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1969년 국제조형예술회의(화란 · 암스텔담) 한국대표 참가
1967년 구상전 창립
1963년 한국 미협 부이사장
1963년 홍익대 미술학부 대학원 위원
1962년 신상회 창립
1959년~1965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및 학과장
1957년 창작미협 창립
1955년~1970년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
1955년~1959년 서라벌예술대학교 미술과 교수
1955년 문교부 장학위원
1953년~1956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전임강사
1953년 대한미술협회 회원
1952년~1953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과 강사
1950년 50년 미협 창립
1949년 문교부 국정교과서 편집위원
수상경력
1940년 동경 문전 입선
1936년 일본 문부성 주최전 입선
1935년 제6회 전 조선 남녀학생 작품전 최고상
1932년 제3회 전 조선남녀학생 작품전 3등상
1930년 소학생 작품전 특선 조선일보 주최
1929년 제8-11회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 입선
1926년 동경 껄리버대회(어린이 예능경연) 입상
단체전
2022 ‘에이도스(eidos)’를 찾아서: 한국 추상화가 7인, 갤러리 학고재, 서울
추가정보
1916∼1970. 서양화가. 호는 석정(石鼎). 서울시 종로구 운니동에서 출생하였다.
1952년 이래 이화여자대학교와서라벌예술대학에 출강하였으며, 1953∼1966년까지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고 1929년 국민학교 6학년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이래 연 6회 입선함으로써 화단의 주목을 끌었으며, 1936년 일본의 문부성전람회에 입선하여 각광을 받았다.
8·15 광복 이후 기조전(其潮展)·창작미협(創作美協)·신상회(新象會)·구상회(具象會) 등의 창립에 가담하여 미술운동의 리더로서 활약하였으며,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는 1954년 이래 추천작가·초대작가·심사위원등을 지내며 활동하였다.
초기에는 인상파적 사실주의의 회화경향을 보였으나, 1950년대 김환기(金煥基)·유영국(劉永國)·김병기(金秉麒)·박고석(朴古石) 등과 교유하면서 강렬한 색채, 거친 필치, 대담한 생략 등을 특징으로 하는 야수파적이며 표현주의적인 경향으로 바뀌었다.
1960년대에는 주로 나무와 수풀, 산과 새·달 등의 소재에 한국적인 설화성을 가미한 주제를 즐겨 다루었으며, 화면도 중후한 마티에르와 더불어 양식화된 구상세계를 보였다.
작품활동 이외에도 미술교육가와 미술평론가로서 당시의 화단을 주도하면서, 특히 구상계열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대표작으로 〈도자기와 어항〉(1955)·〈고궁에서〉(1958), 그리고 〈나무〉(1962년) 등이 있다.
리더십과 지사(志士)적인 문제의식을 지닌 화가였다. 동시에 미술비평가, 학자로서 활동하던 이봉상은 시대에 사실적인 경향에서 60년대 중후반 점차 앵포르멜의 경향으로 추상화되는 변화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