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 풀잎의 사유
2012.03.08 ▶ 2012.04.27
2012.03.08 ▶ 2012.04.27
주명덕
제주1 1990
하상림
Untitled-W1013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227.3x181.8cm, 2010
하상림
Untitled-GO1117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80x160cm, 2011
주명덕
제주1 1997
하상림
Untitled-R1132 Acrylic on Canvas, 130x130cm, 2011
하상림
Untitled-V1131 Acrylic on Canvas, 130x130cm, 2011
주명덕
제주2 1997
사소함의 미학
'사소하다'라는 말은 우리의 일상에서 크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는 작고, 하찮은 일들을 일컫는다. 지금까지 대체로 자질구레한 일에 크게 신경 쓰는 것은 속 좁은 사람 혹은 한량의 일로 치부하는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이는 우리에게 최근까지 사회문화적으로 우선 극복하고, 헤쳐나가야 할 급박한 일들이 많았던 탓이 크다. 예술 역시 현실에의 참여든, 비참여든 그 입장에 관계 없이 큰 담론을 다루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그 때는 그것이 당위적인 요구로 받아들여 졌고, 거기에 걸 맞는 유의미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예술은 보다 엄숙한 자세로 진지한 권위와 무게를 견지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한국현대미술은 '비장함의 미학'에 그 뿌리를 두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강물이 늘 한결 같은 속도로 흐를 수 없듯이 삶의 조건 역시 늘 다르게 전개되며, 이로써 매 시기마다 다른 시대적 요구를 낳는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시대적 요구란, 오로지 물리적 욕망을 좇아 앞뒤 돌아볼 겨를도 없이 내달리던 전력질주를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며 혹시 놓치고 있거나,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물질적 풍요와 편리에도 불구하고 이를 넘어서는 어두운 그림자가 여전히 우리 삶에 짙게 드리워진 이유를 찬찬히 되짚어보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소함의 미학'은 변화의 기로에 선 지금 우리가 새롭게 돌아봐야 할 중요한 덕목의 하나다. 갤러리 잔다리 개관 8주년을 기념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 "길을 걷다_풀잎의 사유"전은 일차적으로 이와 같은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주명덕, 하상림 작가는 각각의 세대와 형식적 경계를 넘어 그들의 삶과 예술에 투영된 '사소함의 미학'이라는 측면에서 폭넓게 공유될 수 있는 사유의 토대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의 토대란 곧 예술가가 대상을 바라보는 미의 관점, 나아가 이로써 삶에 대응하는 방식 자체에 닿아 있는 것이다.
주명덕작가는 우리가 둘러보고 기억해야 할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이라는 사진관을 그간의 작업 여정으로써 일관되게 실천해왔다. "홀트씨 고아원", "한국의 가족", "명시의 고향", "국토의 서정기행", "한국의 장승", "도회풍경" 등을 비롯해 최근의 "장미" 연작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나열하기 조차 힘든 발자취들은 그것이 얼마나 집요한 작가적 열정과 집념의 산물인지를 깊이 느끼게 한다. 한편 작가의 전반적인 족적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전환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작가가 본격적인 중년에 들어서게 되는 80년대다. 이 때부터 시작한 "잃어버린 풍경들" 연작들은 스스로의 예술 여정에서 보다 궁극적인 지점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 모든 위대한 가치와 아름다움은 아주 사소한 곳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일관된 작가적 성찰이 보다 포괄적이면서도 함축적으로 투영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초기의 사진작업들이 그와 우리의 성장기 내지 정체성을 찾는 시기로 비견될 수 있다면, 작가가 본격적인 중년에 들어서게 되는 80년대, 즉 "잃어버린 풍경" 연작이 시작된 시기는 사진가로서의 미적 신념과 철학이 그의 내부에 좀 더 구체적인 형태로 자리잡게 된 때라고 볼 수 있다. 이로써 그는 전통적인 사진의 문법을 넘어 삶의 철학을 아우르는 미적 성취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기억에 내재된 삶의 사소한 골목골목을 뒤적이는 프루스트의 그 더할 나위 없이 길고도 섬세한 여정이 우리에게 던지는 깨달음과도 아주 닮아 있는 것이다.
하상림작가는 '생명'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꽃', '씨앗', '풀잎' 등 식물 이미지들을 화면에 담아내면서 그만의 주제의식을 펼쳐왔다. 게다가 거기에는 작가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먼저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이후인 90년대는 작가의 초기라 할 수 있는데, 이때의 "바람", "대지" 연작들은 추상표현의 경향을 띤 작업들로 구도가 하늘에서 내려다 본 대지의 풍경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90년대가 끝나가면서 중년에 접어들게 된 하상림 작가 역시 작업 여정에서 구체적인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때부터 한동안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게 되는 '꽃', '씨앗'이 등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그러한 작업의 변화가 단지 형태적 차원의 새로운 시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시기 가족을 떠나 보내면서 겪게 된 '죽음'에 대한 실체적 경험은 그로 하여금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써 자연스레 삶에 대한 작가의 진지하고도 겸손한 자세를 반영하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산이나 들을 직접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름 모를 풀들을 취재해 그린 신작들 역시 그와 같은 작가적 신념이 더욱 구체화 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삶의 생생함이 기실 아주 낮은 곳에서부터 비롯된다는 믿음과 함께 스스로를 더욱 더 낮추고자 하는 몸짓의 다름이 아니다. 결국 이는 무엇이 과연 나와 우리를 진정 기쁘게 하는가 라는 화두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정리해 본 것처럼, 두 작가가 각기 펼쳐온 작업세계란 속속들이 그들 작업 여정과 삶의 궤적을 반영하는 것이자, 그럼으로써 곧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되새겨봐야 할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두 작가가 "풀잎의 사유"라는 주제 아래 하나의 전시로 만나는 것은 사소하고도 낮은 것의 소중함을 발견함으로써 우리 바깥의 얼굴이 잠시 잊었던 스스로의 내면을 다시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는 주명덕 작가의 90년대 초반부터 제주도에서 찍어온 '산죽' 작품들과 하상림 작가의 풀잎을 소재로 한 신작 회화들이 소개된다. 아마도 오랫동안 고유의 작업세계를 구축해온 저력과 연륜에서 얻은 아늑한 무게감은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이다. 더욱이 두 작가가 그 형식과 세대는 조금 다를지언정 삶에 대해 견지하고 있는 "사소함의 미학"은 서로를 조화로이 닿게 하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이로써 두 작가의 "미적 동행"은 결국 작고 사소한 물방울들이 모여 큰 강물을 이루게 된다는 그 당연하고도 새삼스러운 진리를 우리에게 기쁘게 떠올려 줄 것이다. ■ 윤두현
1940년 황해도출생
1961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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