 있는 이 집은 우거진 정원을 가진 전형적인 미국의 오두막 형태를 띤다. 미국 가정생활을 둘러싼 문화적 담론을 반영한 대중적인 인테리어로 인해 친숙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바닥과 집의 각도가 서로 달라 현기증이 나고 불안정함을 느끼게 한다. 소속감을 찾는 우리의 모습과 집을 둘러싼 공간의 인식, 문화적 이주를 탐구하는 <별똥별>은 이번 전시에서 작은 모형으로 다시 제작되어 소개된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별똥별, 충돌하는 집>에서 보여주었던 충돌한 집 안의 모습은 스페이스 2에서 소개되는 두 영상 작품과 연결된다. <로비 후드 가든, 울모어 스트리트, 런던 E14 0HG>와 <동인아파트>은 각각 철거 직전의 런던의 로빈 후드 가든과 동인시영아파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사람이 살다가 나간 채로 철거 직전인 아파트의 모습을 다룬 장면은 거주했던 사람들이 개조한 인테리어나 장식을 통해 삶의 흔적, 기억과 시간을 짐작하게 한다. 두 영상 작업들은 작가가 광주에서 진행한 러빙(Rubbing) 프로젝트와 같이 탁본의 방법론을 활용해 공간을 기억하고자 한 의도와 같이 카메라를 통해 공간을 훑어보는 작업이다. 특정한 관점을 고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느껴지는것을 전달하고자 한다. 이것은 “공간에 대한 기억을 물질화 하는 과정이었다. 이를 통해 얼마나 투명하고 찰나에 불과한지 생각했다” 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한국, 미국, 독일, 영국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이전에 살았던 모든 주거지와 스튜디오를 하나의 건축 모형 설치물로 통합한 <나의 집/들, 양>과 <나의 집/들, 음>은 서로를 잇는 연결 공간과 출입구가 건축학적으로 정확하게 교차하도록 제작되었다. 집은 고정된 것이 아닌 우리가 지니고 다니는 것이라고 여기는 작가의 생각과 공명하는 <나의 집/들> 연작은, 마치 건물에서 숨이 모조리 빠져나가고 다시금 굳어져 버린 것 같은 상태를 연상시킨다. 이 장소들은 전시장 속 작은 크기로 구현되었기에 더 이상 실질적인 기능이 없는 블록 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건축 모형들은 서도호의 삶과 이동을 그리는 초상화로서,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지역의 양식을 혼합하여 그 정체성을 하나로 단언할 수 없는 도시 혹은 꿈의 풍경이 된다.
공공 프로젝트
앞서 다룬 <별똥별> 은 샌디에이고에 직접 가야 볼 수 있듯, 공공 미술은 특정한 장소를 기반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해당 장소에 찾아가야 볼 수 있다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이번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에서는 그의 공공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애니메이션이나 영상을 통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모든 작업은 공공 프로젝트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챕터를 통해 서도호가 생각한 공공성과 장소성의 의미 그리고 미술사 속 공공조각의 개념을 확장하는 작가의 작업 세계를 살피고자 한다.
서도호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1990년대부터 기념비가 내재하고 있는 제국주의적 특성에 의문을 가지고 새로운 기념비 모델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서도호의 대표작인 <공인들>의 경우, 기념비의 인물을 끌어내려 좌대 밑에 위치시킨다. 또 한 명의 영웅이 좌대 위에 올려지는 대신 크기가 작아진 익명의 다수를 좌대 아래에 배치한다. 좌대 아래에서 자리를 차지한 대중들은 질서 정연하게 열을 맞추어 서서 두 팔을 힘껏 위로 뻗은 채 상당한 무게를 버티고 있다. 좌대 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까? 좌대 위에 보여지는 영웅이나 리더는 사라지고 없는 상태는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1983)에서 다루는 내셔널리즘이나 만들어진 역사에 대해 다시금 재고하게 한다. 관람자의 시선을 위가 아닌 아래로 향하게 함으로써 동상대를 구성하는 무거운 돌을 함께 지탱하는, 혹은 그 무게에 저항하는 다수의 개인이자 익명의 대중에게 시선과 자리를 내어준 모습이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공인들>은 원래 만들어진 조각의 6분의 1 크기의 움직이는 버전으로 고정적이고 장소 특정적인 동상의 원래의 기능에 도전한다.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며 기념비 좌대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동적인 형태를 통해 작가가 본래 구상했던 <공인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실현되었다. <공인들>은 서도호의 또 다른 작업들 <층>(1997-2000)나 <낙하산 부대원>(2001-2003), <인과>(2009)와도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서도호가 오랜 시간 염두에 둔 반-기념비에 관한 사고를 시각화한 또 다른 작업은 <반전된 기념비-광장>이다. 일반적인 기념비와 달리 그의 작품에서는 광장의 중심에 서 있는 기념비의 인물이 자기 신체 내부로 끌어당겨져 기념비의 위아래가 반전된 형태를 만든다.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연상시키는 기념비의 수직성을 전복시키는 이 작업은 광장 아래 깊숙한 곳까지 굴을 파듯 내려가 빈 공간을 형성함으로써 공백과 삭제, 선택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인류 역사의 공허함을 드러낸다. <공인들>과 <반전된 기념비-광장>과 같이 좌대를 없애고 조각을 건축이나 환경의 일부로 경험하도록 한 작업은 앤소니 카로(Anthony Caro)나 칼 안드레(Carl Andre)의 작업과도 맥을 같이 한다.
<공인들>과 <반전된 기념비-광장>이 조각을 통해 공공미술의 개념을 다루었다면 <틈새 호텔>과 <비밀의 정원> 그리고 <미국을 위한 기념비>(2024), 이 세 작업은 일시성, 랜드마크, 장소 특수성의 개념을 탐구한다. 2012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실제로 선보인 이동식 호텔인 <틈새 호텔>은 도로, 주차장, 골목길에 조용히 나타나 도시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물들 틈새에 자리 잡았다. 인근 상점과 집들은 작품의 일시적인 이웃이 되어 호텔에 머무는 숙박객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동참했다. 이 호텔은 예술성과 기능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모호하게 하며 비엔날레에서 전형적으로 전시되는 일시적인 기념물’과는 다른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비밀의 정원>은 서도호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과 정원이 18륜 트럭의 화물칸에 실려 미국의 대륙을 횡단하여 매디슨 스퀘어 공원에 비스듬히 주차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애니메이션과 16분의 1 크기의 모형으로 구성된다. 이 작업에서 미국 차량의 전형적인 내부 모습 그대로 꾸며진 트럭의 운전석 부분은 미국으로 특징되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을 위한 기념비>는 평판 트레일러에 거대한 거울이 부착된 18륜 트럭을 제안한다. 이 기념비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도시, 시골, 인공, 자연 등 미국의 풍경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장소와 마주친다. 거울에 반사된 상 역시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정적이고 한 장소에 고정된 것으로 여겨지는 기념비의 통상적인 개념에 도전하는 이 작업에서, 기념비는 여행하고, 발견하고, 진화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 작품은 그곳이 어디든 특정 장소에 머무는 동안 일종의 거대한 광고판이 되어버리는데, 이미 존재하는 대상의 반사된 이미지, 즉 대상의 가장 직접적인 재현을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트럭에 반사되는 잠재적 공간은 관람객에게 내밀
하고 사적인 순간으로 변모하며 개개인이 가진 독특한 인식과 해석을 통해 자신만의 미국을 볼 수 있게 된다. 장소 특정적이면서도 사용자 특정적인 이 작품은 관객을 통해 폭넓은 스펙트럼의 미국적 정체성을 만들어 낸다.
<사천왕사를 위한 제안>은 한국의 고고학적 유적지에 관계 맺고자 하는 시도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사천왕사는 7세기 말, 당나라로부터 나라를 지킬 불교 제사를 지내기 위해 경주에 급히 세워졌다. 한국 밀교의 가장 초기 유적으로 알려진 이 구조물은 화려한 색채의 비단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프로젝트는 2021년 런던에서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는데, 서도호는 고대 로마의 신전인 미트라스 유적지 위에 대규모의 프로토타입을 건설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이 분해되어 드러난 건물의 골조는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기억과 주관적인 역사의 해석에 관한 작가의 탐구이자 표현 방식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엄격한 역사적 고증, 건축적 연구, 예술적 감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상상의 신전을 실제 유적지에 수행적인 형태로 건설하는 것을 상상한 작업이다.
맺는말
서도호의 사변적 사유에서 발전한 작업 중에는 <틈새 호텔>, <별똥별>, <다리 프로젝트>, 그리고 <공인들>과 같은 작업들은 현실화되었다. 따라서 이들 작업은 사변적 사유와 현실이 결합된 경우이다. 그럼 이를 사변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서도호 작업의 사변적이라는 것은 기억의 동시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억은 과거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과거이지지만, 소환함으로써 현재 우리들의 마음 속에 존재한다. 서도호의 작업에서는 기억을 비장소에서 다룸으로써 장소화 한다. 예를 들면, 다리 프로젝트에서 완벽한 집을 위한 조건으로 본인이 좋아했던 식당을 관람차로 만들어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게 만든 장면을 들 수 있다. 음식은 냄새를 통해 기억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중요한 요소이고 이 장면은 과거에 방문했던 식당들을 언제나 방문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듦으로써 기억을 현재로 언제나 소환할 수 있다. 기억은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라는 일직선상의 시간성을 부인하며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로 동시에 존재한다. 따라서 기억의 속성은 사변적이다. 기억의 이러한 속성은 홈(house와 차이가 있는) 개념과 공명한다. 또한 기억의 요소는 비장소를 장소화 하고 있다. 작가는 아무도 살지 않은 장소에 스스로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면서 공간에 관한 관계를 만들고 정체성을 구축한다.
서도호 작가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천으로 만든다고 했을 때, 좌대를 받치고 있는 군상들이 움직일거라고 했을 때, 서울과 뉴욕 그리고 런던을 잇는 ‘다리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구상들은 수년 혹은 십여 년에 걸쳐 마침내 실현되고 있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떤 작업이 나올지 항상 궁금하게 된다. 이번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되는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은 이런 작가의 아이디어와 생각을 볼 수 있다. 예술가의 상상과 그것의 구현을 위한 여러 과정을 돌아보는 전시이기에 마치 건축 전시처럼 보일 수도 있고 또 일반적인 미술 전시와는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산업화 이후로 우린 더 이상 만들어지는 과정보다는 결과에만 집중하고, 완성품만을 추구한다. 하지만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은 마치 서도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과도 같이 그가 상상한 세계가 구축되어 가는 과정을 보게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가의 상상력과 과정을 들여다보며 앞으로의 미래를 상상해 보았으면 한다.
스크리닝
<연결하는 집, 런던>, 2024, 29분 13초
-일시: 8월 17일, 9월 7일, 10월 12일 토요일 오후 4시
-장소: 아트선재센터 아트홀
<별똥별>, 2012, 49분 13초
-일시: 8월 24일, 9월 28일, 10월 19일 토요일 오후 4시
-장소: 아트선재센터 아트홀
<서도호의 움직이는 집들>, 2023, 52분 48초
-일시: 8월 31일, 10월 5일, 11월 2일 토요일 오후 4시
-장소: 아트선재센터 아트홀
강연
<서도호에 대한 미술사적 접근>
-일시: 9월 28일 토요일 오후 5시
-장소: 아트선재센터 아트홀
-강연자: 우정아(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1962년 서울출생
박현순: 말장난 같겠지만
갤러리 소소
2024.11.09 ~ 2024.11.22
각자의 기호 Marks of Identity
갤러리 진선
2024.11.01 ~ 2024.11.22
불안 해방 일지 Anxieties, when Shared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 C
2024.08.07 ~ 2024.11.23
STRA-OUT 4회: 권혜수, 김지수, 키시앤바질
씨스퀘어
2024.11.04 ~ 2024.11.23
장희춘: Happiness
장은선갤러리
2024.11.13 ~ 2024.11.23
Portrait of a Collection: Selected Works from the Pinault Collection
송은
2024.09.04 ~ 2024.11.23
폴린 부드리/레나테 로렌츠: 초상
리움미술관
2024.07.18 ~ 2024.11.24
예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관문
서울대학교미술관
2024.09.12 ~ 2024.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