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Lee Jong-Sep)

1916년 평안남도 평원 출생 - 1956년 사망

서울에서 활동

학력

년 도쿄문화학원 미술 전공 기타
년 오산고등보통학교 졸업

경력

1952년 국방부 정훈국 종군화가단 단원
1950년 원산 신미술가협회 회장
1950년 원산 신미술가협회 설립
1946년 원산사범학교 미술교사
1946년 북조선 미술동맹 회원
1942년 미술창작 작가협회 회원
1939년 자유미술협회 회원

수상경력

1978년 제13회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 총무처
1943년 제7회 미술창작가협회전 태양상 일본 동경
1940년 제4회 미술창작협회전상 일본 동경
1938년 자유미술가협회공모전 협회상

단체전

2017, 카페소사이어티, 서울미술관, 서울
2012, 광주시립미술관 개관20주년특별전I : 두 개의 모더니즘,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추가정보

한국의 서양화가. 작풍(作風)은 포비슴(야수파)의 영향을 받았으며 향토적이며 개성적인 것으로서 한국 서구근대화의 화풍을 도입하는 데 공헌했다. 담뱃갑 은박지에 송곳으로 긁어서 그린 선화(線畵)는 표현의 새로운 영역의 탐구로 평가된다. 작품으로 《소》(뉴욕현대미술관 소장), 《흰 소》(홍익대학교 소장) 등이 있다.

호 대향(大鄕). 평남 평원(平原) 출생. 오산고보(五山高普) 졸업. 일본 도쿄문화학원[東京文化學院] 미술과 재학 중이던 1937년 일본의 전위적 미술단체의 자유미협전(自由美協展:제7회)에 출품하여 태양상(太陽賞)을 받고, 1939년 자유미술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1945년 귀국, 원산(元山)에서 일본 여자 이남덕(李南德:본명 山本方子)과 결혼하고 원산사범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6·25전쟁 때 월남하여 종군화가 단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신사실파(新寫實派) 동인으로 참여했다. 부산·제주·통영 등지를 전전하며 재료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를 화폭 대신 쓰기도 했다.

1952년 부인이 생활고로 두 아들과 함께 도일(渡日)하자, 부두노동을 하다가 정부의 환도(還都)와 함께 상경하여 1955년 미도파(美都波)화랑에서 단 한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후 일본에 보낸 처자에 대한 그리움과, 생활고가 겹쳐 정신분열병증세를 나타내기 시작, 1956년 적십자병원에서 간염으로 죽었다. 작풍(作風)은 포비슴(야수파)의 영향을 받았으며 향토적이며 개성적인 것으로서 한국 서구근대화의 화풍을 도입하는 데 공헌했다. 담뱃갑 은박지에 송곳으로 긁어서 그린 선화(線畵)는 표현의 새로운 영역의 탐구로 평가된다. 작품으로 《소》(뉴욕현대미술관 소장), 《흰 소》(홍익대학교 소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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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사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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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에서

    종이에 청먹, 채색, 9 x 14cm, 1941,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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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사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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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사람

    종이에 연필, 18.2 x 28.0cm, 1945년경,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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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소사이어티

    서울미술관

    2017.03.28 ~ 2017.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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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 백년의 신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16.06.03 ~ 201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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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전 《이중섭은 죽었다》

    서울미술관

    2016.03.16 ~ 201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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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화를 만나다: 한국근현대회화 100선 (Masterpieces of Modern Korean Painting)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13.10.29 ~ 2014.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