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및 가야의 미술
한국미술사신라 및 가야의 미술
황금과 철기문화의 전성
기원전 57년 진한12국 가운데 경주지역의 사로국이 성장해 발전한 신라(新羅)는
6세기에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받아들여 고대국가 체제를 완성했고, 왕의 죽음과 관련한 ‘화려한 황금문화’를 꽃피웠다.
풍부한 철과 국제교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가야(伽倻)는 연맹체 단계에 머문 채 하나의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했으나,
전기에는 경남 김해의 금관가야, 후기에는 경북 고령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철기문화의 전성’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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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신라와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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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
국보 제191호, 경주 황남대총(북) 출토, 5세기, 높이27.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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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귀걸이
국보 제90호, 경주 부부총 출토, 6세기, 길이8.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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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지 덧널무덤 발굴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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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 남분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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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지 덧널무덤 해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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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
국보 제207호, 5~6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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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총에서 출토될 당시의 채화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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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모습의 토우
5세기, 높이 대략5cm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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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가 붙은 그릇
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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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인물형 토기, 국보 제91호, 경주금령총 출토
경주 금령총에서 금관과 함께 출토된 기마인물형 토기로 쌍을 이루고 있으며, 신라의 기마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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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으로 만든 신발바닥, 경주 식리총 출토, 5세기, 길이 32cm
지방 수장의 위세품은 경주지역 최고 지배층의 순금 제품보다 격이 떨어진다. 재료는 일반적으로 금동, 은, 청동이 대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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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그릇
경주 황남대총 출토, 5세기, 높이(가운데)24.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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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 부산 복천박물관
부산 동래에 있는 복천박물관은 사적 제273호인 복천동 고분군의 조사 내용을 종합하여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고대 부산 지역의 가야와 신라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1996년 개관했다. 구덩식돌덧널무덤(53호 무덤)의 내부형태를 발굴당시의 모습대로 전시하여 당시의 매장문화를 쉽게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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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무늬고리자루칼, 경남 합천 외, 길이(오른쪽)95.1cm
주로 왕릉급 무덤에서 용이나 봉황을 새긴 고리자루칼과 세 잎 고리자루칼이 출토되는데, 이는 지배자의 신분과 연맹체간의 결속을다지는 상징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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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갑옷과 투구, 경북 고령 지산리, 5세기, 높이 49.6cm
철제갑옷과 투구가 가야지역에서 출현하는 것은 4세기 전반이다. 5세기에 이르러 고구려, 백제, 신라와의 전쟁에 휩싸이면서 수요가 증가하여 갑옷과 투구가 가야 전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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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갖춤(말머리가리개), 부산 복천동, 5세기, 길이49.5cm
말갖춤은 말을 제어하는데 필요한 재갈․굴레․고삐와 말탄 사람의 안정을 위한 발걸이․안장․가슴걸이․뒤걸이 그리고 장식용의 드리개․말방울․기꽂이 등을 말한다. 가야의 말갖춤은 처음에는 고구려로부터 영향을 받지만 차츰 가야의 독자적인 모습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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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륜식토기(車輪飾土器), 보물 제637호, 시대미상, 국립진주박물관
수레바퀴가 붙은 토기는 가야고분에서 여러 점 발견되었는데, 이 토기는 그 중에서도 특이한 형태이다. 받침은 이 시대 고배(高杯)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밑이 벌어진 나팔형이고 긴 직4각형 투창(透窓)이 뚫려 있다. 출토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가야시대(伽倻時代)에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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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가야토기, 경남 함안 출토, 4~5세기, 높이(그릇받침) 49.5cm
함안에서 주로 출토되는 아라가야양식은 굽다리 접시의 구멍 때문에 ‘불꽃무늬토기’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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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모양토기
영남지역 출토, 5~6세기, 높이 16.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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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기원전 57년 진한12국 가운데 경주지역의 사로국이 성장해 발전한 신라(新羅)는 6세기에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받아들여 고대국가 체제를 완성했고, 왕의 죽음과 관련한 ‘화려한 황금문화’를 꽃피웠다. 풍부한 철과 국제교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가야(伽倻)는 연맹체 단계에 머문 채 하나의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했으나, 전기에는 경남 김해의 금관가야, 후기에는 경북 고령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철기문화의 전성’을 이루었다.
삼국통일 이전의 신라
신라(BC57?~935)는 현재의 한반도의 동남부 일대를 약 992년 동안 지배하고 있던 한국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존속한 국가이다. 국호인 ‘新羅’는 ‘왕의 덕업이 날로 새로워져서 사방을 망라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삼국사기』에 의하면 혁거세는 양산(楊山) 기슭의 나정(蘿井) 곁에 있던 알[卵] 속에서 나온 아이인데, 고허촌장인 소벌공(蘇伐公)이 데려다 길렀다. 혁거세의 나이 13세가 되자 6부족이 그를 왕으로 추대하여 왕호를 거서간(居西干:君長), 국호를 ‘서라벌’이라 하였다.
혁거세는 즉위 후에 알영(閼英)을 왕비로 맞았는데, 알영은 사량리(沙梁里)의 알영정(閼英井)에 나타난 용의 오른쪽 갈빗대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삼국 중 가장 먼저 세워졌지만 국가의 틀을 세우는 데는 가장 늦었다. 그러나 6세기 경 법흥왕 때 불교를 받아들여 왕권 강화와 백성의 단결을 꾀하였으며 진흥왕 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아 7세기경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나· 당 연합을 결성하여 660년 백제를,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또한 당나라군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지역을 차지하여 삼국통일을 달성했다. 698년 발해가 세워짐과 함께 남북국 시대의 남쪽 축이 되었다.
황금문화로 구현된 고대왕권
고대 일본인들은 신라를 가리켜 ‘눈부신 금․은의 나라’라고 표현했다. 이렇듯 신라는 화려한 황금문화를 꽃피웠는데, 그 대부분은 왕의 죽음과 관련된 ‘돌무지덧널무덤’과 함께 등장했다. 신라의 꾸미개는 금관과 허리띠를 비롯해 관모(冠帽),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신발 등 재질이나 형태에 있어서 화려하고 다양하다. 그 가운데 금관은 왕의 힘과 권위를 상징한다.
신라관은 관테에 나뭇가지 모양[壽枝形]과 사슴뿔 모양[鹿角形]의 장식을 세웠으며 전체 면에는 곱은옥[曲玉]과 달개[瓔珞]를 붙여 꾸몄다. 세움장식[立飾]의 나무는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왕을 의미한다. 금관은 실용성이 없는 장송의례용으로, 실제 무덤 속에서는 주인공의 얼굴 전체를 감싼 채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무덤에서 출토되는 금은 그릇이나 말갖춤 등은 본래의 용도와 목적에서 벗어나 매우 화려하게 꾸며져 왕의 힘과 권위를 나타내는데 사용했다. 달개가 달린 금그릇, 여러 가지 문양이 새겨진 은잔, 금은으로 꾸며진 말안장과 말갖춤 등으로써 왕의 몸을 장식한 꾸미개와 함께 신라 왕과 신라 사회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권력의 상징, 돌무지덧널무덤
신라의 대표적인 무덤인 돌무지덧널무덤은 경주 일대에 산처럼 솟아 있는 무덤을 말한다. 신라의 권력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한 조형물로, 지하나 지상에 덧널을 짜놓고 그 속에 널과 껴묻거리를 넣은 후, 덧널의 위와 옆을 냇돌로 두텁게 쌓아 덮은 뒤 그 위에 흙을 덮은 것이다. 나중에 중은 사람을 위해서는 먼저 만들어진 무덤에 덧붙임으로써 황남대총처럼 표주박 모양의 무덤이 된다.
현존하는 신라 유일의 그림, 천마
1973년 신라 22대 지증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천마총(天馬塚)에서는 현존하는 신라 유일의 그림이 발굴 되었다.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이 그림은 백의 천마(天馬)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그림으로 ‘천마총’이란 이름도 이 그림 때문에 붙여졌다. 천마총에서는 그림 외에도 금관(국보 제188호), 금모(국보 제189호) 등 11,297점의 부장품과 서조도(瑞鳥圖)와 기마인물도(騎馬人物圖)가 그려진 채화판도 출토되었다. 현재는 무덤 내부를 복원하여 공개하고 있다.
신라인의 관념을 드러낸 ‘토우(土偶)’
신라인의 사상과 사회 전반을 지배한 것은 불교였으나, 불교가 유행하기 이전 신라인의 모습과 관념은 토우, 상형토기, 문자 등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사람이나 동물, 그 밖의 물건을 본떠 만든 토우는 1,500여년 전 신라인들의 삶의 모습을 정지된 화면처럼 담고 있다. 호랑이․말․소․개․멧돼지․새․물고기․거북․뱀․두꺼비․불가사리 등의 동물, 사냥하는 사람․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춤추는 사람․성교(性交) 중인 남녀 인물상이 있다. 이러한 토우는 신라인들이 일상생활 모습 및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신라문화의 확산
신라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점차 주변지역으로 영역을 넓혀 갔는데, 신라는 이들 지역에 지방관을 파견할 수 없어 현지의 수장들을 최대한 이용해 통치하였다. 중앙의 지배층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장신구와 고리자루칼 등의 위세품을 하사하여 현지의 세력을 국가의 지배층으로 인정해 이들을 통해 주민을 다스린 것이다.
실크로드와의 교류
돌무지덧널무덤을 만들던 시기의 신라는 중국보다는 북방이나 서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돌무지덧널무덤의 구조가 알타이 지역에 분포하는 무덤과 비슷하여 그 기원을 추정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또 그 무덤에서 출토되는 금관, 허리띠 등은 백제, 고구려, 중국에서 거의 출토되지 않으며, 오히려 황금을 숭상하는 북방 유목민족의 문화와 관련성이 많다. 유리그릇, 장식보검, 뿔모양잔, 상감 구슬 목걸이 등은 지중해 주변, 서아시아 지방에서 출토되는 것과 형태나 제작 수법이 비슷하다. 이들 유물들은 중앙아시아의 비단길이나 바닷길을 통해 고구려를 거쳐 신라에 전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가야, 철기문화의 번성
가야(42~562;『삼국유사』)는 변한(弁韓)의 옛 땅인 낙동강 중하류에서 풍부한 철과 국제교역을 기반으로 성장했으나, 연맹체 단계에 머문 채 하나의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했다. 전기에는 경남 갬해의 금관가야, 후기에는 경북 고령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다양하면서도 뛰어난 세련미를 갖추고 있는 가야문화는 ‘구덩식돌덧널무덤’, 부드러운 곡선미의 다양한 토기, 많은 양의 철제 무기류와 금․은 상감장식 기법 등이 특징이다. 특히 가야는 고대국가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많은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효율적인 전쟁을 위한 다양한 무기류가 다수 제작되었다.
가야토기의 유행
가야토기는 크게 회청색 경질토기와 적갈색 연질토기가 있으며, 그 종류도 항아리․단지․그릇받침․굽다리접시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가야토기는 같은 종류의 토기라도 다른 지역에 비해 날렵하고 세련되게 만들어져 있으며, 동물․집․배․수레 등의 상형토기와 용도를 알 수 없는 이형토기가 많은 것이 큰 특징이다.
같은 가야지역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그릇모양과 무늬 등의 세부적인 면에서 서로 차이를 보여 고령토기․함안토기․김해토기․성주토기 등 여러 개의 지역 군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거창의 가야토기는 마리면 말흘리 진산고분 발굴시 일부 출토되어 성격의 한 부분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외에도 수 없이 채집되어 그 대강을 알 수 있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토기들 대부분 거창 인근에서 출토된 것들이며, 고령의 대가야계통이 많이 보인다.
뮤움 미술사연구팀 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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