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

1953년00월00일 독일 바트 라이셴할 출생

서울에서 활동

학력

영국왕립미술학교 자동차디자인과 전공 석사
뮌헨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전공 학사

경력

2013.01~ 기아자동차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 사장
2006.08 기아자동차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 부사장
2002 폭스바겐 디자인 총괄 책임자
1994 아우디 디자인 총괄 책임자
1993 폭스바겐 그룹
1991 미국 아우디 디자인 스튜디오
1980 아우디, 폭스바겐 그룹 근무 (외장, 내장, 컨셉)

수상경력

2009년 쏘울, 벤가, K5, 스포티지 레드닷 디자인상 수상
2009년 제 10회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디자인경영 부문 대통령표창
2007년 영국 왕립예술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 수여
2003년 독일연방 디자인대상
2000년 시카고 굿디자인상

추가정보

피터 슈라이어: 인사이드 아웃
피터 제크, 레드 닷 회장

미술과 디자인

언젠가 독일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쿠르트 바이데만Kurt Weidemann은 미술과 디자인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미술은 오리지널을, 디자인은 시리즈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미술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만, 디자인이란 합목적적인 작업이다. 디자인은 객관성이 상당량 축적되어야 하지만 미술은 주관적이다.”1 바이데만의 해석은 인간의 창의성 스펙트럼의 양 끝에서 대립하는 미술과 디자인의 좌표를 보여준다. 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분야가 상당한 유사성을 공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술과 디자인 둘 다 창의성의 특정한 형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하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창의적인 행위 그 자체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삶과 현실을 인지하고 형체화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울름조형대학Ulmer Hochschule für Gestaltung이 창립되었던 1950,60년대는 독일에서 디자인과 미술의 관계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루어지던 시점이었다. 스위스 출신 작가이자 당시 바우하우스 학생이었던 막스 빌Max Bill은 미술이 창의성의 핵심이라는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이 견해는 미술을 다른 모든 창의적인 활동보다 월등한 영역이라 간주하고 모든 심미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에 영감을 주는 원동력이라 여겼다. 이는 곧 바우하우스Bauhaus의 교육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며 동시에 상당한 비판과 논쟁거리의 원인이 된다. 이에 대한 반대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오틀 아이허Otl Aicher는 막스 빌의 보수적인 견해가 디자인의 성장에 위협적이며, 모든 것은 디자인해야 할 오브제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서술한 바 있다. “위험요소는, 디자인이 그저 응용미술이 되어버리거나 해결책을 미술에서 찾으려는데 있다.”2 디자인의 소관과 범위는 미술의 영역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는 아이허의 시각은 오늘날까지 독일의 디자인 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는 적어도 독일 제품이 국제적인 성공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독일의 디자인이 미술에서 해결책을 끌어내는 이탈리아의 디자인과 차별화 될 수 있는 결정적인 차이점을 제공했다.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는 줄곧 미술과 디자인의 관계와 중요성에 대한 이념논쟁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두 분야를 동시에, 그러나 개별적으로 접근하였으며 그 사이를 자연스럽고 쉽게 넘나들었다. 이 과정에서 슈라이어는 학문적인 지식과 이념의 차이에 연연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의 조부(祖父)의 비상함을 물려받아 지극히 개인적인 길을 만들어 왔다. “멋진 할아버지와 그의 근사한 수채화와 방대한 양의 스케치 작업들”을 그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추억한다. 슈라이어는 어린 나이부터 틈이 날 때 마다 할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모형을 구상하고 실물을 직접 디자인 및 제작하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할아버지는 주로 그의 생일선물로 모형 비행기를 손수 만들어 주곤 했는데, 한 번은 바퀴가 달린 동물원이 이를 대신 하였다. 어린 슈라이어는 이에 사로잡혀 드로잉을 그렸고, 그의 어머니가 이 스케치 위에 날짜 “9/8/1957”와 “동물원에서 온 그리고 반드시 동물원에 남아있어야 할 상상물” 이라고 적어놓은 글귀가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할아버지에게 바치는 오마주이자 소중한 유년기에 대한 추억은 슈라이어의 다른 작업에도 지속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슈라이어의 미술과 디자인은 유년기부터 자연스럽고도 개인적인 방식으로 자리매김되었다. 그의 조부는 자신의 직업에서 비롯된 주제들을 수채화와 스케치로 그려 내었으며, 그의 작업실은 예술 작업뿐만이 아닌 실제 사물을 제작하기 위해 쓰여지기도 했다. 이 자연스러운 간접경험을 통해 슈라이어는 삶과 현실을 상상력이 동원된 창의적인 방식으로 담아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슈라이어 본인도 경험과 감수성을 예술적인 작업을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터득하였다. 실제로 그의 작업 하나하나는 수필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개인적인 일기와도 같이 그의 삶을 거쳐간 경험, 배움, 감성, 그리고 중요한 순간들을 투영한 회화, 드로잉, 오브제가 방대한 양의 결과물로 형성되었다.

슈라이어의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인 고백이자 회고록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그 깊은 의미는 우리에게 생소하다. 하지만 주제의 핵심에 다가가지 않고도 작품에서 느껴지는 그의 개인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깊숙이 파헤쳐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들을 겉으로 끄집어 내어 보여주는 수수께끼 같은 접근방식은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이미지들 속에 내포된 비밀을 풀어 보도록 유도한다. 간혹 이 시도의 과정에서 현실의 파편들을 찾아낼 수는 있다 하더라도 이 미궁의 전체 혹은 그 일부의 실마리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보는 이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사고하게 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작업들과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슈라이어의 작업과 연상하게 되는 교차로를 형성하게 되 는 것이다. 따라서 슈라이어의 이미지들의 영향력은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 어떤 모티브와 요소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다 하더라도 드로잉과 회화작업의 실질적인 본질은 추상적으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피터 슈라이어의 예술적인 자기표현의 방식은 그가 디자인 솔루션을 제시하는 방식과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슈라이어는 이렇게 말한다. “디자인에서는 미래와 비전에 중점을 둔다. 반면, 그림을 그릴 때에는 과거와 현재의 감정과 경험을 표현한다. 마치 나의 내면을 표면으로 드러내는 일기처럼 말이다.”

현실의 파편들

피터 슈라이어는 일상의 삶에서 착안한 요소들을 그의 예술작업에 접목시킨다. 그의 콜라주 작업에 사용된 오브제들이 아무리 작고 사소해 보일지라도 그에게 매우 의미 있는 것들의 구성이다. 발견된 오브제들은 회화작업의 창의적인 과정에 영감을 주고 자극하는 무작위적인 파편 역할을 한다. 이러한 테크닉은 이전 다다Dada와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이들은 “발견된 오브제”를 불어로 objet trouvé 라 일컬은 바 있다. 다다이스트들이 관습적인 예술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발견된 오브제를 작품에 인용하였다면, 초현실주의 작가들에게 그것은 거의 페티쉬적인 요소로 쓰여지게 된다. 실제로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이 “발견된 오브제”를 발견하기 위해 벼룩시장 혹은 길거리 상점을 자주 방문하였다고 한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찾는 것이 아닌 발견하는 것”이라 언급했듯, 그들은 구체적인 그 무엇을 찾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발견과 그 발견을 통한 의미의 획득에 주목하였다. “발견된 오브제”는 자유로운 연상을 가능케 하는 요소로 작용했던 것이다. 이렇게 그 시대의 수많은 회화 작품과 콜라주 그리고 문학 작품이 탄생하였다.

아마 소년들에게는 발견된 물건을 통한 자유로운 연상이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다. 이미 바지 호주머니 안이나 보물상자에 주어온 물건들이 가득할 터이고 이것들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 적이 있었을 테니.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돌, 천 쪼가리, 나사와 못 같은 것들이 마법 같은 역할을 했던 유년기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피터 슈라이어 역시 그의 인생에서 수많은 “발견된 오브제”를 수집해왔다. 예를 들어 빈티지 비행기에서 가져온 날개부분이 영감을 주어 탄생한 회화작품만 봐도 그렇다.
슈라이어가 자란 곳은 작은 공항 근교였다. 그와 그의 또 다른 “발견된 오브제”에 관한 이야기는 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펜플뤼게Alpenflüge (“알프스 방향으로”라는 의미-역자의 말)라고 써있는 표지판이 그 시절 동네의 한 나무에 걸려있었는데, 이 단어는 그의 회화작품에 초현실적인 요소로 등장한다. 작품의 다른 어느 부분에서도 알펜플뤼게가 뜻하는 바를 단정 지을 수 있는 단서가 제공되지 않는다. 단지 어렴풋이 보이는 비행기의 형체가 그림의 상단을 차지하고 그 하단에 정체불명의 세 인물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세 인물의 얼굴은 보이지 않으며 모자를 눌러쓰고 코트를 입고 있다. 마치 두 남자와 한 여자의 형상을 띠는 듯하다. 인물들이 매고 있는 넥타이에만 색이 있고 두 명은 어두운 파란 색으로 표현되어있으며 첫 번째 인물은 파란색과 밝은 빨간색이 섞인 넥타이를 매고 있다. 이렇게 인물의 형태를 식별해 내기는 쉽지만 전체적인 그림은 몽환적이고 비사실적이다. 등장인물이 4명이 아닌 3명이지만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연상케 되는 이미지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관련성이 이내 사라지면 남는 것은 불확실성과 그림에서 묻어나는 기묘한 분위기이다. 알펜플뤼게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수수께끼의 등장인물들은 그림의 전체적인 맥락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 정체불명의 3인은 슈라이어의 다른 작품에도 등장한다. 이번에는 셋 모두 남자임을 작품의 제목 <THREE MEN>이 알려준다. 이 세 남자는 거대한 비행기 기체 밑을 걷고 있으며 유니폼을 착용한 인부들이 무사 출발을 위한 준비과정을 마치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마치 연속되는 꿈의 한 일부를 표현한 듯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흐릿하고 불명료하다. 이 세 사람은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인 것일까? 상황은 자연스럽게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소송The Trial>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이외에도 슈라이어의 딸인 로베르타Roberta가 두세 살 무렵 타자기를 두들기며 나열해 낸 글자들은 훗날 슈라이어의 다른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 등 무엇이든 상상력을 자극하는 물체는 “발견된 오브제”의 자격이 주어진다. 냅킨에 남은 음식물, 지나가는 자동차에 깔려버린 개구리, 스켈레톤 경주에 참가한 슈라이어가 등에 달았던 번호 등 모두 슈라이어의 작품에서 적절히 인용되었다.

슈라이어의 등 번호는 그의 할아버지가 장난감 레고블럭과 카레라 자동차 트랙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었던 나무상자에 함께 보관되었으며, 이 상자는 슈라이어에게 또다른 “발견된 오브제”의 역할을 한다. 슈라이어는 이 상자를 인용한 작품을 <TOOL BOX>라 부른다. 이는 <The Large Glass>라는 작품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을 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에게 바치는 오마주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직접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는 이 “발견된 오브제”는 그의 회화작품의 주제로 재등장하여 세세한 부분까지 집중 조명을 받게 된다.

이렇듯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는 피터 슈라이어의 예술적 성장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다다이즘을 접하고 스스로 다다이스트가 되는 것이 사명이라 여겼었다. 이 야망은 그의 학업부진으로 결국 포기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 이후 그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의 작업을 접하고 깊이 매료된 나머지 달리의 화풍을 따라 그리며 연습하였다. 그러면서 의도치 않게 달리의 화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품을 구사하게 되었으며 그 무렵 즈음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다.

음악과 색채

록과 팝문화의 전성기였던 1960~70년대는 음악이 젊은이들에게 이례에 없는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시기였다. 청소년들 또한 이런 전세계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피터 슈라이어 역시 이 무렵 음악에 대한 열정을 발견한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였으며, 프리재즈에 관심을 갖게 됨으로써 또 한번 남들이 쉽게 눈여겨보지 않는 부류에 매료되고 만다. 대부분의 그의 동년배들이 비틀즈the Beatles, 롤링스톤즈Rolling Stones나 비치보이스the Beach Boys에 열광하던 시절 그는 비주류의 음악 장르들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슈라이어는 특히 틀에 박히지 않은 음악적 방식을 추구했던 프랭크 자파Frank Zappa에게 크게 매력을 느꼈다. 자파 노래의 가사는 사회 풍자적이며 비판적인 성격이 강했으나 음악은 자유롭고 과감했다. 자파의 범상치 않은 무대매너는 다다이즘을 연상시켰고 그의 음악은 피터 슈라이어의 흥미를 끌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자파 외에 슈라이어의 관심을 끈 또 다른 위대한 음악가는 바로 재즈계의 새로운 신화를 작성한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였다. 데이비스는 특정한 스타일을 추구한다기보다 다양한 방향으로의 실험적인 시도를 지속하며 폭 넓은 레퍼토리를 완성했던 뮤지션으로 슈라이어에게는 그의 음악과 인품 모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실물 크기보다도 큰 초상화인 <THE MAN WITH THE HORN>3은 슈라이어가 데이비스에게 바치는 오마주와도 같다. 100×180cm 크기의 판지에 아크릴릭 물감으로 완성한 이 작품은 강렬한 감성적인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 따뜻하면서도 어두운 푸른빛이 신비롭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작품은 화가 피터 슈라이어가 음악가 마일즈 데이비스에게 느낀 경외심이 잘 드러난다 할 수 있겠다.

그 이후로 여러 차례에 걸쳐 <MILES AHEAD>라는 동일한 작품명으로 작업된 시리즈의 작품들은 마일즈 데이비스의 다양한 음악적 방향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된 것으로 보인다. 마치 데이비스가 시도했던 프리재즈의 다양한 변주곡을 시각화하고자 한 시도와도 같다. 또한 작품에는 거장인 데이비스에게 바치는 매우 직접적인 방식의 오마주로써 “Miles Ahead”라는 문구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슈라이어의 마일즈 데이비스 작업들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그 작업들이 데이비스의 음악을 직접 들으며 그려진 것이라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데이비스의 초상화에서 색의 표현이 더 중요시되어야 할 곳은 압도적인 어두운 청색이 사용되었다. 이는 특히 <BLUES>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이 작품에서 검푸른빛은 거의 무(無)의 암흑과도 같은 검은색으로 변모되어 몽환적이고 환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두운 남색의 아우디 스포츠가 어둠 속에서 돌진해 나오는 형상을 그린 <ROSEMEYER>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구현되었다. <VIECHER IM ZOO>도 비슷한 색조 구성을 띤다. 이렇듯 슈라이어의 작업에서 파란색은 음악의 블루스Blues와 연관 지어 볼 수 있으며 그 깊고 풍부한 감수성의 표현과 맞닿아 있다.

슈라이어의 회화에서 청색 외에 중요하게 부각되는 색채는 붉은색이다. 붉은색은 주로 빈티지 비행기를 표현할 때 사용되었는데, 비행기의 빛나는 붉은 색조가 어두운 밤하늘을 장식하며 역동적이고도 위험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때때로 이 작업들은 “붉은 남작Red Baron”이라 불리었던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Manfred von Richthofen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독일공군의 전설적인 영웅. 당시 빨간 전투기를 몰았던 것으로 알려져 이러한 별명을 얻음-역자의 말)이 활동하던 시절의 공중 전투를 방불케 한다. 분위기에 따라 비행기가 익숙한 파란색으로 표현된 경우도 있다. <N52555 SEABIRD>에서는 비행기가 마치 심야의 하늘을 돌진하는 듯한 그림자를 연상 시킨다. 아마 조종사들은 이런 식으로 감수성에 젖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이것은 일반인이 결코 쉽게 접할 수 없는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꿈의 비행

피터 슈라이어의 인생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비행기이다. 그의 관심은 어렸을 적부터 시작되었으며 비행에 대한 꿈은 할아버지의 모형 비행기만으로 충족 되어질 수 없었다. 그의 열정은 비행의 모험을 몸소 실천하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찌감치 빈티지 비행기로 비행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맥락에서 비행기가 그의 미술 작품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은 놀랍지도 않다.

슈라이어의 비행에 대한 경험은 울리히 람멜Ulrich (Uli) Lammel과의 우정과도 떼어 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비행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동료 디자이너로서도 수 년을 함께 해오며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들은 함께 많은 프로젝트들을 진행했고 잊을 수 없는 비행 경험을 함께 나누며 형제 같은 우애를 나누었다고 오늘날 슈라이어는 추억한다. 안타깝게도 슈라이어보다 2살 어렸던 울리히 람멜은 53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슈라이어가 람멜에게 바치는 초상화는 친구에 대한 기억들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초상화 속의 푸른 색조는 다른 작품에서 그가 주로 사용했던 파란색보다 훨씬 가볍고 활기차다. 두 명의 조종사를 표현한 다른 회화작품에서도 람멜의 초상화와 거의 동일한 푸른색이 사용되었다. 이 두 작품은 마치 이면화diptych처럼 하나는 푸른빛으로 다른 하나는 검은빛을 사용하였다. 두 초상에 등장하는 가죽 헬멧과 산소 마스크를 쓴 조종사를 보면 인물의 얼굴을 식별할 수는 없으나 색감을 제외하면 두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을 띈다. 두 작품은 동일한 인물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작품의 제목 <2 PILOTS(두 명의 조종사)>이 이 추측을 부정해준다.

두 작품이 주는 첫인상은 다소 불편하다. 비행용 고글과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두 조종사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듯 매우 단절되어 보인다. 하지만 두 인물을 상세히 관찰할수록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마치 그들이 산소 마스크를 통해 호흡하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듯 하며 얼굴을 가리고 있는 조종사 고글의 이면에는 어떠한 인물이 숨겨져 있을지 상상하게 해준다. 이 작품들은 거리감과 흥미를 동시에 이끌어내며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슈라이어의 <NO GUTS NO GLORY>시리즈는 각기 다른 역사적인 상황에 처한 미국 공군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공군전투기들이 군사 대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 근거리에서 포착된 상세한 세부묘사, 지상에 대기하고 있는 모습, 혹은 공중전투를 하고 있는 모습 등 다양한 이미지를 포착한 작품으로 모두 대담한 상상의 결과를 이미지화 한 것이며, 용기와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상황들을 증언한다. 비행에 대한 순수한 향락은 공중전투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그 극에 다다른다.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 죽음을 맞이할 수 없듯이, 이 그림들 속에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비행의 즐거움과 순수한 열정만이 작품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Flying was still fun>이라는 시리즈 작업에서 이 즐거움은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표현되어 있다.

자동기술법

슈라이어는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초청을 받아 설치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전시장내 가로 세로 각 2m의 공간이 주어졌는데 그의 작업에 영감을 준 것은 다름아닌 조선시대(1392-1897) 정원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소쇄원이었다. 담양에 위치한 소쇄원은 대나무 숲 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정원내의 정자는 숲에 둘러싸여 여름철 자연과 호흡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슈라이어는 이곳에서 우연히 나인 멘스 모리스Nine Men’s Morris (유럽에서 자주 하는 보드게임의 일종으로 그 기원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역자의 말)의 도판이 마루에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한국인 지인들에게 이 게임이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유럽에서 이 게임은 체스가 그 권위를 빼앗기 전인 12세기와 18세기 사이에 가장 인기가 많았던 보드게임이었다. 놀랍게도 한국인들에게 이 게임은 생소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이 한옥 건물의 마루에 이러한 문양을 새겨 놓았던 것이다.

피터 슈라이어에게 이 발견은 마치 동양과 유럽의 상이한 삶의 방식과 문화를 연결하는 고리를 대변하는 “발견된 오브제”를 마주한 것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 나인 멘스 모리스의 도판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한옥 건물을 지을 때 지상에서 기단을 50센치 정도 올리고 그 위에 건축물을 쌓듯이, 슈라이어는 그에게 주어진 2×2m의 전시장 공간의 바닥에 목재 마루를 올려 쌓았다. 마루 주변을 에워싼 쇠 파이프들은 마루에 드릴로 고정이 되어 건축물의 벽과 기초가 되도록 설치 되었으며 마치 대나무 줄기를 연상시키게 하였다. 슈라이어는 이 방의 한 가운데에 나인 멘스 모리스 보드 게임을 올려놓고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몇 가지 간단한 요소들을 통해 명상과 사색의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슈라이어는 이 설치작업에서 멈추지 않고 소쇄원의 정자를 처음 담았던 본인의 스케치를 토대로 다양한 그래픽 작업을 시도했고 이것들을 설치작업 뒤의 벽에 두 줄로 나열하여 함께 보여주었다.

선보여졌던 그래픽 작업은 모두 즉흥적인 해프닝의 형식으로 하룻밤 안에 완성되었다. 이는 작가의 상상력이 아무런 제약 없이 풀어져 나올 수 있도록 한 것이며 그로 인해 그의 드로잉 작업은 자유로운 연상의 결과물이 된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이러한 창작의 과정을 자동기술법écriture automatique이라 일컬었다. 자동기술법은 내면의 세계, 즉 감정, 인상, 아이디어 등을 통제 없이 무의식적이고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즉흥성과 통제 없는 흐름을 중요시 여기는 이 방식은 명상적 고찰의 방식과 완연히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 두 상이한 개념을 연결하는 고리는 완벽한 집중이다. 완벽한 몰입을 통해야만 목표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명상과 즉흥, 표면의 평온함과 내면의 분출이라는 독특한 조합으로 완성한 설치작업 <REST BOX>를 통해 슈라이어는 이 완벽한 집중을 이루어 내었다.

극한을 향한 질주

피터 슈라이어의 삶, 일, 그리고 미술작업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공통적인 양상이 있다면 그것은 기존의 한계와 범주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도전정신일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슈라이어는 비행조종에 만족하지 않고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여 결국 그 무한한 자유로움을 경험했다. 이렇게 그는 극단적인 스포츠가 가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두려움 없이 모험을 자청한다. 슈라이어가 즐기는 스포츠인 스켈레톤 경기 역시 머리를 정면으로 향한 채 엎드린 자세로 트랙을 시속 100km이상으로 내려가는 아찔한 레이스이다. 실제로 그는 독일에서 열린 스켈레톤 레이스 챔피언십에서 6위를 거머쥐었으며 이것으로 세계 챔피언십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디자이너로서의 피터 슈라이어는 오로지 자동차에 매진하며 아우디Audi, 폭스바겐VW, 그리고 기아Kia 자동차의 수석 디자이너를 역임하는 등 자신의 분야를 석권하였다. 그는 아우디 TT 모델을 통해 이전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형태의 스포츠카를 디자인하여 완벽한 혁신을 이루어 내었다. 이 모델은 출시 초기부터 대단히 성공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이후 슈라이어는 모델 A2와 A6를 발표하면서 자동차 디자인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다. 기아자동차 수석 디자이너로 취임한 후에는 단기간 내에 브랜드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위치를 재정비 하는 데에 성공한다. 기아 옵티마의 이례적인 성공은 슈라이어가 기존의 틀을 깨는 사고방식을 도용하여 성공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예술가로서 피터 슈라이어의 작업을 살펴보면 지각과 감성을 충실히 구현한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꿈의 해석Interpretation of Dreams>에서 꿈을 통해 정신분석을 접근했듯, 피터 슈라이어도 자신의 회화, 드로잉, 조각 작품을 통해 자기분석을 시도하는 듯하다. 그의 작품 하나 하나는 내면화된 그의 모험, 경험, 감성을 자기 증명하듯 보여주는 증거물인 것이다. 따라서 극한을 향한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그의 삶에서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과정은 그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부분이 된다.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그의 열망을 때로는 더 구체적으로, 때로는 자신만의 언어로 암호화하여 표현한다. 그의 내면의 세계에서 실재의 작업으로 옮겨져 가는 과정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초현실”이라 명명했던 하이퍼 리얼리티의 한 종류인 것이다.

슈라이어의 작품들 중 어떤 것들은 그 내용이 매우 분명하고 이해하기 쉽다. 그의 지인인 울리히 람멜의 자화상이 바로 그 예에 속한다. 하지만 이 작품도 실상을 그대로 복제하듯 그려낸 것이 아니며 그렇게 간주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이 그림의 내용을 알아보고 우리 식대로 쉽게 해석하려 하겠지만, 사실 이 작품도 작가의 내면에서 비롯됨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치 우리가 쉽게 이해하고 이치에 맞다 하더라도 여기는 그런 종류의 꿈들 조차 여전히 꿈의 일부일 뿐이며 그것을 현실과 혼돈 시켜서는 안되듯이 말이다.

한편 슈라이어의 어떤 회화작품들은 비록 그 속의 개별적인 요소들은 분명히 드러난다 할지라도 현실적인 것과 거리가 먼 경우가 있다. 이해는 가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끌어낸 방식에 놀라곤 한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그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보는 이가 그 경험을 하되 작가가 어떤 이유로 특정한 표현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확신성은 주지 않는다. 그림 속의 많은 부분들은 명확하게 표현되어있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 부분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어떤 회화작품은 보는 이에게 일관성이 없고 애매모호하며 무의미하게 보여진다. 슈라이어는 그러한 몇몇 작품에 <NO TITLE>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마치 그 자신 조차도 그 작업들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인지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이 작업들을 통해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의문 속에 남겨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 역시 눈을 사로잡는 심미적인 요소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개인적인 연관성을 끌어내도록 유도한다.

슈라이어는 미술 작업을 통해 내면화된 모험, 경험, 그리고 감정을 끊임없이 분출해 냄으로써 의심의 여지없이 성공적인 디자이너라 할 수 있다. 그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의식하고 그것을 그의 삶과 창의적인 프로세스에 도용한다. 그럼으로써 디자인에 필수적인 것들에 집중할 수 있는 내면의 자유와 자신감을 얻는다.
슈라이어는 결코 미술과 디자인을 혼돈하거나 그 둘을 섞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술은 스스로를 더 명확한 관점에서 돌아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는 디자이너로서 자신을 만족시키는 디자인에 치중하기보다 잘 만들어진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데에 중요하게 기여한다. 이렇게 극한의 두 영역을 다루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에 대해 슈라이어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마치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세계에서 공존하는 느낌이다.”


1 Peter Zec, Designing Success. Strategies, Concept, Processes. Essen, Germany, 1999; p.14
2 Otl Aicher, Die Welt als Entwurf. Berlin, Germany, 1991; p. 89
3 1981년 발매된 마일즈 데이비스의 앨범 타이틀과도 동일하다.
이 글에 인용된 피터 슈라이어의 말은 2012년 7월 10일자 이메일 교신에서 발췌되었다.
Prof. Dr. Peter Zec Essen, July 2012.


Prof. Dr. Peter Zec
President & CEO red dot GmbH & CoKG
President & CEO Design Zentrum Nordrhein Westfalen
Senator International Council of Societies of Industrial Design Montreal

Professor for Business Communication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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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22 ~ 2012.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